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 본격적인 국제 ‘통상마찰’이 예고되는 가운데 7일 한국무역협회·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공동주최로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위기이후 새로운 무역질서’ 국제콘퍼런스에서 ‘보호주의’ 경계론이 다시 대두됐다. 이와 함께 세계경제 ‘맏형’격인 미국의 공백을 향후 세계무역기구(WTO) 등 다자간 국제기구가 대체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문도 함께 남겼다.
‘금융위기 이후 신(新)국제무역질서’는 크게 ‘자유주의’ 대 ‘보호주의’ 흐름이 될 것이란 분석이다. 파스칼 라미 WTO 사무총장 등 회의 참석자들은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되살아난 보호주의 망령이 자유무역주의의 근간을 해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라미 사무총장은 기조연설에서 “실업률 증가 등 각국 경제상황에 따라 보호무역주의 압력이 최소한 1∼2년 더 지속될 것”이라며 “보호주의 감시활동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자주의 시스템이 ‘스트레스 테스트’를 받게 됐다”며 “단기적인 이익 때문에 각국이 이 같은 포지션을 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논의의 본질은 사실상 미국이 자국경제의 ‘내상’을 치유하면서 보호주의를 어느 정도 강화할 것인가로 귀결된다. 미국은 세계적인 경제위기 변곡점인 지난 1970년, 1980년, 1990년대에 일시적으로 보호주의를 강화했던 경력이 있다. 이번에도 보호주의로 회귀할 것이란 우려가 높다. 특히 이번엔 강도가 더 세질 것이란 게 문제다. 전문가들은 의료보험 개혁 및 아프가니스탄 전쟁 증파가 마무리되는 대로 본격적으로 통상 문제에 날을 세울 것으로 전망했다.
앤 크루거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미국은 지금까지의 대내적인 현안들에 대해 정리하고 본격적으로 통상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될 것”이라며 “미국의 자유무역기조 및 통상정책 근간은 지속될 것”이라고 답했다.
이에 대해 삼성경제연구소 곽수종 연구원은 “미국의 보호주의는 자유무역이란 큰 흐름을 대치하는 게 아니라, 치유기간 동안 취하는 전략적인 포지셔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라미 총장은 “이번 경제위기는 어느 때보다 심각했지만 정책대응은 매우 빨랐다”며 “그러나 재정확장 정책이 지속돼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빠르게 이어지고 있는 경제회복이 거듭된 경기부양으로 과열로 이어져선 안된다고 주장했다.
한편 대니 라이프지거 전 세계은행 부총재는 한국이 경제성장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3가지 변수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가 지적한 3가지 변수는 △낮아지는 은퇴연령 △여성의 저조한 경제활동 참가율 △서비스산업의 낮은 생산성 등이다. 주요 20개국(G20)의 역할을 과대평가해선 안된다는 의견도 나왔다.
라미 사무총장은 “G20의 역할은 정치적인 방향타에 있일 뿐, 의사결정 기구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의사결정권한이 있는 국제기구, 즉 국제연합(UN)의 경제사회이사회(ECOSOC)의 역할 및 기능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hcho@fnnews.com 조은효기자
■사진설명= 7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KITA-PIIE 국제콘퍼런스'에서 사공일 한국무역협회 회장(앞줄 가운데)이 세계무역기구(WTO) 파스칼 라미 사무총장(앞줄 왼쪽 첫번째) 등 참석자들과 환한 얼굴로 행사장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김범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