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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죽음부른 광기의 천재성”.. 뮤지컬 원작자 미하엘 쿤체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0.01.28 16:09

수정 2010.01.28 16:09

“나는 장조 나는 단조 나는 화음 나는 멜로디… 음악 속에 나는 박자 나는 쉼표 나는 하모니 나는 포르테 나는 피아노 춤과 판타지 나는 난 음악.”

레게머리에 찢어진 청바지의 천재 모차르트는 무대 위에서 절규한다. 18세기 합스부르크 왕가의 권세가 하늘을 찌르던 오스트리아 빈에서 모차르트는 시대를 앞서간 불우한 천재 음악가였고 그로 인한 고통과 고독 속에 처절한 죽음을 맞는다. 지난 20일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에서 개막한 뮤지컬 ‘모차르트!’. 노란 가발에 하이톤의 경박한 웃음으로 주위를 당혹시켰던 영화 ‘아마데우스’속 모차르트는 오스트리아 출신 미하엘 쿤체에 의해 전혀 다른 인물로 되살아났다. 뮤지컬 ‘모차르트!’ 원작자 쿤체는 “모차르트는 지금의 엘튼 존과 비슷한 인물”이라며 “대중적으로 높은 인기를 누렸고 상업적으로 성공했지만 그의 천재적 재능이 그를 파국으로 몰아갔다”고 주장했다. 뮤지컬계 ‘미다스의 손’ 쿤체로부터 뮤지컬 ‘모차르트!’ 관람 이야기를 들어봤다.



―국내 초연인데 공연을 본 소감은.

▲어느 나라에서든 완벽한 공연이란 없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당연히 기술적으로 보완됐으면 하는 부분이 있었다. 가령 장면이 바뀔 때 시간이 오래 걸리는 그런 문제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배우들의 수준이나 의상·무대시설은 굉장히 뛰어난 편이라 할 수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콜로레도 대주교가 성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이다. 무대장치가 뛰어났다. 마차 아래에 에어펌프를 설치해 위 아래로 흔들리는 효과를 냈고 동시에 배우들도 조금씩 움직여 마차가 많이 흔들리는 느낌을 살렸다고 하는데 인상적이었다. 벼룩시장도 생생하게 잘 표현됐다. 그런 디테일이 쉽지 않다. 또 모차르트가 악몽을 꾸는 장면에서 가면을 쓰고 등장하는 레오폴트는 잘된 연출이라고 생각한다. 안무도 독창적이었다.

―배우들의 연기는 어땠나.

▲역할에 맞게 잘 캐스팅됐다고 본다. 목소리의 색깔도 맘에 들었다. 특히 콘스탄체(정선아역)의 연기와 목소리가 탁월했다. 조연이지만 어려운 역이었는데 잘 소화했다고 본다. 누나 난넬(배해선)과 발트 슈테텐 남작부인(신영숙)의 연기도 뛰어났다.

―이번 모차르트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인물과 차이가 있다. 당신이 생각하는 모차르트는 어떤 사람인가.

▲이미 알려진 예술가 모차르트에 대해 말하려고 한 것이 아니다. 천재성으로 고통받는 모차르트를 표현하려고 했다. 실제 주변사람들은 모차르트의 재능을 철저히 이용했다. 아버지 레오폴트는 모차르트를 통해 대리만족을 원했고 콜로레도 대주교는 모차르트를 하인처럼 부렸다. 콘스탄체의 친정 베버가족도 마찬가지다. 모차르트의 돈을 가로채려고 주변에선 혈안이 돼있었다. 하지만 모차르트는 이들과의 원만한 관계를 원했다. 그로 인해 갈등했고 고독했다.

―천재성을 상징하는 분신 꼬마 아마데와 성인 볼프강 두명의 모차르트를 등장시킨 이유는.

▲모차르트는 자신의 재능 때문에 요절한 인물이다. 결국 그의 천재성이 그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걸 말하려 한 것이다. 아마데가 모차르트의 피를 잉크삼아 작곡을 하다 마지막엔 펜으로 심장을 찌르는 모습은 바로 이 작품의 주제라고 할 수 있다. 가볍고 멍청하고 가난에 찌든 모차르트 이미지는 철저히 살리에리측 입장이다. 그리고 사실과도 다르다. 모차르트는 당대 최고 부유한 예술가였다. 지금의 엘튼 존과 같은 인물이다. 모차르트의 작품은 나올 때마다 대히트였다.그는 수백억원대 재산가였다. 다만 그 많았던 돈이 어떻게 샜는지는 정확히 모를 뿐이다.

―모차르트를 혁명가로도 표현하고도 있는데.

▲서양 음악의 역사는 모차르트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모차르트 이전엔 작품으로 독립한 음악가는 단 한명도 없었다. 음악가는 궁정과 귀족의 후원을 받아 생활을 연명해야 했고 이들 후원이 끊어지면 예술가로서 더이상 활동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모차르트는 달랐다. 그는 이들의 후원없이 자신의 작품만으로 독립할 수 있었던 최초의 음악가였다. 직접 작곡도 했고 연주도 했고 콘서트도 제작했다. 말하자면 그는 18세기에 이미 프리랜서 직업 음악가의 길을 걸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그런 일이 가능했다는 것 자체가 혁명이고 모차르트는 당연히 혁명가였던 셈이다. 모차르트는 정말 용기있는 사람이었다.

/jins@fnnews.com 최진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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