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국

[무역입국의 그늘,밀수 밀화] <49> 밀수방지 구호 변천사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9.10.27 17:10

수정 2009.10.27 17:10



1970년 8월 밀수근절에 무게를 두고 관세청이 개청한다.

당시 전국 세관청사 앞에 붙은 구호도 한결같이 붉은 글씨로 된 ‘밀수근절’ 아니면 ‘밀수방지’였다. 그 주위에는 밀수방지표어가 따라 늘 나붙었다. ‘밀수방지 따로 없다 사지 말고 쓰지 말자’ ‘밀수는 나라의 적 사치는 가정의 적’ ‘마음모아 경제부흥 힘모아 밀수방지’ ‘밀수 없는 우리나라 살기 좋은 우리나라’ ‘힘모아 밀수방지 늘어나는 나라살림’ ‘엄마쓰는 밀수품에 아빠공장 문닫는다’ ‘내가 사는 외래품이 밀수행위 키워준다’ 등이었다.

특히 1970년대 초에는 국산품생산이 저조한 가운데 외제물품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어 범정부 차원에서 외제물품단속을 실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단속에 반발, 1971년 초에 서울 남대문지하상가 상인들의 집단난동사건도 있었지만 부정 외래차량, 부정양주 등을 비롯한 부정 외래품에 대한 합동단속은 더욱 강화됐다.

드디어 1974년 7월 1일 정부는 부정 외래품근절을 위한 종합대책을 수립, 전국적으로 합동단속에 나섰다. 1970년 초에 태동한 새마을운동은 근면·자조·협동을 기본이념으로 한 지역사회개발운동이자 사회혁신운동의 하나였다. 새마을운동을 이룩하기 위해서는‘부정외래품을 안팔고, 안사고, 안써서 새마을을 이룩하자’는 데에 동참해야만 했다.

그리고 1975년 수출 50억달러에 이어 1977년 수출 100억달러를 돌파한 것처럼 1970년대는 수출에 총력을 기울인 시대였다. 1964년도에 수출 1억달러를 달성한 후 13년 만에 달성한 쾌거였다. 이러한 수출진흥에 힘입어 1980년대로 넘어오면서 표어 속에 수출의 탑이 등장하게 된다.‘수출로 쌓은 탑 밀수로 금이 간다’ ‘천불어치 밀수하면 만불수출 허사된다’ ‘힘을 모아 밀수방지 마음모아 경제부흥’이 시대를 대표한 표어였다.

통관절차 간소화와 우루과이라운드 타결에 의한 개방화로 1990년대에는 밀수방지표어가 가두캠페인의 주제가 되어 나타난다. ‘밀수품 추방하여 경제발전 이룩하자’ ‘4천만의 밀수근절 밝아지는 복지사회’ 등이 리본과 피켓에 새겨져 시장바닥으로까지 파고들었다. 1990년대 중반으로 넘어오면서 처음으로 마약이란 말이 밀수표어에 등장한다. 마약밀수가 우리 사회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이다. ‘밀수마약 뿌리 뽑아 건전사회 이룩하자’ ‘한두 번의 밀수거래 하다보면 집안망신’ ‘말보다 실천으로 밀수·사치·낭비 배격하자’ ‘내가 쓰는 밀수품 아들 딸이 지켜본다’ ‘몰래파는 밀수품에 우리경제 병이 든다’ 등이 널리 사용됐다.


그리고 2000년대가 되면서 밀수표어는 그 매력을 점차 잃어갔다. 아날로그성 구호는 디지털문화에 접목이 힘들다는 것일까? 그만큼 시장이 개방화되고 글로벌화가 되다보니 밀수표어는 시대의 퇴물처럼 뒷전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지금은 ‘밀수신고는 이리로, 전국 어디에서나 ☎125번’이 밀수신고 구호가 되어 국민의 신고를 기다리고 있다.

/이용득 부산세관박물관장

■사진설명= 1990년대 초반 가두 밀수근절 캠페인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