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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북] 국토순례서 띄운 ‘희망편지’ 42통

정순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9.04.15 16:56

수정 2009.04.15 16:56



■길 위에서 띄운 희망편지(김형오·생각의나무)

대한민국은 자본주의 사회다. 이 사회에서 성공하고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을 우리는 흔한 말로 ‘보보스’(BOBOS)라고 일컫는다.

대학원을 졸업했다. 졸업 후엔 기자가 되었다. 그러다가 국무총리실, 대통령 정무비서관으로 공직에 임용되었다. 이뿐만 아니었다.
1992년 14대 국회의원을 시작으로 현재는 국회의장이 된 이 사람을 여러분들은 혹 아시나요?

정치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국회의장’에서 누구인지 어렵지 않게 짐작하리라.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 국회의장인 김형오씨가 ‘수필가’라는 사실은 짐작컨대 다들 잘 몰랐을 것이다.

고백컨대 정치인으로의 성공은 나는 부럽지가 않다. 다만 나는 이 땅에도 정치인으로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존재한다라는 사실이 마냥 신기하면서 부럽다.

정치인의 바람직한 모델에 대해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인 시오노 나나미는 일찌감치 카이샤르와 체사레 보르자로 인물의 됨됨이를 묘사한 바 있다. 시오노 나나미가 말했다. “정치에서 진실이란, 감정이나 윤리 도덕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유용성에 있다는 것”이라고. 그렇다. 무용성이 정치의 진실은 아닐 것이다. 오로지 유용성만이 국민이 간절히 원하는 바, 즉 껍데기가 아니라 알맹이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해외여행을 자랑하는 에세이집이 아닌 국토순례를 다니면서 ‘길 위에서 띄운 희망편지’는 한마디로 유용하다. 단순히 순방외교의 관례를 깨고 ‘우리 땅 생생탐방’이라는 일종의 정치적 제스처, 즉 처신을 책에 담아냈다면 42통의 편지를 재구성한 이 책이 그리 흔쾌히 독자 입장에선 반갑지만은 않았으리라. 아니다. 희망은 고사하고 절망으로 분노했을지도 혹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의 독후감은 기대 이상이었다.

책은 총 4장으로 엮어졌다. 1장은 자연과의 만남. 2장은 문화와의 만남이다. 3장은 역사와의 만남. 4장은 미래와의 만남이다.

자연의 소중함에 대해 저자는 미국의 생물학자 레이첼 카슨이 지은 ‘침묵의 봄’이란 책을 들이대며 인간의 그릇된 욕망으로 죽어가는 자연을 왜 보호해야 되는지 설득한다. ‘이대로 가면 봄이 와도 꽃들은 피지 않고 새들은 노래하지 않을 것이다’(83쪽)라는 식으로 말이다. 다행인즉 경남 창녕에 소재한 우포늪이 우리에겐 있다. 유일하게 42통의 편지 중 사람이 아니라 ‘철새들 그리고 따오기 부부에게’라는 단서를 달았는데 1장에선 단연 백미다.

2장에선 한복부터 미니스커트까지, 또 패션으로 거듭난 한지(132쪽)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자연에서 자생하는 순수한 닥나무 껍질을 원료로 만들어지는 전통한지의 다양한 효용성을 읽었기 때문이다.

3장에선 정치인으로 저자의 속내를 여실히 드러내는 대목. 즉 다산 정약용 선생님께 부치는 편지글이 무척 인상 깊었다.

“국가 최고 통치자로서 정조 임금은 늘 깨어 있는 존재였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우리 것만을 고집하지 않았습니다. 변화에 맞서 새시대에 걸맞은 지배논리를 창출하고, 이를 정치현실에 반영하면서 문제점을 하나씩 하나씩 풀어나갔습니다. 그런 면에서 정조 임금은 선생님과 성향이 참 잘 맞지 않았나 추측됩니다.”(181쪽)

이만한 속내라면 국회의장으로 저자의 앞으로 행보는 기대해도 좋으리라 짐작되고도 남음이 있다.

깜짝 놀랐던 편지글도 하나 들어 있다. 한류스타 류시원씨가 서애 유성룡 선생의 13대 손인 줄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마지막 4장에선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를 위해 매진하는 일꾼들의 현장을 이야기한다. 한반도 곳곳의 자연, 역사, 문화를 형식적으로 둘러보는 정치인이 아니라, 길 위에서 편지를 띄우는 ‘멋쟁이 수필가’로 기억되기에 책은 흠 잡을 데 없다.
솔직한 내 독후감으로는 ‘국회의장’ 대신에 ‘수필가’로 고쳐서 부제를 달아도 제법 책이 팔릴 듯하다.

/심상훈(북 칼럼니스트·작은가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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