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돈 한푼 없이 상장사 ‘꿀꺽’ 덜미..



사채로 인수한 회사 자금을 이용, 인수대금을 갚는 현대판 '봉이 김선달식' 무자본 인수합병(M&A)을 한 혐의로 통신장비업체 실질 소유주가 덜미를 잡혔다. 피해 회사는 지난 2002년 국무총리상 등을 휩쓴 우량 코스닥 상장사로, 피해액수는 이 회사 자본금의 90%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부장 유상범)는 330억원의 회사자금을 빼돌린 혐의(특경가법상 횡령 등)로 통신장비 제조업체 K사의 실질 소유주이자 경영자인 김모씨(44)를 구속기소했다고 15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 5월 K사 지분(50%)을 인수해 최대 주주 및 실질경영자가 되자 F항공사 지분 30%를 인수하기 위한 이행보증금 명목으로 회사 현금 330억원을 빼돌린 혐의다. K사 자본금 총액은 372억원으로, 김씨가 횡령한 330억원은 자본 총액의 90%에 육박하는 금액이라는 것.

김씨는 지난 8월 330억원을 유출한 사실이 회계 감사에서 문제가 되자 자금 145억원이 회수된 것처럼 입금자료를 허위로 조작, 회계감사법인 및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혐의도 받고 있다.

김씨가 K사를 인수하는 데 소요된 자금은 420억원. 이 가운데 90억원은 사채로, 나머지 330억원은 F항공사의 지분을 근거로 한 자금이었다고 검찰은 전했다. 그러나 김씨는 처음부터 F항공사의 지분권자가 아니었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사실상 김씨는 한푼도 들이지 않고 코스닥 상장사를 통째 인수한 것으로, 인수 뒤에는 형제들을 회사 대표 및 최대 주주로 등재시키는 수법으로 신분을 감춰왔다는 게 검찰의 수사 결과다.

서류상 K사의 최대 주주인 페이퍼 컴퍼니 회사 대표에는 김씨의 형제가, K사 대표에는 김씨의 친누나가 등재돼 있다.

검찰 관계자는 "김씨 같은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을 공시에 올려두지 않는다"며 "철저히 자신을 숨기고 믿을 만한 대리인을 내세워 뒤에서 일을 꾸며왔다"고 말했다.

김씨는 회사 인수 때 빌려 쓴 사채 90억원을 갚기 위해 또 다른 회사 2곳을 인수하는 계약서를 작성하는 등 다른 범죄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검찰에 적발됐다.


김씨는 검찰 조사에서 "횡령 사건은 전 경영진이 벌인 사건이고 나 역시 피해자"라며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9월 금융 당국은 K사가 F항공사에 투자한 뒤 185억원이 손실(대손충당금)처리되자 횡령 가능성을 의심해 내사를 벌였으며 검찰은 사건을 인지, 금융당국 자료를 확보해 자체 수사를 벌였다.

한편 K사가 투자했다가 투자금 상당 부분을 돌려받지 못하게 된 F항공사는 지난 10월 운항을 재개할 계획이었으나 2개월여가 지난 이날까지 운항되지 않고 있다.

/hong@fnnews.com 홍석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