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정보통신

“후발사도 많이 컸다” 보호해주던 ‘유효정책’ 무효로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9.12.06 17:54

수정 2009.12.06 17:54



정부가 13년 동안 유지하던 후발 통신사업자 보호 우산을 걷어내기로 하면서 국내 통신시장은 KT-SK텔레콤-통합LG텔레콤 3강의 완전 자유경쟁 체제로 전환될 전망이다.

그간 정부의 유효경쟁 정책의 보호 아래 상대적 수혜자였던 LG텔레콤은 내년 1월 LG데이콤·LG파워콤 합병 이후 거대 SK텔레콤-KT와 정면경쟁이 불가피하게 됐다.

■정부 “통신 3강 목표 달성”

KT가 올 6월 자회사인 KTF를 합병한 데 이어 LG텔레콤·데이콤·파워콤의 내년 1월 통합을 앞두고 정부는 국내통신 시장이 3강 경쟁 체제로 자리를 잡았다고 평가하고 있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올해 여러 차례 “국내 통신시장은 3강 체제가 자리를 잡아 효율적인 시장경쟁이 조성돼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통합 KT는 2008년 기준으로 유선과 무선사업을 합쳐 20조원의 매출규모를 갖췄다. SK텔레콤은 자회사인 SK브로드밴드와 합쳐 13조원의 덩치가 됐고 LG텔레콤도 7조7000억원 수준의 거대그룹이 됐으니 3개 그룹이 모두 자생력을 갖췄다고 판단하는 것.

■“면밀한 경쟁평가 먼저 해야”

일각에서는 유효경쟁 정책 변화에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통신 3그룹이 모두 자생력을 갖췄다고는 하지만 통합LG텔레콤의 매출은 여전히 KT 매출의 38%에 불과한 게 현실이다.

당장 LG텔레콤과 KT를 동등하게 규제할 경우 LG텔레콤의 체력이 급속히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

LG그룹 한 고위 관계자는 “후발 사업자 셋을 합쳐 놓는다고 단번에 선발사업자 수준의 경쟁력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며 “정부가 경쟁정책을 전환하기 전에 통신시장의 경쟁상황에 대한 면밀한 평가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신업계 한 전문가는 “통신 3그룹 체제가 본격화되는 시점에 정부가 종합적인 경쟁상황을 평가해 유효경쟁 정책을 재설계하고 단계적으로 유효경쟁 정책을 축소해 연착륙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시장의 충격을 줄이는 방안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접속료 체계 변화 예고

정부가 걷어내는 보호 정책 중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망사업자간 접속료 체계가 될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접속료는 통신망을 다른 회사에 접속해 줄 때 받는 통신망의 값인데 SK텔레콤은 다른 통신업체들에 분당 33.41원을 받는다. 반면 KT 이동전화망은 38.71원, LG텔레콤은 39.09원을 받는다. LG텔레콤은 비싼 접속료를 받으면서 생기는 이익은 연간 2000억원에 달한다.

가입자가 적은 후발 사업자에게 접속료라도 높게 쳐줘 이익을 보전해 준다는 게 유효경쟁 정책이 적용된 접속료 계산 방법이다. 이 덕에 LG텔레콤은 다른 이동통신회사보다 싼 요금제를 만들 수 있고 마케팅 비용도 쓸 수 있었다.

그러나 유효경쟁 정책이 사라지는 내년 말 접속료 협상에서는 접속료 차이가 최소화될 것이라는 게 업계 판단이다. 이렇게 되면 LG텔레콤이 저렴한 요금전략을 유지하면서 휴대폰 보조금 마케팅을 지속할 수 있을지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통신 ‘유효정책’ 이란

국내 통신시장에 유효경쟁 정책이 적용된 것은 지난 1997년.

당시 KTF(현 KT)나 LG텔레콤, 하나로통신(현 SK브로드밴드) 같은 새 통신 사업자를 선정한 정부는 이들 후발 사업자가 이미 10여 년 전부터 통신사업을 하고 있던 SK텔레콤, KT와 정면경쟁을 하면 생존이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 때문에 SK텔레콤과 KT를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정해 정부의 규제를 강하게 적용하기로 했다. 같은 업종에서는 기업들이 동등한 환경에서 경쟁하는 게 원칙이지만 사실상 경쟁이 불가능한 통신산업의 선·후발 사업자 간 특성을 감안해 경쟁이 가능해질 때까지 차등규제를 적용한다는 게 유효경쟁 정책이다.

가장 큰 효과를 발휘했던 유효경쟁 정책은 2004년 1년 동안 시행된 시차적 번호이동제. 이동전화 가입자들이 자신의 전화번호를 바꾸지 않으면서 이동전화 회사만 바꿀 수 있는 번호이동제를 처음 도입하면서 SK텔레콤 가입자는 1년 동안 KTF나 LG텔레콤으로 번호이동을 할 수 없도록 막아 놓았던 것.

소비자의 선택권을 침해한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당시 정부는 시장의 경쟁체제를 갖추는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이 덕에 2003년 말 480여만 가입자로 이동전화 시장에서 14.4%를 차지하는데 그쳤던 LG텔레콤은 시차적 번호이동제가 끝난 2004년 말 가입자 600만명에 시장점유율이 16.6%로 급상승했다.

또 과징금 차별제도도 있었다. 똑같은 잘못을 하더라도 시장지배적 사업자는 과징금액의 50%를 가중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2000년대 초반 일부 후발 통신 업체들은 선발 통신업체가 잘못을 저지르도록 일부러 유도해 과다한 과징금 처벌을 받도록 했던 전례도 있다.


공중전화나 도서 산간지역의 시내전화 같은 보편적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KT의 적자를 통신업체들이 십시일반으로 보전해 해는 보편적 서비스기금도 시장 지배적 사업자는 다른 통신업체보다 10% 가중된다.

후발 사업자의 통신망을 비싼 값에 접속하도록 해 후발 통신업체들의 이익을 보장해 주는 접속료 차등정책은 2004년 SK텔레콤과 LG텔레콤 접속료 차이가 84%나 될 정도로 극심한 차이를 보였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가 선발 사업자를 강하게 규제해 후발 사업자가 통신시장에 안착하도록 지원했던 유효경쟁 정책이 사라지는 내년 이후 국내 통신산업은 대규모 변화기를 맞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cafe9@fnnews.com 이구순 권해주기자

/cafe9@fnnews.com 이구순 권해주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