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국

[서울시,희망의 인문학] (2) ‘평범한 가장’꿈인 노숙인 강모씨

김두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9.12.10 16:56

수정 2009.12.10 16:56



강덕식씨(37·가명)는 키 172㎝에 몸무게 75㎏으로 다부진 체구다. 그래서 그는 일일 건설노동자로 나서면 목구멍에 풀칠 정도야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데 술이 문제였다. 강씨는 술 때문에 망가진 인생이 됐고 그의 아버지도 그랬다.

그는 전남의 한 바닷가 마을에서 농부의 첫째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월남 파병까지 다녀왔다.
아버지는 강씨가 세살 때 이혼했으며 이때 동생은 영양실조로 숨졌다. 아버지는 그야말로 술주정꾼이었다.

그의 고향이 바닷가이긴 했지만 고등학교가 몇개 정도는 있을 만큼 작지 않은 도회지였다. 강씨는 이곳에서 고등학교를 마쳤다. 고교 졸업 후 경남 마산에서 직장을 구해 일을 했지만 달리 돈을 모으진 못했다.

스물한 살 때 아버지는 술에 못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강씨는 상경했다. 한 회사에 취직, 영업업무를 했으나 월급은 받는 대로 유흥비로 탕진했다. 막가는 인생이 따로 없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스물여섯 살 때 고향 작은집으로 돌아가 생활했으나 작은아버지의 술주정을 견디다 못해 다시 상경했다.

그는 상경 후 봉제업체, 택배업체에 취직했으나 돈을 모으지는 못했다. 이것도 싫증난 그는 ‘백수’로 전락했고 PC방을 전전하며 노숙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이어 과거에 했던 일용직 건설근로자로 나갔지만 술과 함께 방탕생활은 계속됐고 이것도 그리 길게 가지 못했다. 급기야 진짜 노숙인으로 전락했다.

그의 첫 노숙지는 서울 영등포역이다. 사지 멀쩡한 젊은이가 술 때문에 노숙생활에 들어가 아버지, 작은아버지에 이어 인생이 술로 완전히 망가지는 순간이었다.

완전한 노숙자 강씨. 어디로 가면 무료 급식이 이뤄지고 날이 추워지면 어떤 자선단체에서 따뜻한 옷가지를 나눠준다는 정보야 꿰고 있을 정도로 노숙에 이력이 붙을 대로 붙었다. 그로서는 꽤 괜찮은 생활이라고 생각했다. 종교단체에 가면 3000∼4000원씩 적선해주기도 했다. 이 돈으로 소주를 사면 몇병인가, 한량이 따로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의 ‘아지트’인 영등포역에서 아주 평범한 한 가족을 목격했다. 강씨는 부러웠다. 자신 또래의 한 남자가 아내와 함께 아이를 데리고 어디로 가려는지 기차역으로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강씨는 “나도 할 수 있었는데 왜 못 했을까”하는 후회가 들었다. 돌아본 자신은 노숙인이었고 한심스러웠다.

그 사람처럼 살고 싶다는 욕망이 솟았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장 어떻게 해야 할지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을 뿐더러 능력도 없었다. 결국 노숙인 보호 쉼터인 ‘반석 희망의 집’으로 발길을 향했다.

그를 처음 본 사회복지사 방형주 부장은 ‘해보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충분히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판단했다. 건장한 체격, 잘난 외모, 보통사람에 비해 하나 뒤떨어지지 않는 강씨였다. 방 부장은 강씨를 쉼터 규칙에 따라 생활패턴을 바꿔놓고 일일 건설현장 일자리를 구해줬다.
이어 사이버 대학에 입학시켜 졸업과 함께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도록 했다.

특히 방 부장은 강씨를 서울시 희망의 인문학강좌를 이수케 하고 서울시가 주선하는 자활의 집(노숙·저소득 세대에 전세금 지원)에 입주, 그의 꿈인 ‘평범한 가장’으로 한발 두발 내딛도록 했다.
그는 지난해 저축관리 프로그램 저축왕에 선발됐고 서울시 희망플러스 통장에는 400만원이 적립돼 있다.

/dikim@fnnews.com 김두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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