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원종원의 올 댓 뮤지컬] 한국판 ‘노트르담 드 파리’

정순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9.08.20 17:07

수정 2009.08.20 17:07



지인의 소개로 처음 알게 된 뮤지컬 음반을 한참동안 자동차 CD 플레이어에서 꺼내지 못했던 적이 있다. 중독성이 강한 멜로디와 선율이 끊임없이 입가를 맴돌았기 때문이다. ‘노트르담 드 파리’ 하면 떠오르는 개인적인 기억이다. 2009년 늦은 여름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우리말 공연을 보면서 느끼게 되는 감회는 그래서 더욱 남다르다.

빅토르 위고의 동명 소설이 원작인 이 뮤지컬은 현대 프랑스 뮤지컬의 부흥을 가져온 기념비적 작품이다. 우리에겐 ‘노틀담의 꼽추’라는 제목이 더 익숙하지만 원래 소설의 프랑스어식 제목은 ‘노트르담 드 파리’가 맞다.
중장년층이라면 앤서니 퀸과 지나 롤로브리지다가 나왔던 1961년작 영화로도 기억할 만하다. 시간이 흘러 영화의 감흥은 추억 속에 남아 있겠지만 무대 위에서 만나게 되는 이야기의 재미는 세월의 무게를 넘어 감동을 재연하는 묘한 체험을 선사한다. 고전을 극화한 유형의 콘텐츠들에서 느낄 수 있는 뮤지컬의 묘미이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세계적인 뮤지컬 산업의 입장에서 보면 사실 프랑스는 그저 변방에 불과했다. 그러나 98년 파리에서 처음 막을 올린 ‘노트르담 드 파리’는 일거에 유럽 대륙을 뮤지컬 돌풍에 휩싸이게 했다.

흥행의 요인은 복합적이다. 우선 사랑 이야기를 좋아하는 프랑스 대중들의 취향에 어필한 것이 주요했다. 아름다운 집시 처녀 에스메랄다를 향한 꼽추 콰지모도, 성직자 프롤로, 그리고 약혼자가 있던 근위대장 페뷔스의 ‘이뤄질 수 없는’ 연정이 남다른 아쉬움을 자아냈다. 여기에 영미권 작품들과 달리 노래하는 배우와 춤추는 무용수를 철저히 분리시켜 종합예술로서 뮤지컬을 재구성해낸 것이 신선함을 자아냈다.

그러나 무엇보다 주목받았던 것은 노랫말에 담긴 인문학적 정서와 유럽의 장구한 역사와 경험으로 인한 무게감, 그리고 아름다운 선율의 음악이었다. 뮤지컬에서는 신대륙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의 물결과 단테의 신곡, 루터와 개신교 등이 하나씩 열거되며 시대상을 조명한다. 구텐베르그의 인쇄술과 근대 신문의 전신인 팸플릿의 유행, 새로운 사상의 전파에 대한 노랫말들에서는 오랜 연륜에서 풍기는 향기마저 느껴진다. 유럽이기에, 그리고 프랑스이기에 가능한 역사와 고전의 재해석이 그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잉태해낸 셈이다.

우리말 번안 공연은 여러 차례 앙코르 무대를 거치면서 완성도와 치밀함을 더해 무척 만족스럽다. 특히 서범석의 프롤로나 윤형렬의 콰지모도, 그리고 남자 무용수들의 몸짓과 춤사위는 시쳇말로 ‘물이 오른’ 느낌이다. 커튼콜이 시작되면 무대 앞까지 뛰어나가 배우 앞에서 ‘서서 환호하는’ 애호가들의 모습도 다른 공연에서는 만나기 힘든 프랑스 뮤지컬만의 이색 풍경이다.
공연을 즐겼다면 머뭇거리지 말고 과감히 뛰어나가라 부추기도 싶을 정도다. 연말에는 중국으로 투어 공연도 계획되고 있다 하니 좋은 성과가 있었으면 좋겠다.
제작진에게 격려와 응원을 보낸다.

/순천향대 교수·뮤지컬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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