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작은 오디션에서 퇴짜 맞은 횟수만 약 200회.
평범한 회사원이었다면 꿀릴 거 하나 없는 얼굴인데 ‘배우’라는 꼬리표 탓에 거울을 보며 자책할 때도 많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 길이 맞을까?’라며 우울해하던 29세 청년 조휘.
그러던 그의 삶이 확 바뀌었다. 3월 초 막을 내린 프랑스 뮤지컬 ‘돈 주앙’ 덕분이다. 조연 돈 카를로스 역으로 무대에 선 뒤 그에겐 온갖 칭찬과 관심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인생 첫 노미네이트, 첫 단관
햇살 좋은 어느 날 오후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에게선 이제 막 되찾은 여유가 묻어났다.
“후보에 오른 것만도 영광이라고 생각해요. 시상식은 늘 TV로 보면서 부러워했는 걸요.”
닳고 닳은 공치사가 아니다. 진심이다. 오는 20일 열리는 ‘더 뮤지컬 어워즈’ 남우신인상 후보에 노미네이트된 것은 언감생심 그 자체.
함께 후보에 오른 배우들의 면면이 워낙 대단하다. 뮤지컬 ‘캣츠’의 대성과 ‘소나기’의 승리는 유명 아이돌 가수요, 일본 극단 시키 출신의 배우 강태을은 ‘돈 주앙’의 주연이다.
“다들 저보다 유명한 배우들이니까 전 지금만으로도 참 뿌듯하고 자랑스러워요.”
교직에 오래 계신 외할아버지 탓에 그의 부모 역시 그가 선생님이 되길 바라셨다. 고교 때부터 연극에 뜻이 있던 그는 ‘사범대학교에만 가면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한다’는 조건으로 고려대학교 사범대에 입학했다.
고대 극회에서 꾸준히 무대활동을 하던 그는 2002년 뮤지컬 ‘블루사이공’으로 신고식을 치렀다. 2년 뒤엔 뮤지컬 ‘그리스’에도 얼굴을 내밀었다.
“제 욕심에 찰 만큼 두각을 보인 적이 없어요. ‘폼나는 배우’가 되는 게 꿈이었는데 평범한 외모와 부족한 실력 탓에 늘 지지부진했죠.”
연기의 지평을 넓힌 것은 창작뮤지컬 ‘마이스케어리걸’과 ‘김종욱 찾기’에 출연하면서다. 코미디 연기가 몸에 익자 점차 내공이 쌓였다. 곧 50여명으로 구성된 팬클럽이 생겼고 얼마 전에는 인기배우들이나 한다고 생각했던 단체관람 행사도 치렀다.
■첫 출연 제의, 첫 주연, 첫 멜로
20대 중반의 조휘는 참 가난했다. 자존심 때문에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연극 연습을 하고 해가 지면 물류회사 창고에서 화물을 옮겼다. 무대에 선 대가는 2개월에 20만원 남짓, 여기에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합하면 겨우 먹고살 돈이 나왔다. 죽도록 피곤한 가운데도 이곳저곳으로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그 시절이 그리 오래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이렇게 먼저 작품 제의가 들어오다니…. 얼떨떨할 뿐이에요.”
5월 16일부터 극장 용에서 공연되는 체코 뮤지컬 ‘클레오파트라’에서 그는 주인공 안토니우스로 분한다. 지난해 초연 당시 배우 민영기가 맡은 이 역할은 난생 처음으로 오디션 없이 거머쥔 보물이다.
“‘돈 주앙’에서 돈 카를로스도 비중이 크긴 했지만 엄밀히 따지면 조연이에요. 이번엔 안토니우스로 첫 주연을 하게 됐고 처음으로 애정 구도를 이루게 돼요.”
후속작에 대한 걱정을 떨친 것도 올해가 처음이다. 5∼6월엔 ‘클레오파트라’, 7∼8월엔 ‘돈 주앙’, 10월부터는 대형 창작뮤지컬 ‘영웅’이 예정돼 있다. 연초에 이미 한 해 스케줄을 채우는 것은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예전엔 안정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들을 보며 부러움 반, 두려움 반이었어요. 이젠 제 길이 맞단 확신이 듭니다. 매일같이 망망대해에 나갔다 빈손으로 돌아오던 허탈감이 이젠 묵직한 성취감으로 바뀌었다고나 할까요.”
/wild@fnnews.com 박하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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