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깔모자와 황금날개] <167> 꿈꾸는 자들의 부활 ⑦
■글: 박병로 ■그림: 문재일
여의도 월가는 미니어처 도시처럼 아담했다. 월스트리트가 관록과 연륜이 있는 우람한 황소라면 여의도 월가는 이제 막 성우가 되는 햇소처럼 풋내가 났다. 세운 지 오래지 않은 건물들은 아직 세월에 씻겨나간 흔적이 없이 번쩍번쩍 윤기가 났다. 가로수는 우거졌고 조경용 화분에 심은 덩굴과 꽃들로 거리는 공원 같이 울긋불긋했다.
강일남은 가로등 기둥 곁의 벤치에 테이크아웃한 커피를 들고 자리 잡고 앉았다. 애널리스트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당당하고 거만하게 커피 한 모금을 쭉 들이켜자 오늘따라 카페인이 온몸을 긴장시키는 것 같았다. 손님을 만나는 넥타이 사내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한낱 구경꾼으로 이렇게 월가를 찾아와 분위기를 살피게 될 줄은 몰랐다. 강일남은 옵션투자 게임에서 자신이 제갈공명쯤 된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넥타이 사내들의 눈빛, 말투 그리고 월가에 이는 바람에서도 오늘의 시황과 내일을 읽어낼 수 있을 터였다. 사무실에서 베팅을 하는 팀원들에게 도움을 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휴대전화를 꺼내 전화를 걸자 무거운 음성으로 노이만이 받았다.
“풋, 외가격에 시초가로 베팅을 했는데 생각보다 먹을 게 없어.”
“여긴 적벽입니다. 제갈공명은 아니지만 바람을 한번 일으켜 볼까요?”
노이만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적벽? 아, 월가. 일 없으니까 분위기나 잘 보고 오셔.”
될 리가 없지만 강일남은 두 손을 모으고 적벽 앞에서 바람을 불러보기로 했다. 노이만이 베팅한 풋옵션 외가격에서 수익이 크게 나기 위해서는 코스피200 지수가 큰 폭으로 하락해야만 했다. 그것은 곧 주가가 곤두박질치기를 바라는 몹쓸 짓이지만, 주가는 늘 등락을 하게 마련이었다.
옵션의 신이 있어 도와줄 것이라면 이번 한번만 더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주문을 생각하는 순간 딩동, 하는 문자메시지 신호음이 들렸다. 화면을 흘끔 보니 ‘등가격 베팅…’이라고 쓰여 있었다. 보나마나 오시리스나 오프라가 보낸 좋은 소식이었다. 강일남은 내공을 모아 있는 힘껏 힘을 주었다. 컴퓨터의 HTS를 작동시켜놓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차트 숫자들을 바라볼 때처럼 끄응, 하고 힘주어 마지막 한 방울까지 기를 모아 보냈다.
두 번 다시 무모한 옵션투자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팀원들 모두를 다그치던 필립의 어깨 뒤에서 강일남은 죽음의 그림자가 서성이는 것을 느꼈다. 한때 죽음과 삶의 경계선 위를 걸으면서 어느 쪽으로 내려선대도 아쉬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비록 크지 않은 돈이지만 자신의 돈을 투자클럽에서 키우고 있었고, 흠모하는 여인과는 아직 헤어지는 행사도 변변히 하지 못했다. 그러니 신이 있어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이번 한번만 더 은혜를 입고 싶었다.
딩동. 다시 문자메시지 도착 신호가 왔다. ‘오전 장 끝….’ 강일남은 바탕화면에 뜬 문자를 읽으면서 확인 버튼을 눌렀다.
“오전 장 끝내고 티타임 감시롱 자랑∼ 나도 1.50 먹었당.”
매수와 매도 청산 거래를 일단 마치고 휴식을 취한다는 뜻이었다. 오전 10시30분에 보통 클릭을 멈춰버렸는데 오늘은 10분 정도 일렀다. 계산을 해보니 희망이 생겨났다. 노이만이 쥔 종잣돈이 6억원이었고, 외가격에 베팅을 했다고 한다면 수익이 엄청날 것 같았다. 한 계약당 15만원씩 이익을 봤으니 매도를 했건 매수를 했건 2만원짜리 1000계약을 거래했다면 그것만으로도 1억5000만원의 수익이었다. 얼마나 여러 번 클릭을 했고 얼마치나 베팅을 했느냐에 따라 수익금의 규모가 5억도 될 수 있고 10억도 될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