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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2005년 국내에서 초연된 뮤지컬 ‘헤드윅’이 3일로 1000회 공연 기록을 세웠다. 올해 공연에서 트랜스젠더 록 가수 헤드윅 역을 맡은 강태을(왼쪽 사진)과 윤도현. |
뮤지컬 ‘헤드윅’의 원제는 ‘헤드윅과 성난 1인치(Hedwig and the Angry Inch)’이다. 동독에서 태어난 한셀 쉬미트는 동성애자인 미군 병사의 제안을 받고 체제와 이념을 넘어 자유를 찾아 ‘미국인’이 되는 대가로 성전환 수술을 감행한다. 그러나 싸구려 시술 덕에 사타구니엔 1인치의 살덩어리가 남게 되고 혼란스러운 성 정체성으로 인한 방황은 그의 삶 자체를 변화시킨다. TV시리즈 ‘미녀 삼총사’의 파라 포셋을 연상케 하는 금발 가발을 쓰고 한때 사랑을 나눴던 인기가수 토미의 주변을 맴돌며 그는 음악과 추억 속에서 살아간다. 뮤지컬은 그런 헤드윅의 삶과 사랑, 인생과 꿈에 대한 내용을 1인극의 넋두리 같은 콘서트 형식에 담아 이야기를 전개한다.
스크린과 무대를 넘나드는 현대 문화산업의 진화를 연재하면서 제일 많이 듣게 되는 질문은 콘텐츠의 원류가 어디에서 비롯됐는가 여부다. 국내에서 뮤지컬 ‘헤드윅’은 영화로 먼저 명성을 누렸지만 사실 시발점은 무대가 맞다. 2001년 제작된 스크린 버전에서 극본과 감독, 주인공의 1인 3역을 선보였던 존 카메론 미첼은 영화보다 3년여 전인 1998년 오프 브로드웨이의 제인 스위트 극장에서 처음 무대에 등장했었기 때문이다. 극중에서도 언급되지만 이 극장은 타이태닉호 침몰 사건 때 생존자들이 머물렀던 리버뷰 호텔 무도회장 자리를 변형한 것으로 떠돌이 음악가인 헤드윅의 밴드가 구식 호텔의 허름한 공간에서 콘서트를 펼치는 이미지를 고스란히 구현해내 큰 호응을 받았다. 독특한 소재와 극 전개는 공연 애호가들로부터 곧 많은 인기를 누리게 됐고 2년여의 공연은 훗날 영화 제작의 중요한 계기이자 밑거름이 됐다.
많은 대중문화 콘텐츠들이 그렇듯 이 작품도 드러나지 않은 시대적 배경이나 뒷이야기를 알고 보면 작품 감상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물론 동·서독의 분할이나 베를린 장벽의 붕괴 등 구체적인 사료들이 등장하지만 그것 말고도 흥미로운 단서들은 곳곳에 배치돼 있다. 예를 들자면 반짝이 의상과 화려한 치장 등으로 자신을 포장하고 있는 헤드윅의 모습은 1970년대 서구 사회에서 큰 인기를 누렸던 글램 록(Glam Rock) 풍을 투영한 것이다. 글램 록이란 자극적인 의상이나 화려한 메이크업, 부풀려진 헤어스타일 등을 지향하는 일련의 경향으로 같은 시기의 히피 문화와는 구분되어지는 또 다른 시대적 유행의 한 단면이다. 올드 팝 애호가라면 익숙할 데이비드 보위나 이기 팝, 루 리드 등이 손꼽힐 만한 대표주자인데 물론 극중 글램 록 스타일의 헤드윅의 무대 퍼포먼스나 음악은 자유와 인간애에 대한 그의 이상과 고민을 반영한다. 유행이나 스타일 등 특정한 시대적 코드의 활용은 복고나 향수 마케팅에도 용이할 뿐 아니라 작품의 철학적 지향점이나 완성도를 은연중에 보완할 수 있다는 면에서도 도움이 된다.
신화의 차용도 마찬가지다. 극중 헤드윅은 사랑의 대상인 토미에게 ‘그노시스’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그노시즘이란 인간이 지식을 통해 육체를 초월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이교 논리로 극 안에서 혼란스러운 성 정체성의 굴레가 그들의 사랑에 걸림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를 방증한다. 이브가 선악과를 먹는 것은 저주가 아닌 지혜를 찾으려는 인간 구원의 시작이며 혼란스러운 성 정체성을 경험하게 되는 헤드윅의 경험 역시 마찬가지 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다는 논리의 적용이다. 주제가 격인 노래 ‘사랑의 기원(Origin of Love)’도 마찬가지다. 원래 인간은 둘이 한 몸이었으나 이를 시기한 신들이 사람을 쪼개놓았고 그래서 자신의 반쪽을 만나면 사랑을 느끼게 된다는 내용은 고대 희랍의 희곡작가였던 아리스토파네스의 연설 내용을 빌려온 것이다. 들춰내면 들춰낼수록 이야깃거리가 풍부해지는 매력은 전 세계적인 팬덤 문화로 이어지기도 했다.
뮤지컬은 영화와 무대를 오가며 인기를 누렸지만 자세히 보면 마지막 장면은 조금씩 다르다. 무대에서는 헤드윅이 토미가 되는 1인 2역의 연기를 통해 안드로진(남녀가 하나로 합쳐진 존재)의 구현이 상징적으로 전개되지만 영화에서는 의식의 흐름 같은 초현실주의적 종결로 마무리된다. 무대를 봤어도 영화가 재미있고, 영화를 알고 있어도 무대를 찾게 되는 ‘멀티 유즈’의 흥행 공식을 영리하게 활용하고 있다.
전 세계 ‘헤드윅’의 마니아들은 스스로는 헤드헤즈(Hed-Heads)라 부른다. 흥미로운 점은 다른 문화권에서는 헤드헤즈 성비에 남녀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은 반면,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여성 헤드헤즈가 많다는 점이다.
뮤지컬 관객 중에 여성이 절대다수를 이루고 있는데다 ‘예쁘고 잘 생겨서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은’ 스타급 배우들이 이 작품에 자주 등장해서 나타난 현상이다. 하지만 헤드윅의 진정한 재미는 물론 선입견으로부터의 해방과 성 정체성 이면에 담긴 진정한 인간성의 발견에서 찾아야 한다. 마침 윤도현, 강태을 등 노래 잘하는 스타들이 가세한 연말 무대가 막을 올렸다고 하니 꼭 감상해보길 바란다./순천향대 교수·뮤지컬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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