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아침] 용산참사,이상과 현실의 조화를/김두일 사회부 차장

김두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9.10.16 18:12

수정 2009.10.16 18:12



토머스 모어는 유토피아에서 인류의 이상향을 노래했다. 영국의 15세기 정치가이자 사상가였던 그는 런던에서 법률가인 존 모어경의 맏아들로 태어나 유복한 가정환경에서 자라났다. 그는 이런 가정 환경 때문에 철학, 역사학 등 다방면의 지식을 습득하면서 자아를 형성할 수 있었다. 그는 변호사를 거쳐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당시 나이는 27세.

당시 영국의 정치상황은 아주 혼란스러웠다. 왕족간 왕권을 놓고 30년간 내란(장미전쟁)이 일었다.
이 싸움에서의 승자는 헨리 7세다. 헨리 7세는 이 전쟁에서 완전히 승리해 왕위를 차지한 뒤 나아가 왕권을 크게 강화시켰다. 그러나 모어는 이 강력한 왕권에 도전했다. 헨리 7세의 조세정책에 반기를 든 것이다. 그는 곧바로 의원직을 잃고 만다.

모어는 후임 헨리 8세의 눈에 띄어 대법관으로 발탁됐다. 하지만 이 관직 또한 오래 유지하지 못하고 파면당한다. 당시 영국 귀족사회에는 ‘형사취수혼제’라는 것이 성행했다. 이 제도는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는 제도다. 헨리8세도 그랬다. 헨리 8세는 형수와 결혼했지만 형수가 싫어졌다. 한 궁녀와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헨리 8세는 형수와 이혼하고 싶었으나 가톨릭인 로마 교황청 규율은 이혼을 절대 금지했다.

이에 따라 헨리 8세는 교황청과 관계를 끊고 영국식 교회인 성공회로 개종한 뒤 재혼을 강행했다. 드디어 후처인 궁녀를 왕비로 맞는 대관식 날. 대법관 모어는 이 행사에 불참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그였기에 교황청 율법에 따랐던 것이다. 대법관인 그는 곧바로 반역죄로 몰려 런던탑에 갇혀 옥고를 치르다 단두대에 올라 생을 마감했다.

수형 기간에 집필한 저서가 바로 유토피아다. 모어는 이 책에서 이상향을 그리고 있다. 희랍어로 ‘유’는 ‘없다’는 뜻이요, ‘토피아’는 ‘땅’이라는 뜻이다. 모어 자신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땅(국가)이란 뜻을 알고 책 제목을 붙였던 것일까.

책의 일부를 인용하면 모어는 ‘도둑을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어젠다를 제시한다. 모어는 귀족들이 독차지한 땅, 즉 농경지를 산업화의 원료 창구로 전환했기 때문에 농경지 밖으로 내몰린 배고픈 농민들이 도둑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농민=도둑’은 사회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지배계층인 귀족들의 생각은 달랐다. 게으르고 나태한 심성, 그릇된 농민들의 행태에서 도둑질이 비롯됐기 때문에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상과 현실’이 충돌했던 당시 영국 근대사의 모습을 그대로 시사해 주는 대목이다.

이상과 현실의 충돌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지난 13일 서울시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장. 이 자리에서도 ‘이상과 현실’이 충돌한 것으로 보였다. 170여일 전에 발생한 용산참사를 둘러싸고 여야간, 야당의원과 오세훈 서울시장간에 격돌이 벌어졌다.

야당 의원들은 용산 참사 유가족들에게 사망자 위로금, 장례비 지원, 세입자 보상금 외에도 정부의 사과 및 임시상가의 제공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피감기관의 장인 오 시장은 모두 수용할 수 있어도 정부의 사과와 임시상가 제공은 형평성 차원에서 불가하다는 입장으로 맞섰다. 양측간의 의견 차가 좁혀질 수가 없다고 판단했는지 야당 소속의 한 의원은 오 시장에게 사태 해결을 위해 유가족들을 몇 번이나 만났느냐고 따져물었다.


오 시장은 “의원님들은 지금 국감장에서만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서울시는 그동안 뼈를 깎는 노력을 했다. 유가족과 만나는 시점은 시장이 적절하게 판단하겠다”며 “(유족과 만나는 일에 대해) 절대로 망설일 일은 없다”고 한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처럼 용산참사의 최대 걸림돌은 정부의 사과와 임시상가 제공 여부가 관건이다. 야당 의원들의 요구는 ‘이상’이요, 오 시장의 형평성 위배 주장은 ‘현실’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논리의 단순화일까.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고 있는 용산참사, 아픈 상처를 씻고 이상과 현실을 조화할 수 있는 해법은 정말 없는 걸까.

/dikim@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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