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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칩속에 갇혀버린 디지털인류/최희원 한국정보보호진흥원 수석연구원

이종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9.05.28 16:17

수정 2009.05.28 16:17

UCC스타가 된 P씨. 인터넷을 이용해 스타의 꿈을 이뤘지만 그녀는 요즘 후회가 막심하다. 할수만 있다면 스타가 되기 이전으로 돌리고 싶다.

그녀는 “누군가 내 컴퓨터를 해킹해 내 사진과 동영상을 훔치고 성형수술기록까지 알아내서 협박하곤 한다”며 “야비하고 악랄한 쪽지나 이메일을 보내는 가하면 성폭행하겠다고 위협하는 이들도 있다. 세상이 너무 무섭다”고 울먹였다.

처음엔 그녀의 끼를 발산하고 싶었고 아무도 그녀를 받아들여주는 이가 없자, UCC에 자신의 정보를 과도하게 노출한 게 문제였다. 특히 열린 공간에서 개인정보노출의 유출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를 생각케 하는 사례다.

디지털세상에서 노출된 인간의 삶은 컴퓨터칩이나 또다른 저장장치에 쉽게 저장되고 그것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새삼 깨닫게 한다.

이미 우리는 인터넷, 휴대폰, 신용카드없이는 살수 없는 디지털인류가 되어버린지 오래다. 일상에서 디지털기술의 혜택을 누리면 누릴수록 자신과 관련된 데이터도 늘게 되고 데이터가 늘어나면 그만큼 사생활이 침해당할 위험성은 더욱높아지고 있다. 게다가 은행, 빌딩, 사무실, 백화점 등은 물론 거리 곳곳에 부착돼 있는 감시카메라까지 감안할 경우 더 이상 프라이버시를 논하기가 힘들 지경이다. 새로운 디지털기술은 손쉽게 방대한 정보를 축적하는 것은 물론 자료를 수집, 분석, 평가할 수 있게 했다. 개인의 습관, 취미는 물론 그의 마음속까지 예측 할 수 있게 될런지도 모른다. 윤리의식 부재와 물질만능주의는 결국 개인의 정보가 언제, 어디서나 아무렇게나 취급될 수 있다는 것을 예측케한다.

얼마전 은행대출상담사가 고객정보 등 개인정보 4백만건을 불법 거래, 유통한 사실이 바로 그 실례다. 그들이 유통시킨 정보엔 개개인의 직장명, 연봉, 기존대출금액 등이 적혀있었다고 한다.우려되는 것은 앞으로 개인의 재정상태 뿐 아니라 학창시절의 성적, 이혼, 병력 등 중요한 프라이버시가 유통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정부나 기업은 물론 심부름센터등에서도 키보드나 마우스 클릭 몇번만으로 개인의 과거전력과 현재의 동선(動線)까지 낱낱이 추적ㆍ감시할 수 있는 세상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디지털사회의 인류는 숨을 곳을 찾지 못하고 발가벗긴 채 콘크리트바닥에 내던져질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리 실체 없는 숫자조합으로 이루어진 디지털 세상이라할지라도 그 중심에는 인간이 있다. 인간은 숫자조합처럼 감정도, 생각도 없는 기계가 아니다. 만일 이를 무시한다면 디지털세상에서 본질없는 인간은 삶이 새겨진 칩이나 저장장치가 사라지는 순간 한꺼번에 쓰레기통에 처박힐지도 모른다.

휴머니즘이 사라진 디지털사회는 유토피아가 아닌 디스토피아가 될 것이다. 조지오웰이 말한것처럼 거대하고 방대한 정보가 독재조직이나 권력기관인 ‘빅브러더’의 손에 의해 통제되는 기형사회를 막아야 한다.

정보보호에 대한 인식과 투자, 그리고 장기적인 플랜을 이야기해야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최희원 한국정보보호진흥원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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