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시장이 일부 재개발·재건축 조합들의 극단적인 이기주의에 멍들고 있다. 올해 중반 이후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신규 분양시장이 살아나자 재개발·재건축 단지의 조합이 조합원 부담금을 경쟁이라도 하듯 일반분양분 분양가에 전가시키면서 분양가 거품을 조장하고 있고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행태가 주택시장을 왜곡시키는 것는 물론 회복기미를 보이고 있는 주택 분양시장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조합들의 이기주의는 여기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입주 과정이나 입주 후에도 카르텔을 형성,일반분양을 받은 비조합원들의 발언권을 제한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파이낸셜뉴스는 최근 재개발·재건축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조합 이기주의 실태를 짚어보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대안을 모색하는 시리즈를 진행한다.
“불과 두 달 전에 옆동네에서 훨씬 높은 가격에 분양해 성공했는데 어떻게 더 싸게 분양합니까. 조합원들 입장에서는 일반 분양가가 비쌀수록 추가분담금이 줄어드니 당연히 더 올리려고 하죠. 이번에 총회를 열어 일반분양가를 이 수준에 맞춰 (3.3㎡당 300만원 정도) 더 올렸어요.” (서울 성동구 A재개발조합 관계자)
“인근 재개발 구역에서 총회까지 열어 일반 분양가를 다시 책정했는데 우리만 가만히 있을 수 없지요. 내년 초 일반분양분을 공급할 예정인데 조합원들이 총회를 열어 분양가를 다시 산정하자고 난리예요. 아마 관리처분때 책정한 분양가에 비해 족히 3.3㎡당 수백만원은 오를겁니다.”(서울 성동구 B재개발조합 관계자)
“단순 도급을 맡은 건설사로서는 조합원 재산에 대해 조합원들이 결정하겠다는데 달리 제지할 방법이 없어요. 조합에서는 싫으면 나가라는데 이미 프로젝트파이낸싱(PF) 보증도 섰고 공사도 80% 이상 진행돼 발을 뺄 수 없잖아요.” (대형건설업체 재건축 사업담당자)
3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최근 신규 분양시장이 호황에 힘입어 서울 수도권 재개발·재건축단지 일반 분양가가 거침없이 치솟고 있다. 이는 재개발·재건축단지들이 조합원들의 추가부담금을 줄이기 위해 잇따라 고분양가를 책정하고 있는데도 잇단 분양 성공으로 이어지면서 조합마다 경쟁적으로 분양가를 올리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서울과 수도권 재개발·재건축 단지의 일반분양분 분양가는 불과 3∼4개월 만에 3.3㎡당 수백만원이 올랐다. 올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서울 시내 재개발·재건축단지 일반분양가는 3.3㎡당 1500만∼1700만원대였지만 지금은 웬만하면 2000만원을 훌쩍 넘는다.
■재개발·재건축 일반분양가 몇달새 3.3㎡당 수백만원↑
서울 성동구에서 일반 분양을 앞두고 있는 한 재개발 단지는 지난달 20일 주민 총회를 열어 지난해 5월 책정했던 일반분양가를 크게 올렸다. 당시 전용면적 59㎡ 일반 분양분의 경우 3억5000만∼3억8000만원(3.3㎡당 평균 1458만원)이었지만 이를 4억3000만원(평균 1793만원) 안팎으로 올려 내년 초 일반에 분양할 예정이다. 이 조합 관계자는 “인근 신당동에서 삼성물산과 대림산업이 지난 6월부터 3.3㎡당 각각 1526만원, 1775만원에 분양해서 성공했기 때문에 주민들이 총회를 열어 분양가를 새롭게 책정한 것”이라며 “주변 집값에 비해서도 비싼 게 아니기 때문에 분양에는 큰 문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지난 10월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에서 ‘래미안 트윈파크’의 분양가를 3.3㎡당 2300만∼2500만원에 책정했다. 이는 동부건설이 지난 6월 인근 흑석5구역에서 분양한 ‘동부센트레빌’이 3.3㎡당 평균 1803만∼2123만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불과 넉달 만에 300만원 이상 오른 가격이다. 래미안 트윈파크가 이처럼 일반분양가를 높게 책정한 것은 흑석동 동부센트레빌이 1순위에서 평균 29대 1의 청약경쟁률로 마감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오는 2월께 인근 흑석4구역에서 분양 예정인 단지는 조합원들 사이에서 일반분양가를 3.3㎡당 2500만원까지 올리겠다는 움직임까지 일고 있다. 이 단지의 일반분양가는 최근 관리처분과정에서 3.3㎡당 2100만원대에 결정됐었다.
이달 초 현대산업개발이 분양한 서울 강동구 고덕동 고덕주공1단지 재건축 아파트 ‘고덕아이파크’의 분양가를 3.3㎡당 2500만∼3000만원까지 올렸다. 이는 지금까지 국내 최고 분양가로 지난해 10월 분양된 서초구 ‘반포래미안 퍼스티지’의 분양가(3.3㎡당 2946만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재개발·재건축 단지의 고분양가 책정 사례는 서울지역에만 그치지 않는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지난달 경기 군포시 산본동에서 분양한 ‘래미안 하이어스’도 3.3㎡당 1600만원대의 분양가를 책정해 군포시에서 최고 분양가 아파트로 이름을 올렸다. 당시 인근 의왕시 내손동에서 분양한 래미안 에버하임이 3.3㎡당 1300만∼1400만원이었던 것에 비해 200만원가량이나 높은 것이다.
■조합들 후분양제 등 악용 건설사 압박
이처럼 재개발·재건축 단지들이 경쟁적으로 고분양가를 책정하면서 비난의 화살이 단순 시공사인 건설사들에게 쏟아지고 있다. 건설사의 경우 단순히 시공해 조합으로부터 공사비만 받기 때문에 고분양가로 분양해서 성공해도 별 이득이 없다. 더구나 분양가 책정 권한은 전적으로 조합운영에 관한 사항이어서 이를 제지할 명분도 없다. 그런데도 건설사들은 고분양가 책정이 건설사들의 문제인양 비쳐지는 것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대형 건설사의 한 관계자는 “재개발·재건축 단지의 일반분양분에 고분양가를 책정하면 소비자들은 원인 제공자인 조합보다는 건설사를 비난하는 상황”이라며 “이 과정에서 미분양까지 발생하면 기업이미지나 브랜드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말했다.
특히 조합측에서는 일반분양가를 높일 경우 이는 조합원의 추가분담금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에 다소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높이려 한다. 하지만 일부 조합에서는 재건축 등 사업이 대부분 후분양제로 진행되는 것을 악용해 건설사를 압박하는 사례도 종종 벌어지고 있다.
다른 건설사 한 관계자는 “조합측에서 무리한 분양가 책정을 요구해서 계속 반대했더니 시공사를 교체하겠다고 압박했다”면서 “건설사 입장에서는 이미 공사를 80% 안팎까지 진행, 공사비 투입은 물론 조합을 대신해 PF보증까지 선 상태여서 조합요구를 들어 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 때문에 회사 내부에서도 수차례 회의를 열어 차라리 사업을 접는 방안까지 고민하다 결국 분양했지만 이 단지의 분양성적은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kwkim@fnnews.com 김관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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