문화 문화일반

대몽 항쟁 최후의 섬,珍島를 가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9.02.05 16:49

수정 2009.02.05 16:49

전남 진도로 들어가는 초입, 진도대교에서 우리를 맞이한 건 이순신이었다. 1597년 저 유명한 명량대첩이 벌어졌던 울돌목에는 거대한 크기의 이순신이 큰 칼을 옆에 찬 채 한 손을 하늘 높이 쳐들고 있었다.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卽生 必生卽死), 죽고자 하면 살 것이요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

현대식 사장교(斜張橋)로 만들어진 진도대교 옆에 우뚝 선 높이 30m의 이순신 동상은 지금도 그렇게 외치는 듯했다.

그러나 진도는 사실 새로운 왕국을 꿈꿨던 항몽 전사 삼별초(三別抄)의 본향이다. 실제로 진도사람들은 성웅 이순신보다 흔히 ‘배 장군’으로 불리는 삼별초의 지도자 배중손(?∼1271)을 이 고장을 대표하는 장수로 생각한다.


크기 면에서는 이순신의 그것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배중손의 동상과 사당이 있는 이곳에는 몽골군을 맞아 결사항전을 벌였던 용장산성을 비롯해 남도석성, 왕온의 묘, 왕무덤재, 논수골, 핏기내, 급창둠벙, 돈지벌판 등 삼별초에 관한 전설과 신화가 아직도 살아 꿈틀대고 있다.

지난 1996년 고향인 진도로 내려와 집필 활동을 하고 있는 소설가 곽의진씨(61·삼별초역사문화연구회 이사장)에게도 삼별초와 배중손은 각별하다.

“우∼ 우∼ 우∼”

이름 모를 들꽃들이 피었다 지는 진도군 군내면 용장리 용장산성 터에 서면 700여년 전 몽골군과 싸우다 스러져간 삼별초 군사와 백성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고 했다. 아직도 구천을 떠돌고 있을 그들의 원혼을 극락으로 인도하기 위해서라도 한 판 큰 굿을 벌여야 한다고 그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곽씨가 삼별초에 여생을 다 바치겠다고 마음먹은 건 벌써 10여년 전의 일이다. 한 일간지에 남종문인화의 거장인 소치 허련(1809∼1892)의 삶을 그린 ‘꿈이로다 화연일세’를 연재하기 위해 서울 생활을 작파하고 고향으로 내려온 곽씨는 소설 집필이 끝난 뒤에도 고향을 떠나지 않았다. ‘태(胎)를 묻은 땅에 뼈를 묻겠다’는 회귀 본능이 발동한 탓도 있었겠지만 그를 잡아끈 것은 다름 아닌 삼별초였다.

삼별초의 발원지였던 강화도에는 초라하지만 ‘삼별초 호국 항몽 유허비’가 서 있고 진도에서 퇴각한 삼별초가 최후의 항전을 벌였던 제주도에도 ‘삼별초 항몽 순의비’가 세워져 있는데 삼별초가 새로운 왕국을 건설하려 했던 항몽의 본거지 진도에는 작은 돌비석 하나 없다는, 난감하고 분통 터지는 현실도 그를 진도에 붙들어 맸다.

▲ 전남 목포 시민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지난달 31일 공연된 국악 오페라 ‘삼별초’에는 대몽항쟁 최후의 격전지였던 진도에 사는 군민들이 직접 출연했다.

■‘자주 고려’ 꿈꾸다 쓰러진 민초들의 넋 달랜다

"삼별초는 구국의 전사였네/이 땅을 지켜온 이름 모를 사람들/아직도 들리는 저들의 함성/삼별초는, 삼별초는 구국의 전사였네…."

삼별초 이야기를 구슬픈 남도 가락에 담은 국악 오페라 '구국의 고려전사 삼별초'를 만든 것도 사실은 삼별초의 원혼을 달래고 잊혀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후대에 전승하기 위한 작업의 일환이었다.

봄이 온 것처럼 포근한 날씨를 보였던 지난달 31일 전남도청이 있는 목포에서 국악 오페라 '삼별초' 공연이 막을 올렸다. 대본을 직접 쓰고 제작을 총지휘한 곽의진씨는 "독서를 즐기지 않은 요즘 사람들이 삼별초의 역사를 바르고 쉽게 접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의 하나가 영화나 드라마로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그러나 상당한 제작비가 투입돼야 하는 드라마나 영화 제작은 지역의 작은 노력만으로는 가능한 일이 아니어서 오래전 써놓은 창작 희곡을 바탕으로 국악 오페라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국악 오페라 '삼별초'가 무대에 오른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번 작품의 토대가 됐던 민요 창극 '진도에 또 하나 고려 있었네'가 처음 공연된 것은 지난 2000년. 진도향토문화회관에서 첫선을 보인 이 작품은 다음해인 2001년 국립국악원 개원 50주년 기념작으로 초청돼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 예악당 무대에서도 한 차례 공연됐다. 당시 한 언론은 "700년 전 고려를 되찾기 위해 진도에 성을 쌓고 끈질기게 몽고에 대한 투쟁을 벌인 삼별초와 진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은 연기의 완성도 측면에서는 다소 아쉬운 점이 있을 수 있겠지만 2시간짜리 창극을 지역주민들이 직접 참여해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국악 오페라 '삼별초'는 배중손이 이끄는 1000여척의 배가 벽파진으로 몰려오는 대목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구국의 깃발을 높이 치켜든 삼별초 군사들을 남몰래 지켜보던 동백이는 배 장군을 흠모한 나머지 남장을 한 채 전쟁에 참여한다. 동백이라는 이름의 여인은 곽씨가 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해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로 이번 작품의 주인공 격이다.

동백이가 2막 끝 부분에서 선보이는 진도 북춤과 3막에 등장하는 진도 씻김굿은 이번 공연의 백미다. 여몽연합군과의 전투가 수세에 몰리자 동백은 몽골군에 능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겠다며 둠벙(물웅덩이)에 몸을 던진다. 진양조로 시작한 춤사위는 중중모리와 휘모리장단으로 몰아치면서면서 차츰 격렬해지고 이때 붉게 피어났다 순식간에 뚝 떨어지는 동백꽃을 노래하는 남도 육자배기가 울려 퍼진다.

죽은 자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진도 씻김굿과 만가를 들을 수 있다는 점도 이색적이다. 소복을 입은 여인네들이 배중손과 죽은 자들의 상여를 끌고 무대에 오르자 이날 공연장을 찾았던 민주당 박지원 의원과 박연수 진도군수 등이 무대에 올라 흰 광목에 휩싸인 상여에 노잣돈을 꽂았다. 구국의 대열에 동참했다가 역적으로 몰려 죽임을 당한 자들을 위무하는 남도인들의 의식은 보통의 공연장에서는 목격할 수 없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곽씨는 이번 작품의 전국 순회공연과 해외공연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서 점점 희미해져 가는 삼별초의 구국 혼을 재생(再生)해내는 것 외에도 이번 공연이 아무렇게나 방치된 진도 항몽 유적지를 복원할 수 있는 단초가 되기를 곽씨는 강력하게 희망하고 있다.

유난히 바람이 심한 날이면 삼별초 군사들이 새로운 왕국을 건설하려 했던 용장산성터에 오르곤 한다는 곽씨는 "삼별초의 본산인 진도의 관련 유적지들이 폐허인 채 쓸쓸히 비에 젖는 것을 보면 억장이 무너진다"면서 "삼별초 유적지를 복원하고 성역화하는 작업은 삼별초의 구국 정신과 민중의 분노를 후대에 보여주는 것이자 역사의 희생자로 남은 그들에 대한 깊은 애도의 표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jsm64@fnnews.com 정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