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금융일반

기업 버티기..구조조정 ‘용두사미’ 우려

김규성 기자
파이낸셜뉴스

부실기업에 대한 본격적인 구조조정 작업이 시작도 하기 전에 ‘삐걱’거리고 있다. 최근 경기회복 분위기를 타고 기업들의 ‘버티기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어서다.

정부와 금융당국이 연이어 강력한 구조조정을 요구하고 나섰지만 주채권은행들도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은행들은 대출을 해 준 기업과의 관계도 신경 쓰이지만 단순히 워크아웃이나 재무구조개선약정 기업이 몇 개냐는 등 ‘무늬’에만 집착하다 보면 옥석을 가릴 수 없어 구조조정이 실패로 돌아갈 우려가 크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에 따라 10일 현재 국민은행과 일부 지방은행을 제외한 주요 은행들이 꼽은 구조조정 대상 기업은 20곳을 약간 넘긴 정도로 추정되며 추가되더라도 당초 예상했던 35곳에는 훨씬 미치지 못할 전망이다.

■산은, 나홀로 빼든 칼

구조조정 의지가 가장 강력한 곳은 산업은행이다. 신용공여액 500억원 이상인 대기업에 대한 평가에서 일찌감치 퇴출기업 2곳, 워크아웃 기업 4곳을 결정했다.

산은 민유성 행장은 예전부터 강력한 구조조정 의지를 밝혀 왔다.

현재도 대기업 계열사 2곳 정도를 인수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최근에는 사모펀드를 통한 기업 구조조정을 개시했다.

산은은 ‘턴어라운드 사모펀드’ 투자 1호 기업으로 썬스타특수정밀을 선정하고 구주 인수와 신규 유상증자를 통해 경영권을 인수한 후 재무구조 개선을 통해 경영을 정상화할 계획이다. 적극적인 산은의 행보와 달리 시중은행들의 구조조정 작업에 대한 평가는 썩 좋지 않다.

구조조정작업의 핵심 중 핵심이었던 대기업그룹에 대한 재무구조개선약정(MOU)과정에선 당초 14개 그룹이 불합격 평가를 받았지만 재무개선 약정을 맺은 곳은 9곳이다.

이 중에서 금호아시아나와 동부그룹을 제외하고 나머지 7개 그룹은 단순히 자산을 팔아 빚을 갚는 수준에서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개별 대기업(여신 규모 500억원 이상) 재무평가 작업도 마무리 단계다. 434개에 이르는 대기업들이 기본평가에서 불합격 평가를 받았지만 대상 기업은 30∼35개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중은행, 무늬만 구조조정

하지만 실제로 구조조정 대상 기업은 이보다 적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달리 구조조정 대상과 범위가 생각에 못 미친다는 것이 시장 평가다.

우선 최근 경기가 회복세를 타면서 이에 편승해 대기업들이 버티기 모드로 들어간 것이 주요원인 중 하나다.

은행들로서는 저금리기조와 경기가 회복세를 타고 있는 마당에 큰돈을 빌려가는 큰 고객인 대기업들을 무조건 압박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특히 모기업이나 오너의 의지에 따라 재무구조 개선이 쉽게 될 수 있는 대기업들도 많아 적극적인 구조조정을 가로막고 있다.

또 과거 외환위기 때와 달리 위기에 대한 선제적인 대응이라는 점도 아직 부실이 현실화되지 않은 기업들에 대한 설득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미국 제너럴모터스(GM)나 크라이슬러의 예처럼 구조조정을 회피하려다 파산한 경우를 들어 현실을 직시할 것을 지적하고 있다.

■구조조정 지연, 정책 전환 부담

채권금융기관 중심의 구조조정 강도가 예상보다 훨씬 약해지면서 정부와 한국은행의 정책 전환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글로벌 인플레이션 우려가 가중되고 국제유가 또한 급등세를 보이면서 풀린 유동성을 회수해야 하는데 구조조정 지연이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4월 광의통화(M2) 증가율은 전년 동기 대비 10.6%로 11개월째 둔화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협의통화(M1) 증가율은 6년7개월 만의 최대치인 17.4%로 집계됐다.

구조조정이 원활하지 않으면서 시중자금이 현금과 현금성 예금을 합친 M1에만 몰리기 때문이다. 구조조정이 원활하면 은행들의 기업대출이 늘고 기업들 또한 설비투자를 확대하면서 M1에다 2년 미만 예·적금 등을 합친 M2 증가세가 확대된다.

문제는 인플레이션 우려가 가중되면서 정부와 한은이 시중유동성 흡수, 기준금리 인상에 나서려고 해도 기업 구조조정이 더디면 정책 전환에 부담이 되는 데다 실기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기업을 고려하면 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을 유지해야 하지만 인플레이션 압력을 감안하면 금리인상 등 정책 전환을 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질 수 있어서다.

한은 관계자는 “기업구조조정이 원활하게 진행되는 것이 빠른 정책 전환의 필수불가결한 조건은 아니지만 고려 사항일 수는 있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김주형 안대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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