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박범신·안종연, 문학과 미술의 만남 ‘시간의 주름’전

박현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0.01.29 16:52

수정 2010.01.29 16:38

▲ ‘문학과 미술의 만남’, 소설과 박범신과 설치작가 안종연이 2월 3일부터 ‘시간의 주름’전을 학고재갤러리에서 연다.

나이 먹는다는 것, 늙어가는 것속엔 주름이 있다. 명암과 주름은 한몸. 주름없이는 생명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다. 첨단 3D 시대, 주름또한 상품이 된지 오래지만 나이 드는 것이 두려운 시대다. 주름마저 흉이 된 세상, ‘시간의 주름’에 바치는 전시가 있다. 사라져가는 모든 것들에 대한 헌사다.


소설가 박범신과 ‘빛의 작가’ 안종연이 만나 ‘시간의 주름’을 펼친다.

오는 2월 3일부터 서울 사간동 학고재에서 열리는 ‘안종연과 박범신의 만남-시간의 주름’전은 소설과 작품, 공간의 절묘한 앙상블을 이뤄냈다.

이 전시는 대산문화재단이 2004년부터 6년동안 진행해온 ‘문학과 미술의 만남’중 20번째 전시다. 박범신의 소설 ‘주름’과 ‘고산자’를 모티브로 안종연작가가 평면과 입체, 영상 설치에 이르기까지 시각언어로 형상화한 작품 60여점을 선보인다.

29일 학고재 주변 더레스토랑에서 간담회 열고 기자들을 만난 박범신과 안종연은 “작업과정 동안 행복했다”고 말했다. ‘그림속에 문장이 있고, 문장속에 그림이 있다’는 그림과 문학의 만남은 탈장르시대, 문화 소통에 꽃을 피웠다.

■박범신 소설 ‘주름’..소멸과 생성의 공간

박범신(64) 소설 ‘주름’은 50대 남성이 경험한 ‘극한’의 사랑 이야기다. 50대의 평범한 월급장이 남자가 60대 초반의 화가 여자를 만나 파멸에 이르는 사랑으로 내달리는 내용이다.

얼굴에 주름이 패인 박범신은 “50대부터 늙는것에 대해 고통을 당했다”며 “인생은 시간과의 투쟁으로 그 고통은 내게 계속되고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주름은 “시간을 육체로 환원해본 소설로 감각적인 육체의 문제로 환치했다”는 것. “인간의 삶과 죽음이라는 숙명을 통해서 나온 시간의 주름에 관한 기록”이라며 “단순히 부도덕하고 더러운 러브스토리만으로 읽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범신은 안종연의 입체작품은 갇혀있는 세상에서 새로운 세계로 가고 싶은 갈망을 잘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내 소설을 읽고 어떻게 구현해낼지 궁금했는데 작품을 보고 좋았다. 그림은 프레임안에만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프레임 밖으로 뛰쳐나오려는 작품이 인상적이다. 적절했다. 프레임 밖으로 흘러나가는 소설과 같아 좋았다.”

오지 여행을 좋아한다는 그는 “주인공이 고뇌하는 생성과 소멸의 이미지를 캔버스에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 같다”며 “칙칙한 소설과 달리 작품이 환해 위로가 된다”고 했다.

그는 “그동안 영화와 드라마로 소설이 영상화됐지만 만족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시간의 주름속에 갇혀있는 박범신을 느꼈다. 즐겁다”며 “탈장르시대에 의미있는 과정이었다. 이런 전시가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원한 청년작가’ 이고픈 박범신은 한때 목공예에 손이 떨릴정도로 몰두,그룹전도 한바 있다.

■‘노동의 성찰’ 빛의 작가 안종연

“어떤 작품 원하세요?”

박범신은 “내가 쌀을 주었으니 당신이 그것으로 떡을 만들든 밥을 짓든 하시요’라며 자신의 소설에 대한 해석과 상상의 자율성을 작가에게 주었다.

시간의 주름살이 우리의 실존을 어떻게 감금해 가는지, 시간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주름’을 시각화한 빛의 작가 안종연(58)도 ‘소멸과 생성’은 늘 화두였다.

“소설 ‘주름’을 읽으면서 여행가고 싶을 정도로 생생해 크게 고민한 것은 없었다”는 안작가는 “책을 보면 그림이 느껴졌다. 이미 그림을 제시해주고 있어 시간에 대해 더 많이 생각했다”고 말했다.

“작품은 소설을 그대로 그리는게 아니라 작가의 세계관을 통해 만들어진다. 시간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마음대로 하라고 해서 더 자연스럽게 나온 것 같다.”

그렇게 나온 작품은 얌전하지 않다. 노동의 흔적, 인내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다.

캔버스를 비롯하여 스테인리스트 스틸, 에폭시, 유리구슬, 돌등 무겁고 다루기 까다로운 재료들로 문학적 서술 자체를 시각화하기 보다는 주제의식을 은유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시간은 우주를 여는 키워드다. 이번 기회를 통해 작품소재도 넓어진 것 같다. 개인전을 하면 탈진상태가 됐는데 이번작업을 하며 계속할 꺼리를 찾았다. 할게 많다”

안종연의 작품은 여전히 빛이다. 빛을 테마로 다양한 변주를 펼치는 과정에서 장대한 문학적 서사를 압축적인 시각언어로 재발견하면서 시간의 주름을 포착하고 있다.

소설속 바이칼호는 에폭시로 재탄생됐다. 꽝꽝 얼어서 미끌어질 것 같은 작품은 마치 소설속으로 들어간 느낌이다. 또한 평면에서 입체로 코드를 전환해 낸 녹슨 스틸 판재를 얽어서 만든 ‘빈 중심’은 영원의 세계로 이어지는 시간성의 사유를 포착한 점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입체와 영상을 결합한 ‘만화경’은 안종연이 주름을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다양한 화면으로 변주한 애니메이션을 거울 설치와 조명과 함께 연동함으로 써, 무한히 증식하는 시간과 공간, 만다라의 세계를 들여다보게 한다.

작가는 회화를 시작으로 조각 설치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물과 빛 시간과 우주에 대해 깊이 천착해왔다.
그의 공공조형물은 국립암센터, 삼성생명 종로타워 교보생명 건물등에 설치되어 있다. 전시는 2월 28일까지.(02)720-1524

/hyun@fnnews.com 박현주 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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