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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인찬의 팬텀오브더뮤지컬] 퀴즈쇼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9.12.10 17:26

수정 2009.12.10 17:26



창작의 길은 멀고 험하다. 검증 없이 맨땅에 헤딩하는 식이니 당연하다. 객석의 반응은 어떨지, 언론이나 비평가들은 뭐라 할지 두려움이 클 수밖에 없다. 이런 위험을 안기 싫은 제작자들은 검증 절차를 거친 외국 작품의 라이선스 공연을 선호한다. 로열티를 주더라도 그게 최소한 덜 손해보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배우들도 창작물 출연을 꺼릴 때가 있다.
공연이 죽을 쑤면 괜히 이미지만 나빠지기 때문이다. 아직 한국에서 창작 뮤지컬은 그 자체로 대단한 용기다.

‘퀴즈쇼’는 인기 소설가 김영하의 장편 ‘퀴즈쇼’를 원작으로 삼았다. 뛰어난 작가의 작품답게 짜임새는 훌륭하다. 오늘을 사는 20대 백수의 절망과 희망을 현실과 환상(사이버 세상)을 오가며 다룬다. 빈털터리 대학원생 민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때려치우고 돈을 벌기 위해 퀴즈의 세계로 뛰어든다. 그러나 그 곳 역시 오로지 돈 때문에 불의와 편법이 판치는 곳이란 걸 깨닫고 예전의 착한 민수로 되돌아온다는 내용이다. 일자리를 얻기 위해 온갖 굴욕을 감수하는 요즘 젊은이들이 보면 금방 공감할 듯하다. 3층 격자형 고시방이나 영상을 활용한 입체적인 컴퓨터 속 사이버 세상 등 독창적인 무대장치도 눈길을 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객석은 ‘퀴즈쇼’에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커튼 콜은 밍밍했고 의례적인 앵콜 요청조차 없었다. 관객들은 2시간30분이라는 긴 공연의 지루함에서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려는 듯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왜 이런 반응이 나타난 걸까.

무엇보다 공연이 너무 길었다. 대형 뮤지컬의 경우 종종 2시간30분을 채울 때가 있다. 그러나 그 긴 시간 내내 관객을 잡아두려면 뭔가 특별한 요소가 있어야 한다. 팽팽한 긴장감은 기본이며 눈이 휘둥그레질 화려한 무대도 따분함을 덜어준다. ‘퀴즈쇼’엔 그런 요소가 없다. 좁은 의자에서 두 시간 이상은 누구한테나 상당한 인내심을 요한다. ‘퀴즈쇼’는 2시간으로 줄여도 극 전개에 큰 무리가 없을 듯하다.

배우가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노래로 객석을 휘어잡는 것이다. 뮤지컬 배우는 백번 양보해서 서툰 연기는 몰라도 허술한 노래만은 용서받기 힘들다. 그런 면에서 ‘퀴즈쇼’는 큰 아쉬움을 남긴다. 넘버들 역시 공연 뒤에도 절로 흥얼거릴만큼 귀에 딱 들어오는 멜로디가 없다. 극 초반 민수 외할머니의 초상을 치를 때 눈길을 확 끌었던 안무가 격자형 고시방에서 맥없이 흐트러진 것이나, 딱딱한 주제의 공연에 양념처럼 끼었으면 좋았을 적절한 유머가 빠진 것도 아쉽긴 마찬가지다.


라이선스 공연의 홍수 속에서 좋은 창작 뮤지컬은 흙속의 진주를 보는 듯 반갑다. 다행히 뮤지컬은 사후 얼마든지 손질이 가능한 장르다.
‘퀴즈쇼’가 객석과 교감의 폭을 넓히는 작품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paulk@fnnews.com

■사진설명=뮤지컬 '퀴즈쇼'의 주인공 이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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