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석학에 듣는다] 물 흐리는 유럽의 ‘미꾸라지’/에딘 무자직 틸부르대학 이코노미스트

박지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9.12.15 16:58

수정 2009.12.15 16:58

1999년 유로화 도입 당시 유럽 국가들은 유로 가치 안정을 위해 건전한 재정이 필수적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이 같은 합의를 어긴 일부 유로 회원국들로 인해 유로화는 재앙적 상황에 노출돼 있다.

실제로 너무 많은 회원국이 마치 ‘안정과 성장 협약(SGP)’은 있지도 않았다는 듯이 행동하고 있다. 일례로 그리스의 재정적자는 올해 국내총생산(GDP)의 12.7%에 이르러 SGP가 제시한 3%를 크게 웃돌 전망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모든 유로 회원국들이 재정적자 상한선을 넘긴 상황이다. 그러나 1999년 이후 올해로 두번째 상한선을 넘긴 네덜란드 등의 경우를 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네덜란드는 겨우 0.1%를 초과한 상태에서 즉각적으로 적자 감축을 위한 과감한 행동에 나섰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역시 똑같이 했다. 이번에도 이들은 상한선을 넘긴 재정적자를 가능한한 빨리 줄이기 위한 대책 실행에 나섰다.

그러나 유럽 남부로 내려가면 사정이 크게 달라진다. SGP 상한선 초과는 예외라기보다 오히려 규칙에 가깝다. 유로 도입 첫 10년간 그리스는 2006년 딱 한 번, 그것도 가까스로 SGP 상한선을 맞춘 게 전부다.

설상가상으로 그리스 정부는 신뢰를 잃었다. 2004년 그리스는 2000년 이후 적자 규모를 속여 왔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그리스의 유로 가입 심사가 이뤄졌던 기간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는 결국 그리스가 속임수로 자격을 따냈음을 의미한다. 2009년 11월에는 2008년 재정적자와 2009년 적자 추산치를 속였다.

이탈리아 역시 포르투갈,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재정 건전성 규칙을 무시해왔다. 그리스처럼 이탈리아도 모든 가입기준을 충족하지 않은 상태에서 유로에 가입했다. 이들 두 나라의 공공부채는 GDP의 100%를 훌쩍 넘겨 SGP 기준인 60%와 큰 대조를 보였다. 이탈리아는 또 다른 조건, 즉 자국통화였던 리라를 유럽환율 메커니즘(EERM) 내에서 2년 안에 소진해야 한다는 조건도 지키지 못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유럽 남쪽의 시간은 여전히 그 당시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와 이탈리아 모두 공공부채 규모가 거의 변하지 않았다. 반면에 이들 국가의 장기 금리는 독일과 같은 수준으로 떨어지는 등 유로 도입의 효과는 톡톡히 누리고 있다. 금리하락 효과만 연간 수백억유로에 이른다. 그렇지만 국가부채는 거의 변화가 없다.

그리스가 심각한 지경에 처해 부채를 갚지 못하지는 않을까?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모건스탠리 추산에 따르면 비교적 낮은 장기금리 수준에서도 GDP의 118%에 이르는 국채가 더 늘어나지 않도록 하는 데만 그리스는 매년 GDP의 최소 2.4%는 써야 한다.

현 유럽연합(EU) 규정은 다른 회원국이나 EU 차원의 그리스 지원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경험에 비춰보면 이는 깨질 수밖에 없다. 이미 많은 정계 인사와 이코노미스트가 그리스와 이탈리아와 같은 회원국들의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며 EU 차원의 국채 발행을 제안하고 있다.

이 같은 계획은 막대한 비용을 수반해 네덜란드나 독일의 금리가 불가피하게 상승하는 등 협약 준수에 최선을 다한 국가들에 대가를 요구하게 된다. 차입 비용이 0.1%만 늘어도 매년 부담해야 할 이자 비용은 수억유로에 이른다.

지금의 규정대로라면 유로권 회원국은 축출될 수 없다. 이 때문에 그리스 같은 국가들이 거짓말을 하고 조작하고 음해하고 더 많은 유로권의 자금을 끌어모으는 것이 가능하다.

장기적으로 이는 공공 부문의 건전성을 무너뜨려 유럽의 협력 확대에 재앙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결국 유럽은 게임의 법칙을 바꿔 단기적으로 비싼 대가를 치르는 방안을 검토해야 하는 시점이다.

회원국 하나를 쫓아내는 것이 SGP와 벌금을 통한 방식보다 더 효과적으로 유로권 전체의 재정 건전성에 대한 신뢰 제고 메커니즘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대가를 감수하더라도 해 볼 만한 일이 될 것이다.

/정리=dympna@fnnews.com 송경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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