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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포커스] 변화의 중심에 선 박범훈 중앙대 총장

노정용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9.11.26 17:05

수정 2009.11.26 17:05

■“개혁없는 대학 도태될뿐..쉽지않지만 멋진 기회”

“지난 1년 동안 가장 큰 변화는 두산그룹이 중앙대의 새 주인이 되면서 흩어져 있던 중앙대 구성원들에게 커다란 구심점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구성원들도 ‘이제 우리도 하면 된다’는 분위기가 형성됐어요. 모든 게 마음 먹기에 달렸다(一切唯心造)고 하지 않습니까.”

지난해 말 제12대에 이어 13대 총장으로 연임된 박범훈 중앙대 총장(61)은 박용성 이사장과 함께 중앙대 개혁의 쌍두마차로 불린다. 중앙대 교수 930명 전원을 대상으로 연봉제를 시행한 데 이어 강력한 학문 단위의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는 그는 “학문 단위의 구조조정은 미래지향적인 틀을 기초부터 아예 다시 짜보자는 뜻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대학 구조조정은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학과 명을 하나 바꾸는 것까지도 모든 구성원의 합의가 있어야 가능해요. ‘백지에 그림을 그리자’는 박 이사장의 의도는 미래를 내다보며 대학의 행정 구조와 학문 단위는 말할 것도 없고 구성원의 생각까지 모두 다 백지의 상태에서 새롭게 그려보자는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유사 학과 통폐합이나 단과대학 하나 줄이는 것 갖고는 미래를 위한 개혁이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아무것도 없는 백지 상태에서 멋진 그림을 그려 실행시킨다면 우리에게는 엄청난 기회가 될 것입니다.

중앙대에서 추진 중인 학문 단위의 구조조정안은 아직 열리지 않은 ‘판도라의 상자’다. 그러다 보니 ‘핵폭탄급’이 될 것이라느니, 기초학문을 아예 없애고 실용학문만 득세할 것이라느니 말들이 많다. 그런데 박 총장은 아직 확정된 건 아무 것도 없고 내년 5월까지 교내의견 수렴을 거쳐 확정지어 내년도 신입생에게는 적용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두산그룹이 법인이 되더니 ‘대학을 실용학문 중심으로 꾸려서 대기업의 인력 양성소로 만드는 것 아닌가’라고 본의 아니게 오해하고 있어요. 기초학문이 부실해서야 실용학문이 성립될 수 있겠습니까. 박 이사장도 얼마 전 교수들 앞에서 ‘우리가 기초학문을 무시하면서 종합대학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고 했지요. 대학에 와서보니 와인 마시기, 스포츠 활동 등의 교양강좌가 운영되고 있는데 이는 각자 취미로 하면 된다고 했을 뿐입니다”고 설명한다.

중앙대는 경쟁력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교양교육을 강화했다. ‘논리와 사고’ ‘회계와 사회’를 필수교양으로 지정해 졸업 후 사회에서도 즉시 현장업무가 가능한 기초지식을 쌓도록 한 것이다.

“처음엔 문과대 학생들이 반발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졸업 후 몇 퍼센트가 자기의 전공을 살려 사회에 나갑니까. 극소수예요. 논리와 회계 교육을 강화한 것은 중앙대 졸업생으로서 어느 분야에서 일하더라도 바보는 되지 말아야 된다는 생각에서 한 조치입니다. 지금은 학생들의 반응이 좋아 내년에는 교양과목에 한자 1800자 익히기를 포함시킬 생각입니다.”

사실 박 두산중공업 회장이 이사장으로 취임한 후 교수와 학생들의 반발이 적지 않았다. 대부분 기업 최고경영자(CEO)의 입장에서 바라본 대학의 현실에 대한 진단을 구성원들이 오해한 데서 비롯됐다. 지금 현실은 사회가 필요하고 국가를 넘어 세계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길러내지 못하면 대학은 도태될 수밖에 없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그래서 중앙대는 교수들의 연구 능력 향상을 위해 성과주의에 기초한 연봉제를 930명의 교수 전원에게 도입했다. 연봉제를 도입하는 대학이 늘고 있지만 교수 전원에게 적용한 것은 중앙대가 처음이다.

“원래는 연봉제와 호봉제가 함께 시행되고 있었어요. 연봉제를 시행하면 교수들이 손해를 보는 게 아닙니다. 우리와 경쟁하는 대학만큼 대우를 해주고 그 기본 위에서 논문을 많이 쓰거나 연구 성과가 좋으면 그에 따른 인센티브를 더 주겠다는 게 연봉제의 취지입니다. 노력한 만큼 대가를 더 받게 하겠다는 것이지요. 기본 대우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연구 성과에 따라 인센티브가 더 주어지기 때문에 재단의 입장에선 예산이 더 들어갑니다.”

작곡을 전공한 박 총장은 평생을 ‘한국의 소리’를 찾으며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9월 고향인 경기 양평군 강상면의 1203㎡(364평)에 무용·연극·마당놀이 등을 공연할 수 있는 ‘뭇소리 중앙예술원’을 개원했다. 객석 2000개의 야외 공연장, 그룹·개인 연습실과 숙소를 한 건물 안에 갖추고 있으며 지역 문화예술 활동의 활성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한다.

“‘뭇소리’는 ‘보통사람의 소리’라는 의미로 제 호인 ‘범성(凡聲)’에서 따왔습니다. 공연 프로그램의 30% 이상을 양평과 인근 주민에게 무료로 개방하고 야외무대를 중심으로 전통문화예술 프로그램, 전통문화체험 프로그램을 상설 운영할 생각입니다. 게다가 한·중·일 아시아의 음악을 하나로 묶어 한류(韓流)를 넘어 아시아류(流)를 창출할 전초기지가 되게 할 것입니다.”

박 총장은 지난 15년간 한국과 중국과 일본의 악기가 하모니를 이루는 ‘한·중·일 오케스트라’를 창단, 아시아 음악의 세계화를 위해 노력해 왔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는 지난 6월 한·아세안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아세안 전통음악 오케스트라’를 창단해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한국 전통음악은 중국의 영향을 받았고 일본은 우리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런 역사성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그 음악이 그 나라 민족과 살면서 그 나라의 음악으로 승화됐느냐가 더 중요하지요. 해금이라는 악기는 중국에서는 없어졌지만 우리나라에는 남아 있거든요. 그러면 해금은 우리 악기이지 중국 악기는 아닙니다. ‘한·중·일 오케스트라’나 ‘한·아세안 전통음악 오케스트라’는 같은 뿌리를 갖고 그 나라의 특성에 맞게 승화된 음악과 악기를 토대로 미국·유럽에 대항하는 아시아 음악을 만들 것입니다. 우리는 주관자로 남고 한류를 넘어 아시아류를 창조해야 한류가 살아남지 한류만 고집하면 한류는 죽습니다.”

LG브랜드 광고 중 베토벤의 운명교향곡을 편곡하고 국악으로 연주한 덕분에 그의 전공을 한국 전통음악으로 오해하는 이들이 많다. 사실 박 총장은 중앙대 예대 음악과에서 작곡을 전공한 후 일본 무사시노 음대와 같은 대학원에서도 서양음악을 전공했다. 서양음악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그의 작곡은 전통음악이면서도 귀에 익은 듯 편안하다. ‘신모듬’ ‘사랑의 춤’ ‘축연무’ 등이 그런 예다.

한국의 아름다움을 ‘인간미’로 압축하는 박 총장. ‘그렇지!’ ‘좋다, 좋아!’ ‘잘한다!’와 같은 추임새로 멋진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을 들려주면서 인터뷰를 끝냈다. “예술을 전공하지 않아도 아름답게 살 수 있어요. 남이 잘하는 것은 잘한다고 인정해주고 못하는 것은 잘하라고 치켜세워주고 부모와 형제간에 그리고 이웃간에 서로의 좋은 점을 인정해주고 칭찬해주고 격려해주는 게 잘사는 방법입니다. 어려울수록 추임새로 서로 치켜세우며 살아가야 합니다.”

■박범훈 총장은…

1948년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난 그는 중앙대 제12대 총장에 이어 제13대 총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중앙대 예대 음악과에서 작곡을 전공했으며 일본 무사시노 음대 작곡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다.
동국대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국립국악관현악단 단장 겸 예술감독을 역임하고 현재 ‘오케스트라 아시아’의 상임지휘자를 맡고 있다. 박 총장은 “대금, 피리, 태평소, 해금, 가야금, 거문고, 양금, 아쟁 등이 어울려 아름다운 하모니를 내듯이 중앙대가 세계 속의 중앙대가 되도록 재단과 학교를 잘 지휘하겠다”고 밝혔다.


/noja@fnnews.com 노정용기자

■사진설명=중앙대 박범훈 총장은 "남이 잘하는 것은 잘한다고 인정해주고 어려운 때일수록 못하는 것은 잘하라고 추임새로 서로 치켜세우며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사진=박범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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