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깔모자와 황금날개] <108> 고깔모자 아래 바보들 ⑧
■글: 박병로 ■그림: 문재일
겨드랑이에 끼고 있던 가죽 손가방을 필립이 내려치듯이 탁자에 내려 놓았다. 탁자 위의 와인 잔들이 차르르 소리를 내며 떨었다. 유난히 넓고 속이 깊은 빈 와인 잔을 필립이 집어 들자 여주인이 콜콜콜 소리가 나게 술을 따랐다. 아이스크림 꼬리를 횃불처럼 올리듯이 병끝을 살짝 비틀어 올리는 모습이 무척 날렵했다.
“와인 파티를 결정한 사람들이 누굽니까?”
“우, 우린 그저 오늘이 멋진 날이라고 생각해서. 보스도 좋아할 줄 알았어.”
“졸라!”
필립이 탁자를 꽝 내리쳤다.
“좋아할 줄 알았다구요? 헐!”
“모처럼 제대로 돈을 땄기에 기분을 내보자는 거였지. 별 뜻 없이….”
오시리스 남경준이 변명했다.
“오시리스님, 우리가 얼마 벌었습니까? 이제 겨우 원금에서 1억 정도?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열흘 만에 올린 실적이니 놀라운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똑같이 즐겁고 똑같이 술 먹고 그럴 여유가 없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내 말이 말 같지 않으면 다 집어치우십시오. 옛날로 돌아가서 자살할까 말까 그거나 저울질하든 말든 하시란 말입니다.”
노이만이 필립의 잔에 다시 와인을 채웠다.
“졸라, 마음에 안 듭니다. 오시리스님! 지금 어른 대접받고 싶습니까? 노이만님 지금 사랑할 때입니까?”
“보스. 이건 아니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듣기가 좀 그렇네.”
“고따구로 해가지고 어떻게 돈을 법니까. 피보나치 수열식으로 돈이 증가하는 걸 원한다고 말했습니까. 노이만님 웃기십니까. 뭔가 다른 사람과는 달라야 크게 벌든 망하든 한다고 했잖습니까. 고기도 먹어 본 놈이 많이 먹는다고 말입니다. 망해서 죽어가는 쭉정이 같은 존재들이 하는 짓이 어련하겠어…. 나까지 포함해서 하는 말입니다.”
“필립씨. 너무 그라지 마소. 잘해 보자꼬 모인 기라.”
“맞아요, 필립님.”
배민서에 이어 오프라 팰리스가 거들었다.
“우린 소박하게 단결하고 내일 좀 더 많이 땄으면 하고 기도하는 심정이었어요.”
“딸 리도 없지만, 분명히 해둡니다. 20억이든 100억이든 당신들이 아무리 벌어도 당장 가져갈 몫은 없습니다. 와인바 파티, 유럽여행 두 가지뿐입니다. 목표치에 도달하기 전엔 할 수 없습니다. 동의하지 않으면 빠지면 됩니다.”
신경질을 내면서 필립이 잔을 놓고 일어섰다.
“먼저 가보겠습니다.”
김순정은 가슴이 콩콩 뛰었다. 오프라 팰리스를 흘끔 보니 술을 더 마시고 싶은 눈치였다. 김순정은 핸드백을 챙겨 바를 나왔다. 출입문 밖에 필립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손가방이 끼워져 있는 겨드랑이에 김순정이 손을 쓱 집어넣어 팔짱을 끼려 하자 필립이 깜짝 놀라 돌아보았다.
“왜 따라 나와?”
“오피스텔에 같이 돌아가고 싶었슴다.”
“다른 사람들은? 더 있다 오고?”
자신의 존재가 필립에게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김순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느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필립이 눈웃음을 지으며 김순정을 돌려세웠다.
“순정씨도 좀 더 있다 와요. 누가 내 욕을 제일 많이 하는지 그것도 좀 보고. 여기 사람들은 말이야. 돌아서기만 하면 헐뜯고 흉을 보거든. 그 사람이 대통령이든 회장이든 사장이든, 자신의 부모이든 상관하지 않고 말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