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영화 한 편이 만들어졌다. ‘정사’의 이재용 감독이 윤여정, 이미숙, 고현정, 최지우, 김민희, 김옥빈 등 6명의 여배우와 함께 만든 ‘여배우들’이다.
‘여배우들’은 일종의 페이크 다큐멘터리(Fake Documentary)다.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어디까지가 실제인지 구분하기 쉽지 않다. 우선 6명의 출연 배우가 모두 실명을 사용한다. 20대부터 60대까지 세대를 아우르는 이들은 자기 자신을 직접 연기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연기’를 한다는 점이다. 스크린 속의 고현정이, 혹은 최지우가 100% 실제 모습이라고 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100% 연기라고 할 수만도 없다. 이런 경계의 모호함이, 혹은 이종(異種) 간의 결합이 이번 영화의 재미이자 즐거움이다.
빛나는 아이디어에 비하면 영화의 스토리는 비교적 단순한 편이다.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둔 2008년 12월 24일, 6명의 여배우가 서울 청담동에 있는 한 스튜디오에 모인다. 패션잡지 ‘보그’의 화보를 촬영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들의 만남은 처음부터 순조롭지 않다. 윤여정은 혹시 자신이 누군가의 ‘대타’로 섭외된 건 아닌지 의심하고 막내인 김옥빈은 나이 많은 선배들과의 만남이 두렵다. 또 ‘한류스타’ 최지우는 밤샘 촬영을 핑계로 뒤늦게 촬영장에 나타나고 선배인 고현정은 그런 최지우가 못마땅하다.
반나절이 될까 말까 한 시간을 담은 영화엔 별다른 사건이 없다. 자칫 밋밋해질 수도 있는 이야기에 방점을 찍은 건 고현정과 최지우의 ‘기 싸움’이다. 먼저 시비를 거는 쪽은 고현정이다. 별자리 운운하며 최지우를 비아냥거리던 고현정이 급기야 손으로 머리를 쥐어박고 이에 격분한 최지우가 버럭 화를 내며 촬영장을 나가버리는 것. 이게 영화를 위한 설정인지 실제인지는 관객이 알아서 판단할 일이지만 이 장면이 없었다면 영화가 훨씬 더 심심해졌을 것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인다.
긴장감이 감돌던 촬영장이 다시 화기애애해진 것은 순전히 눈 때문이다. ‘크리스마스 악몽’이 ‘화이트 크리스마스’로 급반전하는 순간이다. 창밖에 내리는 새하얀 눈에 홀딱 반한 여배우들은 화보 촬영을 위한 소품 준비가 지연되는 것을 핑계로 급작스레 크리스마스 파티를 준비한다. 와인을 가져오고 간단한 안주거리를 마련하고 식탁 주위에 둘러앉는다. 여기까지가 딱 영화의 절반이다.
영화의 후반부는 여배우들의 ‘취중 진담’이다. TV 토크쇼를 방불케 하는 그녀들의 수다는 나의 라이벌, 약점, 프라이드, 소문, 질투, 스타로 살아가기, 젊음과 늙음, 남자, 이혼 등 다양한 얘깃거리로 진화한다. 여배우들의 속내를 숨김없이 드러내고 스스럼없이 눈물짓는 이 장면에서만큼은 그녀들의 표정도 사뭇 진지해 보인다.
‘다세포소녀’ 이후 3년 만에 신작을 내놓은 이재용 감독은 “잘 짜인 웅장한 오케스트라가 아니라 실력 있는 연주자들이 즉흥연주를 하는 재즈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면서 “기본 갈등구도는 감독인 내가 직접 설정한 것이지만 영화 속 대사는 여배우들과 같이 쓰다시피 했다”고 말했다. 12세 이상 관람가. 10일 개봉.
/jsm64@fnnews.com 정순민기자
■사진설명=윤여정, 이미숙, 고현정, 최지우, 김민희, 김옥빈 등 6명의 여배우가 출연하는 영화 '여배우들'은 실제와 허구가 공존하는 일종의 '페이크 다큐멘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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