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남자의 자격은
여성의 급격한 사회적 지위 상승을 요청하는 목소리는 이미 옛말이다. 물론 아직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해가 다르게 여성의 사회 진출 속도는 빨라지고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더 이상 여성의 지위를 논할 필요도 없이 이미 여성은 한국 사회의 주축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뜨는 별이 있으면 지는 별도 있다고 했던가. 여성의 사회 진출은 성에 대한 시각을 통째로 뒤흔들기 시작했다. 남녀평등을 기치로 한 제도나 법이 무수히 쏟아져 나왔고 이제는 정말 ‘주민등록번호의 뒷자리 첫 숫자만 빼고 다 똑같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남자로서 알게 모르게 받을 수 있었던 ‘이익’은 기대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드라마에서 전업 가사를 하는 남성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KF-16 전투기를 조종하는 여성 파일럿은 여느 남자 조종사보다 우수한 능력을 보여준다. 직업도 더 이상 성별을 구분하는 요소가 되지 못할 정도이니 외적인 요소로 성별 간의 차이를 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게 된 것이다.
이렇게 남녀 평등이 실현되면서 이제 남성 정체성의 모호성이 부각되고 있다. 기존의 남성이 갖고 있던 면은 사라지고 소극적인 남성, 겁 많은 남자가 많아졌다는 사실은 이와 무관치 않다. 실제 초등학교에서는 여자 아이들이 더 적극적으로 반을 이끌어 나가고 똑 부러지게 발표도 잘 하지만 남자아이들은 쭈뼛쭈뼛거리다 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대학가에서도 당차고 똑똑한 ‘알파걸’들은 늘어만 가는데 그에 상응하는 수만큼 있어야 할 ‘알파보이’는 아무리 둘러봐도 찾을 수가 없다며 혀를 차는 교수가 많다.
한 방송국의 예능 프로그램 가운데 ‘해피 선데이-남자의 자격, 죽기 전에 해야 할 101가지’라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모으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남자로 태어났다면 죽기 전에 한번쯤 해봐야 할 일’이라는 부제가 눈길을 끈다. 직접 여러가지 미션에 부딪히면서 진정한 남자라면 이런 일 정도는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다. 아무리 어려운 미션이 주어지더라도 꿋꿋이 해내면서 시청자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남녀 평등의 시대에 진정한 남자의 자격이 무엇인지 명확히 정의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이렇게 변한 남자가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 아니냐고 되물을 수도 있겠지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여성과 맞서 싸우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적어도 자신이 해야 할 일에서 머뭇대는 남자가 아닌, 힘들고 어렵더라도 해내는 그런 남자가 되자는 것이다. 사회의 주목받는 일이 아니더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해낼 수 있다면 진정한 남자에 조금은 가까워질 수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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