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가 LG텔레콤·데이콤·파워콤 합병을 인가하면서 '이동전화 초당 과금제'를 조건으로 붙이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정부가 통신요금에 직접 관여하려는 의도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그동안 방통위는 시민단체와 국회의 통신요금 인하 요구가 빗발칠 때도 "통신요금은 시장에서 업체가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것이어서 정부가 나서기 어렵다"며 직접적인 개입을 피해왔다. 이 때문에 최근의 움직임은 방통위가 앞으로 통신요금정책을 정부 주도로 끌고가려는 시도 아니냐는 것이다.
방통위는 10일 전체회의를 열어 LG 통신3사의 합병을 인가할 계획이었는데, 방통위 실무진에서 인가조건으로 초당과금제를 의무도입하도록 하자는 제안이 나오면서 상임위원들 간 이견이 생겨 합병인가를 14일로 연기했다.
초당과금제는 이동통신 요금을 1초당 계산하는 것. 현재 이동통신 회사들은 모두 10초를 기본단위로 요금을 부과해 11초만 통화를 해도 20초 요금을 내야 하는 문제가 있다. 이 때문에 SK텔레콤은 내년 3월부터 초당과금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했지만 KT와 LG텔레콤은 아직 초당과금 계획이 없다.
통신 업계 한 전문가는 "합병인가 조건이라는 방법으로 정부가 통신요금 정책에 직접 관여하는 모습을 보이면 앞으로 시민단체와 국회가 반복적으로 통신요금 인하 정책을 요구하게 될 것"이라며 "올해 통신시장을 뜨겁게 달궜던 통신요금 인하 요구도 대통령이 선거공약으로 요금인하를 내세웠던 게 빌미였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LG텔레콤은 정부의 요금규제를 받지 않는 업체다. 신고만 하면 자율적으로 요금을 결정할 수 있는 사업자에게 요금규제를 적용하는 것은 규제완화를 강조하는 정부정책 방향과도 맞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 견해다.
또 시장 2위 사업자인 KT에도 적용하지 않는 요금규제를 최하위 사업자에게 적용하는 것은 규제 형평성에도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방통위는 "LG텔레콤이 초당과금제를 도입하면 KT도 초당과금제를 도입하도록 유인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KT는 "LG텔레콤이 초당과금제를 도입하더라도 당분간 KT는 초당과금제 도입 계획이 없다"며 단호한 입장이다.
과거 정보통신부에서 통신정책을 담당했던 한 전문가는 "경쟁체제가 굳어진 시장에서 정부가 직접 요금정책을 주도하는 것은 앞으로 정책추진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라며 "방통위의 합병인가 조건은 LG 통신 3사가 장기적으로 기술개발과 통신망 투자를 늘려 무선인터넷과 융합산업이 확대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정책비전이 반영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한편 초당과금제를 적용하면 SK텔레콤은 수입이 연간 2000억원, KT는 1200억원, LG텔레콤은 550억∼600억원 줄어들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cafe9@fnnews.com 이구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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