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누가 덕을 볼지 궁금하다. 연말을 맞아 나란히 관객 앞에 선 영화 ‘청담보살’과 뮤지컬 ‘점점’을 두고 하는 이야기다.
두 작품 모두 점(占)이 주제다. 운명이 점지해 준 남자와 실제로 마음에 드는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여심(女心)을 다룬 것도 같다. ‘빼빼로 데이’(11월 11일)에 개봉한 영화를 본 관객이 지난달 25일 막을 올린 뮤지컬 ‘점점’을 본다면 ‘비슷하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점점’의 제작사는 “신기하다. 소식을 전해 듣고 한참 웃었다. 두 제작사 사이에 아무런 관계가 없으니 마케팅을 위해 일부러 맞춘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점점’은 창작뮤지컬 ‘스페셜레터’로 한껏 주목받고 있는 신예 작가 박인선이 1년6개월 전 한 술자리에서 지인들에게 던진 아이디어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그렇다면 ‘언뜻 보아 비슷한’ 두 작품의 ‘은근히’ 다른 점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일단 ‘청담보살’의 주인공은 점을 봐주는 처녀보살 태랑, ‘점점’은 점 보는 것을 밥 먹듯이 하는 노처녀 맹신비다.
일찌감치 신내림을 받아 돈벌이에 나선 태랑은 신당만 벗어나면 요즘 말로 ‘엣지있는 골드미스’다. 재산도 많고 미모도 빼어나다. 근사한 사랑을 해본 적은 없지만 초조하거나 두려운 기색도 없다.
맹신비는 그 반대다. 인생 자체가 불안감으로 꽉꽉 차 있다. 보기 안쓰러울 정도다. 직장에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평생의 반려자도 찾지 못한 채 속절없이 나이만 먹는다. 없는 살림에 3개월 할부를 해 가면서까지 부적을 쓰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태랑과 신비를 괴롭게 하는 운명의 남자는 좀 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청담보살’에서 임창정이 맡은 승원은 가난하고 별볼 일 없는 남자, 우리 주위에 널리고 널린 인물이다. 허나 맹신비의 상대역인 오묘한은 독특하다 못해 괴기스럽다. 그의 공식 직함은 ‘사단법인 유니버스 커뮤니케이션 한국지부장, 낙뢰체험동호회장, 프리랜서 UFO 연구가’다. 국내 최고의 명문대를 나왔어도 절로 손사래가 쳐지는 캐릭터다.
닮은꼴 행보로 첫발을 뗀 뮤지컬과 영화는 다른 결말을 택한다. 영화는 팔자를, 뮤지컬은 사랑을 택했다고나 할까.
예측 가능한 마무리와 수차례 반복재생된 ‘임창정식 찌질이 연기’ 탓에 영화는 영 맨송맨송하다. 그에 비해 ‘점점’은 소재의 독특함을 잘 살려냈고 결말도 마음에 든다. 넘버 역시 소극장에 어울리는 발랄한 느낌으로 탄생됐으며 정상훈과 오나라 두 배우의 푼수끼 넘치는 연기도 딱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여타의 로맨틱 뮤지컬이 드러내는 한계-진부함과 늘어짐-가 드러나는 건 아쉬운 대목이다. 신비와 고 PD의 러브신은 필요 이상으로 비장하고 장엄해 뵌다. 오락영화야 한번 개봉하면 끝이지만 공연은 얼마든지 기회가 있으니 다듬어볼 일이다.
참, 두 작품은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을 뻔’했다. ‘청담보살’의 태랑은 28세, ‘점점’의 여주인공 맹신비 역시 처음엔 28세였다. 맹신비 역을 맡은 오나라가 ‘요즘 세상에 28세를 누가 노처녀로 보느냐’고 항변해 맹신비는 두 살을 더 먹은 30세로 무대에 서게 됐다.
/wild@fnnews.com 박하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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