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퀄컴과 한국의 다른 셈법/이구순기자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0.02.01 21:05

수정 2010.02.01 21:05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프로젝트만 찾으면 돈은 아낌없이 투자하겠다."

퀄컴이 한국과 거래한 지 26년 만에 처음 직접 한국에 연구개발(R&D)센터를 세우겠다며 발표한 투자전략이다. 그러나 어떤 R&D를 해야 돈이 될지 알지도 못하고 무턱대고 투자비만 먼저 책정할 수 없다는 게 퀄컴의 입장이다. 더구나 R&D센터 사무실도 서울 서초동 퀄컴코리아 사무실을 함께 쓰도록 했다. R&D센터장 외엔 연구할 인력도 정해진 게 없다. 퀄컴의 계획을 들은 한국 정부와 정보기술(IT)업계는 "한국에서 코드분할다중접속(CDMA)을 국가표준으로 정해 그만큼 키워줬으면 어느 정도 투자는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서운함을 드러낸다.
그럴싸한 건물도 짓고 수천억원 연구예산을 미리 정해놓고 수십명의 박사급 연구인력채용을 기대했던 한국으로선 퀄컴의 발표가 서운할 만도 하다. 그러나 글로벌 기업의 셈법을 직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퀄컴이 투자손익을 따진데 비해 한국은 25년간 쌓인 정리(情理)를 들이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착각은 처음이 아니다. 구글, 인텔, 시스코, 에릭슨까지 모두 한국에 R&D센터를 세우겠다고 발표해 놓고는 한국의 셈법에 맞추기 어렵다며 발을 뺐거나 슬슬 뒷걸음질을 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글로벌 IT기업들의 R&D 투자를 유치할 때마다 한국이 내세운 건 세계 최고의 IT인프라를 테스트베드로 내주겠다는 것과 그동안 한국에서 올린 매출이 대단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부분은 글로벌 업체들의 계산기에 좀체 잡히지 않는다.


IT업계의 한 전문가는 "국내 기업과 정부가 나서 R&D 수준을 높여 글로벌기업들이 먼저 찾아올 만한 시장을 만들지 못하면 앞으로도 글로벌기업에 R&D투자를 애걸하는 신세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cafe9@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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