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인찬칼럼] ‘노무현’하면 떠오르는 이들/곽인찬 논설위원
노무현 전 대통령을 생각하면 여러 인물이 겹쳐 떠오른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 경우는 이렇다.
#우공(愚公)=옛날 중국에 우공이라는 노인이 살고 있었다. 그의 집 앞에는 큰 산이 두 개나 있어 집을 드나들기가 불편했다. 그래서 그는 산을 옮기기로 했다. 바보스러운 우공과 자손들은 산에서 파낸 흙을 발해(渤海)에 갖다 버리기로 했다. 발해를 다녀오는 데 반년이 걸렸으나 개의치 않았다. 한 지혜로운 노인이 우공을 말렸다. “당신 같은 늙은이가 이 거대한 산들을 어떻게 옮길 수 있단 말이오.” 우공이 대꾸했다. “내가 죽더라도 아들이 있고 손자가 있지. 손자는 또 아들을 낳을 게 아닌가. 대대손손이 그 일을 해 나간다면 저 산인들 평평해지지 않을 재주가 있는가.”
이 얘기가 하늘나라에 전해졌다. 상제는 우공의 우직함과 정성에 감동했다. 그는 거인 두 명을 보내 두 산을 다른 곳으로 옮기도록 했다. 여기서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고사가 나왔다. 노 전 대통령은 살아생전 인터넷 필명으로 ‘노공이산’을 썼다.
#제갈공명=유비가 죽자 촉(蜀)의 운명은 온전히 공명의 손에 달렸다. 일벌레 공명의 건강은 갈수록 나빠졌다. 죽음을 예견한 공명은 장수들을 불러 사후 대책을 지시했다.
위(魏)의 사마중달은 공명이 살아 있는 한 감히 나아가지 못한 채 공격을 미루고 있었다. 어느 날 밤 천문을 보니 큰 별 하나가 촉군의 영채로 떨어지는 게 보였다. “공명이 죽었구나!” 사마중달은 곧 군사를 이끌고 나아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 쫓기던 촉군이 홀연 북소리를 높이며 깃발을 돌려세우는 게 아닌가. 중군(中軍) 속에선 수레 한 채가 미끄러져 나왔다. 놀랍게도 그 안에는 공명이 깃털부채를 든 채 근엄하게 앉아 있었다. 사마중달은 혼비백산 줄행랑을 놓았다. 수레 속 공명이 나무로 깎아 만든 목상이었음을 깨달은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여기서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았다(死孔明走生仲達)’는 말이 나왔다. 사마중달은 두고두고 촉인들의 우스개 거리가 됐다.
#후안 페론=노조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1946년 아르헨티나 대통령에 취임한 페론은 임금·의료·주택·연금 등 서민복지에 힘을 쏟았다. 재정적자는 뒷전이었다. 영화배우 출신의 두번째 아내 에바는 남편의 후광 속에 가난한 이들을 보살피는 성녀로 추앙받았다.
연임에 성공한 페론은 쿠데타로 실각했으나 18년에 걸친 스페인 망명 시절을 접고 권좌에 화려하게 복귀(1973년)했다. 그에 대한 국민의 호불호는 분명했다. 지지자들에겐 숭배의 대상이었으나 반대파는 그를 선동가로 폄훼했다. 그의 이름을 딴 페로니즘은 지금도 인기영합주의로 번역되는 포퓰리즘과 동의어로 쓰인다. 20세기 초 강국으로 꼽히던 아르헨티나가 몰락한 원인을 페로니즘에서 찾는 이들도 많다.
#남상국=2004년 3월 한강에 투신한 남 전 대우건설 사장은 1945년생으로,부엉이 바위에서 투신한 노 전 대통령보다 한 살 위다. 당시 언론은 그의 영결식을 이렇게 전한다. “남상국 전 사장이 오늘 유가족과 대우 임직원들의 애도 속에 영면했습니다. 영결식은 외부인사들이 참석하지 않은 가운데 비교적 조용히 치러졌습니다… 유가족들은 끝내 울음을 터뜨렸고 고락을 함께 했던 대우건설 임직원들도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고인의 유해는 화장돼 선영인 충남 아산에 묻혔습니다.”
송영길 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 4월 8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노 전 대통령은 고 남상국 사장 자살 사건과 관련해 정중한 사과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송 최고위원은 “당시 노 전 대통령이 형(노건평)을 일방적으로 옹호하고 문제의 책임을 상대에게 전가해 국민 정서에 어긋난 태도를 보였다”는 말도 덧붙였다. 한 살 터울로 사석에서라면 친구처럼 지냈을 사이다. 삼가 두 분의 명복을 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