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액화석유가스(LPG) 6개사에 사상 최대액수인 총 6689억원의 과징금을 물렸다. 가격 담합으로 폭리를 취했다는 게 그 이유다. 공정위는 당초 1조원대 ‘슈퍼’ 과징금을 검토했으나 그나마 최종 액수가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그럼에도 과징금 ‘폭탄’을 맞은 기업들은 행정소송을 제기하겠다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번 결정은 당위와 현실의 대립이다. 공정위는 소비자 후생을 극대화하고 궁극적으로 국가 경쟁력을 높인다는 명분을 앞세워 LPG 담합에 철퇴를 내렸다. 이에 대해 기업은 “현실적으로 수입 원가가 같고 유통 마진이 뻔한데 어쩌란 말이냐”고 반박한다. 실제 LPG 시세는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사인 아람코가 매월 발표하는 가격이 기준이 된다.
공정위에 대한 기업들의 불만은 폭발 직전이다. 이번에 가장 많은 과징금이 부과된 E1(1894억원)의 경우 작년 순이익의 3배 이상을 물어내야 할 판이다. 이러니 불복과 소송이 줄을 잇지 않을 수 없다.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과징금에 대한 불복 소송 비율은 2007년 18%에서 2008년 48%로 높아졌고 올 상반기엔 56%로 급등했다. 기업들이 소송을 통해 돌려받는 환급금도 올 상반기의 경우 전체 과징금의 83%에 육박하는 등 급증세다. 불복과 소송이 당연시되고 환급금이 절반을 넘어서는 이 같은 사태는 공정위로선 난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부에선 LPG 업계가 친서민정책의 희생양이 됐다는 시각도 있다. 공정위는 국세청의 행정지도를 충실히 따른 소주업계에도 수천억원대 과징금 부과를 벼르고 있다. 과도한 과징금은 결국 기업 활동 위축으로 이어진다. 이는 정부도 바라는 바가 아닐 것이다.
일벌백계도 좋지만 과징금 부과가 확실한 근거에 입각했는지 재점검해야 한다.
칼만 휘두를 게 아니라 먼저 담합을 바로잡을 합리적인 방안을 정비하는 것도 중요하다. 기업이 자발적으로 시정을 약속하고 이를 이행하면 제재를 면해주는 동의명령제가 좋은 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 널리 쓰이는 이 제도는 기업과 경쟁당국 간의 소모적인 마찰을 줄이고 잦은 소송과 패소로 인한 당국의 권위 실추를 사전에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