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퀄컴 R&D센터 생색내기 그치나

홍석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0.02.02 05:50

수정 2010.02.01 22:40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원천기술 업체 퀄컴이 우리나라에 연구개발(R&D) 센터를 설립하고 벤처기업에 자금을 투자하기로 했다. 1일 폴 제이콥스 퀄컴 회장은 서울 한남동 하얏트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한국에 모바일 멀티미디어 솔루션, 모바일 센싱기술 등을 연구하는 전문 R&D센터를 세우겠다고 발표했다. 제이콥스 회장은 “한국 R&D센터는 연구인력 숫자나 투자비용을 미리 정하지 않고 프로젝트가 결정될 때마다 예산을 책정해 연구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제이콥스 회장은 또 지난해부터 지식경제부·코트라(KOTRA)와 함께 진행한 벤처기업 공동투자 프로젝트의 투자 대상으로 음향반도체 전문 벤처기업인 펄서스 테크놀로지에 400만달러(약 47억원)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예산없는 R&D센터, 껍데기?” 의구심 증폭

차영구 퀄컴코리아 사장은 한국 R&D센터에 대해 “프로젝트가 발굴될 때마다 예산과 연구인력을 수시로 확충해 한정된 연구비 때문에 제대로 연구를 할 수 없는 한계를 뛰어넘는 실속형 연구센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퀄컴은 이날 퀄컴 본사 R&D 담당 상무인 이태원씨를 한국R&D 센터장으로 임명했다.
그러나 국내 정보기술(IT) 업체들은 일제히 “정해진 연구비나 연구인력 조차 없는 허울좋은 연구센터 아니냐”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정부도 실망스러운 빛이 역력하다. 정부 한 고위 관계자는 “안정적 투자예산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연구과제를 하나 결정할 때마다 본사에 연구비 영업을 해야 하는 R&D센터가 어떻게 기술개발에 몰두할 수 있겠냐”며 “R&D센터는 질좋은 국내 연구인력들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의미가 있는데 발표내용으로 보면 연구인력 일자리조차 비정규직으로 만들겠다는 것 아니냐”며 문제를 지적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퀄컴은 작은 벤처기업에서 한국의 CDMA를 기반으로 일약 세계적 통신업체가 됐는데 한국업체와의 동반성장을 위한 투자나 협력엔 여전히 의지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퀄컴은 “현재 퀄컴의 해외 R&D센터는 중국에 하나 있는데 이 역시 정해진 예산 없이 연구과제가 나올 때마다 예산을 책정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고 설명했다.

■퀄컴-한국정부, 관계 개선될까

퀄컴의 R&D센터 설립은 지난 94년부터 우리나라에서 막대한 기술료 수입을 올려온 퀄컴이 26년 만에 한국에 직접 투자키로 한 것이어서 정부와 업계의 기대를 모았었다. 특히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7월 역대 최대 규모인 2600억원의 과징금을 퀄컴에 부과해 놓은 상태여서 퀄컴의 성의있는 조치가 기대돼 왔다. 퀄컴은 삼성전자 등 국내 휴대폰 제조사들에 기술을 제공하면서 경쟁사의 모뎀칩을 사용할 경우 차별적으로 높은 기술료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경쟁업체를 따돌려 공정경쟁을 해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번 퀄컴의 R&D센터 계획에 정부가 실망감을 드러내면서 퀄컴과 우리나라 정부간 관계개선 여부에 관심이 집중된다.

퀄컴과 관계가 소원해지고 있기는 통신업계도 마찬가지다. 현재 삼성·LG전자는 3세대 휴대폰의 경우 전량 퀄컴의 모뎀칩을 구입하고 있다. 그러나 4세대부터는 자체 개발한 칩을 사용하거나 구매선을 다양화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또 SK텔레콤이나 KT, 통합LG텔레콤도 2∼3세대 이동통신에선 모두 퀄컴의 기술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4세대에 가까운 기술인 퀄컴의 초고속무선인터넷(HSPA+)을 쓰기로 한 곳은 SK텔레콤 뿐이다.
KT는 와이브로(휴대인터넷)와 3세대 이동통신기술을 저울질하고 있고 통합LG텔레콤은 바로 4세대 통신으로 기술방식을 바꿀 의사를 보이고 있다.

/cafe9@@fnnews.com이구순 홍석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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