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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지난 25일 본지와 인터뷰에서 ‘한국의 미’는 ‘조화와 여운’이라고 말했다. /사진=박범준기자 |
‘이 시대 최고의 지성’이라 불리는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 그와 마침내 인터뷰를 잡았을 때 기자는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지난 1960년대에 쓴 ‘흙속에 저바람속에’를 비롯해 70년대 ‘신바람 문화’, 80년대 ‘벽을 넘어서’, 90년대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자’, 2000년대 ‘디지로그 선언’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예견하며 그가 던진 화두는 실로 많은 사람들의 이성과 감성을 일깨워 왔다. 특히 1981년 그가 쓴 책 ‘축소지향의 일본인’은 지금도 일본의 대학입시 국어 문제의 단골 메뉴로 등장한다.
일흔 후반의 나이임에도 늘 많은 글쓰기와 열정적인 강연은 물론 최근에는 디지로그 창조학교 초대 명예교장, 문화예술 올림픽으로 불리는 제주세계델픽대회 명예고문을 맡기도 했다.
젊은이 못지않은 건강 비결에 대해 “항상 일에 몰두하며 살기 때문에 아플 겨를이 없다”고 말하는 그를 지난 25일 서울 순화동 중앙일보 14층 고문실에서 만났다.
―근황이 어떠신지요.
▲얼마 전 일부 언론보도도 있었습니다만 디지로그 창조학교를 만들어 개인적인 일보다는 거기에 매달려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인터넷에서의 개강일자가 다음 달 1일이고 제가 총괄멘토를 맡고 있기 때문에 바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세계 최초로 설립된 디지로그 창조학교의 초대 명예교장을 맡으셨는데요. ‘디지로그’란 게 무엇인가요.
▲쉽게 말하자면 디지털이란 결국 신호입니다. 우리가 어릴 때 전등 가지고 한 번 깜빡하면 나와라, 두 번 하면 어떻게 해라 했듯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하나의 신호죠. 따라서 디지털은 반도체건 뭐건 수량화·계량화할 수 있는 것이고 아날로그는 계량화할 수 없는 것이죠. 예를 들면 계단이 몇 개인지 셀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언덕 같은 겁니다. 제가 늘 얘기하는 게 요즘 아무리 인터넷에서 다 할 수 있어도 먹을 수는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씹을 수 있는 디지털, 그것이 디지털이지만 마치 씹히는 것처럼 현실과 대립되지 않고 어울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3’는 완전히 디지털환경에서 이뤄지는 게임이고 닌텐도의 ‘위’는 골프를 한다든지 실제로 내 몸을 가지고 한다는 것이죠. 역시 디지털 기술에 아날로그적인 인터페이스를 가미해야 미래의 기술이 있다는 얘기죠. 가령 컴퓨터에 말로 ‘너 이런 거 써봐라’ 해서 들어간다면 그게 디지로그입니다. 이것은 앞으로 세계기술이 나가야 할 방향입니다. 그걸 우리가 미리 하자는 거죠.
―시대를 앞선 사고와 조화를 이뤄 그야말로 디지로그 인간의 모델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런 혜안과 지식은 어디서 얻으시는지 궁금합니다.
▲어디서건 남의 뒤를 쫓거나 남의 말을 잘 순종하지 않고 내 생각을 얘기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그게 남들 눈에 띄게 된 것이죠. 그리고 저는 어릴적부터 호기심이 많아 뒤뜰에서 쇠꼬챙이로 땅을 파 보곤 했어요. 그러면 흙에서 사금팔이도 나오고 이상한 것들이 많이 나오는데 사람들이 질색을 하고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냐”고 했어요. 땅속에 묻혀 있는 것,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숨어 있는 그 무엇들과의 숨박꼭질이었죠. 또 누님들이 들판에서 나물 캐는 것을 쫓아다녔어요. 그게 바로 채집시대였죠. 이후 농사짓는 농경시대, 죽어도 좋으니 연기만 나라며 공장 짓던 박정희 산업개발시대, 정보시대를 거쳐 요즘은 바이오니 뭐니 나노융합광시대에까지 온 겁니다. 급변경 경계선 속에 내가 서 있게 된 거죠. 그렇게 보면 불행한 시대도 있었지만 한편으론 행복한 시대에 그동안 88서울올림픽, 2002한일월드컵 총괄기획, 새천년준비위원장 등 한국의 큰 변형을 이루는 역할을 맡기도 했어요. 시대의 물결 속에서 남보다 한두발짝 앞서 예견 내지는 ‘이래야 된다’는 걸 화두로 던진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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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폭의 풍경화 같은 경북 안동의 초가집. |
―‘한국의 미’라 하면 아름다운 관광지나 한옥, 한복, 한식, 한글과 같은 한 스타일을 떠올리게 되는데요. 진정한 한국의 미는 무엇인가요.
▲‘한국의 미’를 말할 때 중국이나 일본과 비교하면 이해가 쉬워요. 예로 중국은 담을 굉장히 높이 쌓았죠. 일본의 담은 울타리가 거의 없는 식이죠. 보통 사람들은 법적으로도 울타리를 칠 수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우리의 돌담은 반은 가리고 반은 열려 있잖아요. 따라서 한국의 미는 극단적인 것이 아니고 중간의 미예요. 춤도 보면 일본이나 남방은 손, 아프리카는 발로 추지만 우리는 온몸으로 추죠. 쉽게 말해 미녀의 얼굴을 크게 확대해 보세요. 징그러워 못 봅니다.
땀구멍이 커서, 또 작게 해도 안되는 거죠. 그러니까 사이즈가 굉장히 중요한데 한국의 미는 적절미라 할 수 있어요.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고 양극이 전부 조화된 조화의 미란 거죠. 다시 말해 중국과 일본의 중간 형태 속에 그들이 갖고 있지 않은 것, 또 갖고 있는 것을 반도란 풍토에 서로 조화시킨 아름다움이죠. 대륙이라는 거대한 중국 땅덩어리에 오밀조밀한 섬나라 일본, 그 중간에 위치한 한국은 세계에서도 이토록 조화된 지형이 없어요. 조화의 예로 기와지붕이 있어요. 어느 나라나 그 나라의 미를 시각적으로 대표하는 것이 지붕입니다. 지붕을 보면 그 나라가 어떻다 하는 걸 금세 알 수 있어요. 중국은 골이 큰 숫기와가 과장돼 있고 일본은 골이 들어간 암기와 중심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암기와와 숫기와가 파도 치듯 아주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죠. 모르는 사람들은 ‘아 똑같은 기와집’이라고 하지만 들어가고 나온 조화 비율 등 어느 것 하나를 봐도 한국은 모든 것이 다른 거죠. 가령 서양의 종소리는 ‘땡땡땡’하지만 우리는 ‘땡∼’하고 운율과 그 여운이 길죠. 여운을 살리기 위해 종 밑에 항아리를 묻어 놓고 공명 현상을 일으키는데 이는 중국, 일본에도 없어요. 우리는 딱딱 끊어지는 게 아닌 여운이 남으면서 경계가 확실치 않다는 거죠. 이런 애매성, 여운이 우리 마음속에도 있고 행동과 의식주에도 나타나죠.―‘한국의 미’를 관광상품화한다든지 세계화할 수는 없을까요.
▲예전에 일본 사진기자가 홍도에 와 민박을 하는데 온돌방에서 꼭 자보고 싶다고 하더군요. 항상 침대서만 자고 카펫에서 생활하다 보니 온돌방이 신기한 거죠. 사실 방바닥에 종이(장판지) 깔고 자는 건 한국 사람밖에 없어요. 그래서 외국인들은 온돌방에 너무 자보고 싶어합니다. 또 상품화의 예로 한국의 베개처럼 아름다운 게 없어요. 서양 베개는 푹신하기만 하면 되지만 우리 것은 양쪽에 원앙을 수 놓아 얼마나 아름다워요. 호텔에 옆이 긴 부부용 등 다양한 샘플을 장식해 놓고 ‘한국 베개가 수십종이 있는데 혹시 필요하면 프런트로 연락 주세요’라고 한다면 어떨까. 베개는 콩, 쑥, 온갖 곡식이 들어간 것부터 나무로 된 목침 등 그 종류별로 소프트, 중간, 딱딱한 것을 갖춰 놓고 말이죠. 똑같은 세계 체인호텔에 묵더라도 ‘이것이 한국 사람들이 예부터 베고 자는 것이구나, 또 이것이 한국 수의 문화구나. 참으로 우리와 다르구나.’ 이렇듯 ‘내가 한국에 왔다’는 이문화를 접하게 하는 것이죠.”
―한국에서 가 볼 만한 곳, 한곳을 추천해 달라고 한다면 어디를 추천하고 싶으신가요.
▲서울 근교에서는 강화도가 좋다고 할 수 있어요. 자연이나 역사적으로도 특이하고 몽골과의 싸움이라든지, 팔만대장경을 조판했다든지, 강화조약 등 여러 가지 근대 역사도 볼 수 있기 때문이죠. 자연으로 보면 경남 통영의 한려수도 쪽이 참 아름다워요. 세계적인 건축가 프랑크 게리가 그곳 섬 풍경을 보고 “이건 신이 주신 것이라 죽기 전 여기에 집을 지으면 좋겠다”고 했던 곳이죠. 전통적으로 보면 경북 안동, 경주를 들 수 있어요. 이곳은 아직도 살아 숨쉬는 옛 문화와 선비정신이 남아 있죠. 게다가 내가 태어난 곳이 충남 아산 온양이니 거기도 한번 가보라고 하고 싶네요(웃음).”
/dksong@fnnews.com 송동근기자
/공동기획=문화체육관광부 한국관광공사 한국방문의해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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