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현대미술은 1950년대 이후 질적으로 크게 발전했다. 최근에는 국내 작가들의 잇단 해외 진출은 물론 글로벌 아트마켓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파이낸셜뉴스는 미술문화와 유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현대미술을 이끌어 가는 미술인들을 소개한다. <편집자주>
우울한 암회색, 녹회색·청회색으로 덮여 있는 그의 그림 앞에 서면 알 수 없는 진한 슬픔이 파고든다. 화면 깊숙이 저음이 잦아드는 억제된 화면은 ‘지나간 옛날의 노스탤지어가 아련하게 떠오르는 환영’이다.
권옥연 화백(87·예술원 회원). 우리 시대 현대미술사적인 산 증인이자 음악을 즐기는 멋쟁이 화가다. 어릴적 조부로부터 서예를 배웠고 바이올린에 심취한 부친을 통해 음악적 영감을 익혔다. 예향이 감도는 가풍 속에서 자란 그는 숙명처럼 예술을 향한 구도자적 자세로 외길 인생을 걸어왔다. 그래서일까. 권 화백의 작품은 동양적인 깊이감과 음악적인 리듬감이 융합되어 중후하면서도 신비감이 감돈다. 앵포르멜 영향을 받아 추상과 구상을 넘나드는 독창적 화풍을 이룬 작품은 미술시장에서 블루칩 명품으로 인기가 높다. 그는 세속적인 잣대에 무심하다. 자의식이 강해 고고한 선비에 비유되는 권 화백은 미술계에서 특히 덕망이 높다. 지난해 말 한국미협 ‘올해의 미술상’에서 명예공로상을 수상했지만 함께 수여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은 끝내 마다했다. 스스로를 내세우지 못하는 지독한 반성에서였다. 좀처럼 앞에 나서지 않는 권 화백을 서울 장충동 사택을 겸한 작업실에서 만났다. 에스프레소 커피를 앞에 두고 권 화백은 “나 같은 노인네가… 할 말이 없다”며 인터뷰를 사양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하면 밤을 새워도 모자라다며 작품의 모태가 되는 기억을 더듬었다.
―붓글씨를 자주 쓰시나봐요. 먹물이 손에 배어 있네요.
▲최근에 박완서(소설가) 현판을 써줬지. 아차산 앞에 산다고 해서 ‘아차소(峨嵯巢)’라고 이름지었어. (그는 붓펜을 손에서 놓지 않고 말할 때마다 종이에 한자를 써내려갔다) 옛날에 증조부 조부 아버지 나, 4대가 한집에 살았어. (그는 함경남도 함흥 명문 권 진사댁 독자였다) 나는 다섯살 때부터 할아버지께 글씨를 배웠어. 할아버지는 장지를 홍두깨에 감아 디딤돌에 오래 두드렸지. 그러면 종이가 가죽보다 단단하게 만들어져. 나는 그 위에 글씨를 썼어. 국민학교(초등학교) 습자시간이면 학생들은 신문지를 오려와 그위에 연습하는데 나는 하얗고 두꺼운 장지에다 연습을 했어. 절대 신문지에 글씨연습을 안 했지. 붓, 벼루, 먹도 할아버지가 최고의 것을 준비해주어서 선생님도 내 옆에 앉아 유심히 보곤 했었지. 그땐 몰랐는데 할아버지가 지저분한 종이에 절대로 글씨를 쓰지 못하게 한 이유를 오랜 후에 알았어.
―무엇을요. 그 깨달음은 언제였나요.
▲그건 태도의 문제였어. 밑이 지저분하면 아무렇게나 글씨를 쓰잖아. 책임을 안 지지. 그런데 처음부터 하얀 종이에 먹글씨를 쓰게 되면 마음가짐부터 달라져. 그것이 첫 가르침이셨지.그만큼 기초가 완벽해야 해. 그걸 부산 피란 때서야 확실히 깨달았어. 그때가 30대였을 거야. 모두가 거지 같던 시절이었지. 그때 만나던 친구가 몇 있었는데 함흥 고향 사람인 한동일(피아니스트)의 아버지를 알고 지냈어. 어느 날 그가 내게 물어보는 거야. “권 선생, 누가 서울서 독일제 피아노 스타인웨이를 가져왔다는데 소식 못 들었수?”라고. 전쟁통에 희귀한 고급 피아노를 찾고 있는 그에게 나는 “야마하 피아노도 좋던데”라고 하니까 “3대나 있다”더군. 이게 웬말인가 싶어 나는 소릴 질렀지. “어린애가 무슨 스타인웨이가 필요해”라고. 한동일 아버지가 그러더군. 피아노 천재인 아들에게 세상에서 제일 좋은 피아노 소리를 들려줘야 한다고. 명품으로 귀와 눈을 익혀야 명품을 만들 수 있다는 지론을 갖고 있었어. 그 순간 아, 우리 할아버지의 가르침을 되새겼지. 한동일은 그 난리통에도 미국 줄리아드 음대에 들어갔어.
―할아버지 영향이 컸네요.
▲우리 할아버지를 무척 존경하지. 지금도 늘 감사하게 생각해. 그런데 난 추사 김정희를 사랑해. 추사는 정말 완벽한 예술가야. 내게 정서적이고 문화적인 감성을 키워준 정신적인 멘토라고 할 수 있어. 1957년 파리에 유학해서 그림 그리다가 답답할 때면 슬라이드로 만들어간 추사 글씨를 환등기로 비춰보곤 했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어. 확대된 글씨는 깨져 잘 보이진 않았지만 글씨의 변화만큼은 느껴졌거든. 어떤 것은 날카롭고, 길고, 부드럽고…. 추사의 5언절구, 7언절구는 흉내도 못 내. 글씨의 호흡 자체가 리듬이거든. 추사 글씨는 완벽한 회화였어. 왜 추사를 화가로서 논하지 않는지 몰라. 진짜 화가야. 추사 글씨는 공간 배열, 글씨의 획 하나하나가 시공간을 넘나드는 완벽한 조형언어야. 그 자체가 이미 완벽한 그림의 요소를 갖추고 있지. 아마 내 그림에도 그런 영향이 스며 있을 거야.
―전시는 안 하세요.
▲(2001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 작가전’ 이후 조용하다) 글쎄, 전시가 문제가 아니야. 그림을 어떻게 그리느냐가 문제지. 쇼 하는 것도 철없을 때 하는 거지. 전람회 몇 회 했다,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이중섭은 전람회 한 번 해도 평생 남아있잖아. 한 장이라도 그림다운 그림을 그려야지. 요즘엔 그림 그리는 게 무서워. 나이 들어 그렇다고 생각은 마. 추사가 말년에 쓴 어린애 같은 글을 보면 난 어림도 없어. 그쯤되어야 예술가라고 하지. 치졸하게 그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야. 날 보고 화가라는 말 하지 말아. 쓸만한 그림이 없어.
―화가로 한평생 살아왔다. 아쉬움이 있다면.
▲요즘 그림을 보면서 나는 왜 대담하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아이디어가 반짝이는 그림이 많잖아. 그런데 난 그 그림들을 보면 굉장히 불안해. 발광하는 원색이 자극적이잖아. 난 색을 누르려 했지. 전쟁을 겪고 비극적인 시대를 살아낸 탓일까. 그러고 보면 난 구식이야. 가끔 음악했었으면 내가 참 행복했을 것 같아. 작곡, 지휘를 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아직도 있어.
―화력 70년. 그림이란.
▲그림은 지금도 어려워. 그림은 이성적이거든. 춤·음악은 인간의 본능적인 데서 오는 것이지만 그림은 공간에 대한 계산이 들어가야 하고, 그린다는 자체가 굉장히 인위적인 사고가 필요하지. (크기가) 작은 그림이 더 어려워. 생략을 해야 하거든. 그림은 아직도 너무 힘들어….
/hyun@fnnews.com
■사진설명=언론에 처음 공개한다는 권옥연 화백의 작업실은 유화물감 냄새가 가득했다. 회색톤을 칠하다 만 캔버스, 짜 놓은 물감, 빽빽이 꽂혀 있는 붓들, 이젤 밑에 켜켜이 쌓여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는 그림은 그의 복잡한 심경을 대변하는 듯했다. 자신의 그림을 보고 있던 권 화백은 "에휴∼ 저걸 그림이라고"하면서 고개를 돌렸다. /사진=박현주
■권옥연화백 약력 △1923년 함경남도 함흥 출생 △경복중고 △ 일본 무사시노미술대학 △프랑스 파리아카데미 졸업△1961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 초대작가 심사위원 △1963년 파리 그룹전△1965년 도쿄서 개인전 △1965년 상파울루비엔날레 참가△보관문화훈장 △예술원상 △공로 예술인술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한국미협 2009 올해의 미술상 명예공로상 △(현)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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