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비운의 조각가 권진규를 아시나요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0.01.26 11:24

수정 2010.01.26 11:09

▲ 권진규/ 나부-1953년/-석고
‘지원의 얼굴’로 잘 알려진 한국 근대조각의 거장, 권진규(1922∼1973)전이 서울 정동 덕수궁미술관(2월28일까지)에서 열리고 있다.

일본 도쿄 국립근대미술관과 무사시노미술대학 미술자료도서관과의 공동 주최로 권진규의 졸업 작품과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는 작품도 처음으로 공개됐다.

전시는 총 6부로 구성, 권진규의 조각작품 100점, 드로잉 40점과 석고틀 1점을 선보인다.학창시설부터 그의 말년에 이르기까지 작품세계 전체를 조망하고 있다. 이외에도 전시의 마지막 부분은 권진규의 스승인 시미즈 다카시(淸水多嘉示 1897-1981)의 작품 12점과 부르델(E.A. Bourdelle 1861-1929)의 부조작품 5점이 함께 소개되어 권진규 작품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권진규는 누구인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비극적 생을 마감한 권진규는 신비주의에 쌓여있는 조각가다.

함경남도 함흥출생으로 1948년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무사시노 미술대학의 전신인 무사시노 미술학교 조각과에서 조각을 공부했다. 유학후 1952년 도쿄에서 열리는 제 37회 이과전(二科 展)에서 입선하며 주목을 받았다. 이미 유럽적 색채와 화풍이 유행하던 일본 미술시장에서 이과전은 입체파와 야수주의 등의 진취적인 양식을 표방하고 의욕적으로 신진 작가를 배출하던 시기였다. 구본웅을 비롯 김환기, 이쾌대 등이 이를 통해 데뷔했다. 이후 그는 1953∼1956년까지 연이어 이과전에서 입선하여 스타로 부상했다. 특히 53년 출품한 ‘기사’, ‘마두A’, ‘마두 B’는 특대를 수상했다.

일본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던 그는 13년의 일본생활을 청산하고 1959년 귀국했다. 귀국 뒤에는 주로 테라코타와 건칠을 사용한 두상조각과 흉상을 제작하였다. 미술평론가들에게 “고도로 절제된 긴장감과 움직임이 없는 정적인 조각을 통해 영원을 향한 이상세계를 추구하는 인간의 모습을 담아내고자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권진규는 드로잉과 조각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많이 다루었는데 그는 모델과 작가와의 관계를 ‘모델 +작가=작품’이라고 했다. 제자인 장지원을 모델로 한 ‘지원’을 비롯하여 ‘영희’,‘홍자’, ‘경자’ 등 주변의 여인들을 형상화한 작품들은 지나치게 길게 내민 목과 사선으로 좁게 처리된 어깨가 특징적이다. 특히 목을 길게 앞으로 내민 것은 마치 영혼의 소리를 들으려는 구도자의 자세처럼 느껴져 작가가 추구하는 예술세계를 짐작하게 한다.

▲ 권진규/엎드린 여인大
그가 가장 사랑했던 재료는 테라코타. 흙의질감과 색감에 매료된 그는 소토로 원형을 만들고 그 본을 진흙으로 굳혀 가마에서 500도∼700도의 불에 초벌구이로 구워내는 테라코타 작업에 몰두했다. 그가 1965년 국내 첫 개인전에서 선 보인 테라코타 작품들은 고대 토우를 연상시키는 마두와, 인물입상, 부조형식으로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

권진규의 예술의 극점을 보이는 작품은 ‘자소상’이다. 1965년 첫 개인전 포스터에 자소상을 전면으로 내세웠고 마지막으로 이력서에 대표작품으로서 자소상을 꼽고 있을 만큼 예술가로서의 소신을 자소상으로서 펼쳤다.

1973년 5월 4일, 권진규는 고려대학교 박물관 현대미술실 개관전에 전시중인 자신의 작품을 본 후 자결했다. 식민지 시대에 함흥의 한 신흥부호의 아들로 생을 시작한 그는 비극의 운명을 향유했던 예술가였다.

■인물상·자소상·테라코타

그의 인물상은 움푹 들어간 눈, 높은 콧대, 둥근 머리, 좁은 얼굴형으로 인해 한국인의 얼굴이 아니라 이상적인 얼굴형을 추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물을 통하여 그가 추구했던 지향점은 가장 순수한 영혼의 모습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초월하는 영원성이었다. 흔들림없이 뜨고 있는 눈은 본질을 꿰뚫는 힘을 지니고 있으며 생생한 눈빛을 통해 무언의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동시에 어떤 것을 갈구하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또한 같은 형태이나 표면에 색을 다르게 칠하던가 재료 자체도 다르게 사용한 작품들이 특징적이다.

▲ 권진규/마두/1969.테라코타
■부조 : 구상과 추상의 접점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한국현대미술은 구상과 추상의 경향이 혼재되어있는 특징을 지닌다. 권진규는 구상에서부터 형태를 정제하듯 단순화시켜 추상으로 나아가는데 이러한 구상과 추상의 접점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작품은 바로 부조이다. 이러한 부조 작품에서는 선의 리듬감, 색채의 사용, 조형을 만드는 손의 느낌 등이 작품의 표면에 그대로 살아나 있어 그가 즐기면서 작업했음을 알 수 있다.

권진규는 개, 게, 말, 소, 새, 고양이 등 여러 동물의 형태를 구상, 추상의 형식에 구애되지 않은 채 다양한 형태로 제작했다. 특히 말은 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모티프였다. 말을 주제로 한 작품이 수묵드로잉에서부터 환조, 부조에 걸쳐 다양한 형태로 제작되었던 사실은 그가 말 주제에 천착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특히 말에 대한 그의 남다른 애정을 느낄 수 있는 증거는 유독 말 주제 작품에서는 해학적인 표현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평생에 걸쳐 제작한 말과는 달리 소는 1960년대부터 제작되는데 소에 대한 관심은 전통문화에 대한 권진규 자신의 관심과 더불어 당시 민족적인 것을 형상화하고자 한 시대적 분위기와 맞물려 있었다.

■작품설명회 매일·아틀리에도 개방

관람객의 이해와 감상을 돕기위해 전시장에서 작품설명회가 매일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열리고, 금,토,일요일에는 6시30분에 한차례 더 열린다.

한편, 전시기간중 서울 성북구 동선동 ‘권진규 아틀리에’가 매주 금요일 오후 3시부터 한시간 동안 개방한다.
사전에 전화(02)3675-3401∼2)로 신청해야 한다. 권진규 아틀리에는 1959년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작가가 1973년 생을 마감할 때까지 작업하던 곳이다.
아틀리에는 2006년 문화유산 보전운동 단체인 내셔널트러스트 시민문화유산 3호로 지정돼 관리되고 있다.

/hyun@fnnews.com 박현주 미술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