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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리스본 조약 발효..새단장한 EU/안정현 파리 통신원

박지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9.12.03 17:00

수정 2009.12.03 17:00

12월 1일부터 유럽연합(EU)이 새 옷으로 단장하게 됐다. 이른바 리스본 조약의 발효다. 우여곡절 끝에 모든 회원국의 비준을 얻음으로써 유럽연합은 새로운 전기를 맡게 되었다.

리스본 조약의 발효와 더불어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유럽연합 정상회의 상임의장직의 신설이다. 유럽연합의 대통령이라고도 불리는 이 직책은 회원국 국가 및 정부 수반들의 회의체인 정상회의를 주관하는 자리다. 지금까지는 회원국에서 6개월씩 돌아가며 회장국을 맡아왔으나 리스본 조약의 발효로 2년 6개월 임기의 상임의장이 순번제 회장국을 대체하게 된다.

초대 대통령엔 헤르만 판롬파위 벨기에 전 총리가 선출되었다. 한때 이 상임의장 자리에는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가 강력하게 거론됐었다.

그러나 주요 회원국 특히 독일의 반대와 EU에 전통적으로 비협조적이었던 영국에 대한 회원국들의 의구심의 벽을 넘지 못하고 결국 중간에 낙마했다. 초대 판롬파위 대통령은 대화와 타협의 기술사로 알려져 있으며 실제로 언어권 갈등으로 정치적 위기를 겪고 있는 벨기에 정부를 무난하게 잘 운영해 왔던 점이 주요 회원국들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그의 기용이 적절했는지에 대해서는 여론이 분분하다. EU 상임의장이 강력한 결정권을 행사하는 자리라기보다는 회원국 간 이견을 조정하고 타협안을 제시하는 일이 중심 업무가 된다는 점에서 판롬파위와 같은 관리형 지도자의 기용은 적절했다는 게 지지자들의 입장이다. 그러나 EU의 얼굴 격인 상임의장 자리의 중요성에 비해 국제적인 인지도가 떨어진다는 점, 국제무대에서 경험 부족에 따른 우려도 크다.

포르투갈 조약의 발효에 따른 또 다른 주요한 변화는 외교, 안보정책 고위대표의 신설이다. EU의 외교정책을 총괄하게 될 외무장관 격인 이 자리는 기존의 집행위원보다 강력한 권한을 갖게 되며 EU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을 겸하게 된다. 초대 외무장관 자리는 영국의 캐서린 애슈턴이 맡게 되었다.

이 밖의 주요한 변화로는 회원국들의 거부권 축소다. 지금까지 주요 사안에 대해서는 만장일치 원칙을 채택함으로써 27개 회원국 중 하나라도 거부권을 행사하면 사안이 부결되게 돼 있었다. 이 원칙은 과거 회원국 수가 적을 때는 의미가 있었으나 현재처럼 회원국 수가 27개나 되고 향후 회원국 수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원칙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번 리스본 조약의 채택으로 회원국 만장일치를 요구하는 사안들을 축소하고 다수결의 원칙으로 결정되는 사안들을 대폭 늘렸다. 사법 공조 및 이민 문제 등 기존에는 만장일치를 요구했던 40여개의 사안이 이번 조약으로 다수결 결정 사안으로 바뀌게 되었다. 다수결 결정 사안은 현재 27개 회원국 중 최소 15개 회원국의 동의가 있어야 하며 찬성 회원국들은 EU 인구의 65% 이상을 대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개별 국가의 외교 문제 등 국가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여전히 만장일치 원칙이 그대로 유효하게 된다. 이 밖에도 유럽의회의 권한 강화와 시민 발의제도 도입 등 민주주의 원칙 또한 더욱 확대된다.

리스본 조약을 통해 외적으로는 EU의 존재를 더욱 잘 부각시키고 내적으로는 좀 더 원활한 운영이 가능해질 것으로 회원국들은 기대하고 있다. 특히 상임의장의 존재와 다수결 결정 사안의 확대로 말미암아 EU의 의사결정이 더욱 빠르고 원활해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지난 2001년 니스 조약의 발효로 옛공산권 동구 유럽에 문호를 개방한 이후 외적으로는 성장을 거듭해 왔지만 EU 내에서 유럽 회의주의 또한 같이 커져 왔던 것도 사실이다. 지난 2005년 야심차게 준비되었던 유럽 헌법안이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국민투표로 부결된 것이 그 예다.

이번 포르투갈 조약의 발효로 지난 유럽 헌법안 부결 이후 답보 상태에 빠져 있던 EU를 다시 정상궤도에 올릴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junghyun@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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