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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깔모자와 황금날개] <175> 꿈꾸는 자들의 부활 ⑮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9.06.22 17:56

수정 2009.06.22 17:56



■글: 박병로 ■그림: 문재일
옵션 만기일은 20일 정도 남아 있고 오늘 하루로 보면 아직 아침이었다. 옵션 가격은 하루에도 여러 번 오르거나 내렸다. 그러니 강일남이 낌새가 수상쩍다며 손절매를 하라고 소리치는 것을 얼마든지 흘려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실시간으로 표시되는 거래 손익평가표가 순식간에 억, 하고 숨 막히게 했다. 이 추세라면 곧 어제 수익을 반납하고도 손실을 볼 것 같았다.

두 번째 손절매 타이밍을 놓치고 있었다. 억지스럽지만 노이만은 굴욕을 참고 물타기를 해두었다.

그것이 손실을 보전하고 장차 큰 수익으로 반전시키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도 처지가 비슷했다. 울상을 짓고 있는 오시리스와 죽음의 그림자라도 본 듯 망연자실 앉아 있는 오프라 팰리스도 그 희망을 붙안고 있었다.

“세 분, 잠깐 옥상에서 좀 봐요.”

으스스 불안감이 들어 노이만이 세 사람을 불러냈다. 강일남을 사무실에 남겨두고 모였을 때 보니 모두 불안에 떨고 있었다. 오시리스가 피우지 않던 담배를 빼물고 눈을 번뜩였고, 오프라는 서 있기도 힘이 드는지 벽에 등을 기대고 쪼그려 앉았다. 선해 보이기만 하던 김순정의 눈도 오늘따라 표독스러워 보였다.

“순정씨는 그래도 손실이 크지 않겠지?”

“마이 빠졌슴다, 오시리스님!”

순정이 오시리스를 빤히 바라보았다.

“내레 풋 옵션이라고 하지 않았슴까?”

누가 아는가. 개구리가 어디로 튈지 모르듯 주식시황도 갑자기 반등을 하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노이만은 그렇게 자기변명을 했다. 물타기를 해놓았으니 웬만큼 반등할 기미만 보여도 성공이었다.

“촛불이 꺼지기 전에 반짝 빛이 난다고 하죠?”

“그래 두고 보자고. 아직 손을 턴 것은 아니니까 말이지.”

오시리스가 그렇게 말하자 오프라 팰리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아무리 봐도 내릴 이유가 없어요. 제 판단을 믿어요.”

그 순간 노이만은 희망을 버렸다. 오시리스와 오프라 팰리스, 그리고 김순정의 표정에 서린 희망과 낙관이 너무 익숙해서였다. 돈을 잃는 사람들이 대개 저런 방식으로 망설이고 기대감을 부풀렸다. 그러고는 단숨에 망했다.

노이만은 휴대폰을 꺼내 필립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대손실! 지금 즉시 손절매 긴급명령 발동해 주시길!

필립이 강제 조치를 취해야 할 시점이었다. 필립의 명령이라야 손절매를 할 사람들이었다. 두 사람이 명령에 따를지는 미지수였으나 그렇게라도 해야만 마지막 남은 얼마라도 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노이만은 사무실의 자기 자리로 돌아오자마자 시장가격으로 청산주문을 넣었다. 코스피200지수가 잠시 옆걸음을 걷고 있었으나 노이만은 믿지 않았다. 그것은 반등을 위한 주춤거림이 아니었다.

오프라 팰리스와 오시리스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장 막판으로 갈수록 표정에 그늘이 짙어갔고 필립이 돌아왔을 때는 숨도 쉬지 못하고 차트를 지켜볼 뿐이었다.


“아, 졸라! 청산을 하라니까 왜 안 합니까?”

필립이 오시리스를 향해 삿대질을 했다.

“아까 청산만 했어도 몇 억은 더 건졌지 않냐구요!”

두 사람은 아직도 거래를 청산하지 않고 옵션을 모두 보유하고 있었다.
당장 증거금을 추가로 납부하지 않으면 강제 청산을 당할 형편이었으나 두 사람은 버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