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토요일 아침] ‘외팔이 경제학자’의 조언

김규성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9.12.11 18:37

수정 2009.12.11 18:37



국내외에서 ‘출구전략’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문득 미국의 33대 대통령이었던 해리 트루먼의 ‘외팔이 경제학자’ 이야기가 생각난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언젠가 제발 외팔이 경제학자를 만났으면 좋겠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트루먼 대통령이 이처럼 이야기한 이유는 경제학자들에게 조언을 구하면 그들이 항상 “한편으로는(on the one hand) 이렇고 다른 한편으로는(on the other hand) 이렇다”고 답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모호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본격화된 금융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각국 정부가 내놓은 비정상적 대책을 정상화시키는 최근의 ‘출구전략’ 논의도 외팔이 경제학자 이야기와 연장선에 있다.

경제학자들은 한편으로는 비정상적 대책의 핵심인 저금리와 과도한 유동성(자금)을 하루빨리 회수하지 않으면 자산가격 급등 등 새로운 버블(거품)을 잉태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경기회복 신호가 확연하지 않아 금리를 인상하거나 유동성을 거둬들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조언한다.

모호함은 정책결정자들에게는 ‘고뇌’로 다가온다. 경기 사이클이 바뀌거나 ‘위기’때는 고뇌의 무게감이 더 실린다.

학자들은 각기 다른 전제조건을 달아 두 가지 견해를 모두 밝힌다. 학자니까 가능하겠지만 이를 정책으로 결정하는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정책이 미칠 파장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잘못 선택한 정책은 최악의 경우엔 경제를 ‘더블딥(이중침체)’에 빠트릴 수 있어서다.

정책에서는 ‘한편으로는’ ‘다른 한편으로는’ 두 가지 견해는 공존할 수 없다. 하나는 버려야 한다.

어떤 정책은 효율을 위해 형평성을 희생할 수도 있다. 혹은 미래세대를 돕고 현 세대를 손해보게 할 수도 있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정책시행에 대한 책임도 정책결정권자들이 져야한다. 트루먼 대통령이 ‘외팔이 경제학자’를 선호한 것은 책임에 대한 부담때문이었을 것이다.

지난 10일 10개월째 기준금리를 연 2%로 동결한 한국은행 이성태 총재가 ‘외팔이 경제학자’의 조언을 듣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지난 11월까지는 기준금리 인상 여부를 놓고 한편으로는 장점을, 다른 한편으로는 단점을 기자간담회 등에서 공개적으로 밝혔지만 이달에는 ‘금리인상 편’에 손을 들어주는 인상이었다. 외팔이 경제학자를 선택한 것이다.

이 총재가 외팔이 경제학자를 택한 것은 우리경제에 대한 ‘낙관적 시각’ 때문으로 보인다. 경제가 본격적으로 회복세에 들어가고 있어서 ‘위기’ 때 푼 유동성과 금융완화정책을 거둬들이는 ‘출구전략’ 시행에 나서야 자산가격 버블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이 총재는 최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후 기자간담회에서 “올 3·4분기까지 집중됐던 정부의 재정지출이 10월 이후 줄면서 경기가 좀 나빠지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10, 11월 움직임을 봐서는 성장세가 이어지고 있다”며 “내년의 한국경제 전망도 비교적 밝다”고 말했다. 내년 경제성장률도 4.6%로 예상했다.

금리 인상을 체질적으로 싫어하는 여론과 정부의 반대에도 금리 인상을 강하게 시사한 이 총재의 행보에 박수를 보낸다.

다만 경제지표는 회복됐는데도 고용여건의 여전히 냉랭한 현실과 위기의 진원지인 미국 경제의 불안한 행보에 한층 더 주의를 기울였으면 한다. 일부 경제전문가는 미국 상업은행들이 가계, 기업 대출을 ‘위기’이전 수준으로 늘리지 않은 이상 위기는 끝났지 않았다는 견해를 내놓기도 한다. ‘두바이 쇼크’에 이은 그리스, 스페인 신용등급 강등도 주시해야 할 상황이다.


정책을 결정했으면 성공 여부는 결국 ‘타이밍’이다. 타이밍 선택은 경제학자들의 판단 아니라 결국 정책결정권자의 몫이다.
이것이 트루먼 대통령의 외팔이 경제학자 이야기를 다시 생각나게 하는 이유다.

/mirror@fnnews.com 김규성기자<금융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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