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헤어스프레이’ 박경림 “6년만의 꿈,열정으로 채울래요”

박하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9.10.29 16:36

수정 2009.10.29 16:36



반가웠다면 거짓말이다. ‘방송인’이라는 모호한 명찰을 달고있는 박경림(31)이 뮤지컬에, 그것도 대형 작품의 주연으로 발탁됐다는 소식에 의아함을 먼저 느꼈으니까. ‘도 넘은’ 연예인 캐스팅이란 항간의 불만도 지나친게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를 만나고 싶었던 것은 주역을 따낸 수완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인터뷰에 앞서 잡다한 정보를 모으다 새삼 놀라기도 했다. 십수년간 TV와 라디오를 통해 친숙한 박경림이지만 진짜 모습은 모호했다.

오락프로그램 진행자, 라디오 DJ, 인터넷 의류 쇼핑몰 사장, 한 아이의 엄마. 이제껏 그를 수식하는 말들에만 관심을 가졌지 실제로 그가 어떻게 그 일을 하게 됐는지 관심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아무도 새겨듣지 않았던 꿈, 6년만에 이루다

“아유, 욕 정말 많이 먹고 있죠. 제가 관객이어도 불만이 많을 것 같아요.”

본론으로 들어가는 일은 쉬웠다. “뮤지컬 ‘헤어스프레이’의 주연을 맡은 것에 대해 여론이 어떤지 아냐”고 묻자 솔직한 대답이 튀어나왔다.

“갑자기 일어난 일이 아니에요. 제가 6년 전부터 말했던 꿈인 걸요. 주위 사람들이 귀담아 듣지 않았을 뿐이지.”

연습 3주차에 접어든 그는 아직 쌩쌩했다. 그는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돌이 채 되지 않은 아들을 서너시간 돌보다 집을 나선다. 오후 1시부터 9시까지 연습실에서 노래와 춤, 연기 연습을 한 뒤엔 DJ를 맡고 있는 라디오 프로그램 ‘별이 빛나는 밤에’의 스튜디오로 향한다. 그간 출연하던 모든 TV프로그램의 활동은 중단한 상태다.

그의 유별난 ‘헤어스프레이’ 사랑은 업계에선 이미 널리 알려진 일이다. 2003년 미국 유학길에 나선 그는 뉴욕 생활 2개월 만에 ‘헤어스프레이’를 봤고 그야말로 홀딱 반했다. 이후 16번이나 재관람을 한 그는 매표소 직원이 따로 저렴한 티켓을 챙겨줄 정도로 골수팬이 됐다.

결국 그는 2007년 국내 초연 때 ‘겁도 없이’ 오디션장을 찾았다. 당황한 제작진은 최대한 에둘러 ‘불합격’을 통보했다.

“경림씨, 이번은 좀 힘들것 같으니 다음에 도전해보자, 다음에 하면 참 잘 할 것 같아.”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은 박경림은 올해 또 오디션에 응시했다. “그때 하신 말이 ‘설마 또 오겠어?’ 하는 마음에서 한 말이었을지도 몰라요. 지금은 다른 배우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신경을 많이 써주세요. 저에 대해 다들 각오를 단단히 하셔서 그런지 오히려 연습이 수월해요.”

■‘넌 못해’ 손가락질에 ‘할수 있다’로 보여주고파

각종 방송 활동만으로도 바쁜 그가 뮤지컬 무대까지 넘보는 것을 불편해하는 시선도 많다. 그의 개런티는 보통 연예인이 첫 뮤지컬에 도전할 때 받는 수준이다.

“자기 본업도 아닌데 왜 그렇게 집착하느냐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불가능하다’는 걱정은 이미 ‘별밤(별이 빛나는 밤에)’의 DJ로 발탁됐을 때와 ‘박고테 프로젝트(박수홍, 박경림의 고속도로 테이프 만들기 프로젝트로 2002년 출시된 박경림의 첫 앨범)’ 때에도 수없이 들었어요. 하지만 결국 해냈잖아요.”

서른 초입의 그는 극중에서 뚱뚱하고 못생긴, 그러나 꿈많은 18세 소녀 트레이시로 분한다.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트레이시는 유명 프로그램의 오디션에 응모해 선발되는가 하면 여학생들의 우상인 링크와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전 돈도 권력도 없는 집에서 태어났어요. 예쁘지도 않고 목소리도 이상했죠. 학창시절 내내, 방송계에 입문한 뒤에도 좌절의 순간은 많았어요. 하지만 기왕 이렇게 된거 슬퍼하지만 말고 열심히 살자고 다짐했어요.”

그 다짐처럼 그는 ‘저주 받은 성대’라며 너스레를 떨다가도 ‘첫 음반을 25만장이나 팔고 7개도시 투어도 했다’며 자신만만해 했다. 누구보다도 자신의 단점을 잘 알고 있다는 박경림은 가창력이 부족하면 연기와 춤으로, 그마저도 부족하면 열정으로 채워가겠다고 말한다.


“저처럼 부족한 점이 많은 사람들이 작품을 보고 용기를 얻어갔으면 좋겠어요. ‘박경림도 했는데!’라고 말이죠.”

/wild@fnnews.com 박하나기자

■사진설명=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위해 "최대한 어려보이는 옷을 입고 왔다"는 박경림은 카메라를 들이대자 환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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