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겨울 방학 때 부모님이 다니던 스포츠 센터에서 회원 가족을 위해 실시한 골프 강좌가 한 아이의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1개월 과정으로 진행됐던 골프 강좌를 통해 골프를 처음 접한 아이는 그것이 그저 좋았다. 그래서 한 달만 더 골프를 배워보겠다고 부모를 졸랐다. 꼭 선수가 아니더라도 골프가 훗날 아이들이 살아 가면서 필요한 것이라 여겼던 부모는 아이의 청을 받아 들였다. 검도, 축구, 육상, 수영 등 운동이라면 다방면에 걸쳐 재능을 보인 아이는 골프를 시작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은 초등학교 6학년 때 한국주니어선수권대회서 언더파를 쳐 부모를 비롯한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올해로 프로 3년차인 허원경(23·삼화저축은행)은 이렇게 해서 골프에 입문했다. 허원경의 이름에는 ‘만년 우승후보’라는 꼬리표가 따라 다닌다. 그것은 그의 화려했던 아마추어 성적 때문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인 2004년부터 3년간 아마추어 국가대표를 역임한 허원경은 프로 입문 직전에는 주장 완장을 달기도 했다. 2006년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인 김경태(23), 강성훈(22·이상 신한은행)과는 대표팀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절친사이다.
2006년 프로 테스트에서는 당당히 1위로 합격할 때까지만 해도 대형 스타가 탄생하는듯 했다. 하지만 기대를 모았던 그는 프로에 들어와서는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루키시즌이었던 2007년에는 상금랭킹 32위, 작년에는 22위, 그리고 올해는 28위로 순위가 오히려 밀렸다. 그러는 사이 주니어 동기들은 프로무대서 자신과 비교되는 성적을 거두었다. 특히 절친인 김경태가 프로무대에 뛰어들자 마자 상금왕, 다승왕, 올해의 선수상을 휩쓰는 것에 큰 자극을 받았다.
친구들의 성공적 프로생활을 보면서 그는 ‘언젠가는 나에게도 저런 날이 오겠지’라는 일념으로 한 눈 팔지 않고 연습에 연습을 했다. 많은 골프 전문가들이 그를 매 대회마다 우승 후보로 점찍는 이유는 바로 그의 자질과 그러한 성실성 때문이었다. 그의 스윙은 동료 선수들 사이에서도 벤치마킹하고 싶을 정도로 빼어나다는 평가다. 국가대표 생활을 하면서 터득한 쇼트게임 능력도 나무랄 데가 없다.
문제는 ‘잘해야한다’는 강박감에서 오는 멘탈에 있었다. 작년 시즌 후반부터 갑자기 스윙을 바꾸는 자충수를 둔 나머지 올 농사를 망쳤다.
그래서 아버지 허동회씨(54)와 함께 올 시즌을 마치고 난 뒤 원인분석에 들어가 현재는 원래의 스윙을 되찾은 상태다. 올 겨울에는 미국으로 전지훈련을 떠나 쇼트 게임 보완에 주력한다는 계획이다. 허원경은 “또래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을 보고 조급한 마음을 먹은 것이 오히려 약영향을 미친 것 같다”며 “좀 더 느긋한 마음을 갖고 매경기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마음으로 내년 시즌에 임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golf@fnnews.com정대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