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탄광촌 화가 황재형 다시 보기..5일부터 개인전

박현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0.02.02 11:58

수정 2010.02.02 15:05

%%사진 3장.중간중간에 설명있슴.

<사진>/황재형/모퉁이/72.7×50㎝ oil on canvas 1988∼1995

어쩔수 없다. 그의 그림을 보면서 오치균을 생각하는 것은…. 거칠고 암울하고 어두운 탄광촌 풍경. 지난 3∼4년전 뜨거웠던 미술시장에서 돋보였던 오치균의 트레이드마크다. 차별화가 생명인 화가들에게 닮음과 비슷함은 비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다.

“오치균 작품인줄 알았다”는 말들을 어떻게 생각할까. ‘광부 화가’ ‘탄광촌 화가’ 황재형(57)은 익숙해졌다. 아니 여유로워졌다고나 할까. 작가는 “오치균의 기량을 인정한다”며 말을 뗐다. 그는 “탄광촌 소재이고 색책도 비슷하지만 갈길이 다르다”고 말했다.


■탄광촌 풍경, 붓을 버렸다

오치균 작가가 사북을 그릴때 태백에서 살고 있는 황재형의 작업실에도 왔었다. 같은 풍경, 같은 주제를 담아낸 작품의 공통점은 많다.

두 작가 모두 강원도 탄광촌 산골의 거칠고 가난하고 어두운 풍경을 야성적으로 다듬어낸다. 마티에르가 두껍게 발라진 거친 화법, 둘 다 붓으로 그리지 않는다. 오치균은 두터운 마티에르를 위해 손톱으로 그리는 핑거 페인팅 기법을 구사하고 황재형도 붓대신 나이프로 화면을 덧발라 강한 터치를 보여준다.

“오치균과 황재형의 예술에 대해서 어는 것이 좋고 싫고의 문제도 아니고, 우리는 서로 다른기법과 성향의 좋은 작가 둘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뿐이다”

닮음과 비슷함에 대해 미술평론가 유홍준씨는 “사실상 이들은 다루는 소재가 비슷할 뿐 각자 추구하는 조형목표도 다르고 조형기법도 다르다”며 “오치균의 조형목표가 보편적 서정에로의 전환이라면 황재형은 명확히 내면적 진실성을 획득하고 있다”고 평했다. 그는 “오치균의 작품엔 노란 광선이 자주 등장하고 황재형의 작품엔 바람이 불거나 먼지가 휘날리는 풍경이 많고 오치균은 봄풍경이, 황재형은 겨울풍경이 많다”면서 “오치균의 작품은 대단히 정적인 반면에 황재형의 작품은 아주 동적”이라고 비교했다.

<사진>/황재형 ‘한 숟가락의 의미’

■‘쥘흙과 뉠땅’…내면적 진실성

80년대 민중미술 대표작가로 활동하던 그는 1988년 돌연 태백으로 내려간 이후 1991년을 마지막으로 16년동안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었다. 야학교사, 공장등을 전전하다 오지 태백으로 들어간 그는 막장에 들어가 광부로도 살았다. 미술평론가 김복영씨는 “일찍이 그는 대학시절 반 고흐의 초기작 감자를 먹는 광부가족에 눈을 뺏아겼다”면서 “고흐가 그랬던 것처럼 기층민에 대한 연민의 장선상에서 예술의욕을 불짚이려는 의기가 불타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실명위기가 오기까지 탄광촌에서 석탄을 캐고 태백사람들과 함께했다. 하지만 그는 화가였다. 길가, 풀섶, 하천등 아무데서나 풀썩 앉아 그림을 그렸다. 사람들은 그를 ‘똥물 화가’로 불렀다. 삶의 현장에서 길어낸 작품, 그의 90년대 후기 작품들은 산하와 흙산을 닮은 인간들을 주인공으로 다루어 그림과 현실이 하나임을 보여주었다. 시커먼 광부의 초상중 ‘한숟가락의 의미’는 경외감마저 느껴지게 한다.

쏟아내는 작품과 일심동체로 살아왔던 그가 부각된 건 2007년. 우리가 잊고 있었던 광부, 소박하지만 치열한 생존 현장을 냉철하게 재현한 그의 작품은 생명의 존엄성과 우리삶을 진지하게 성찰하게 만들며 호평받았다. 화면 전체에 흐르는 형태의 힘, 침묵의 무게, 존재의 진정성은 황재형 작품의 핵심이다.

<사진>황재형/메탈지그와 선탄부 259.1x193.9cm/2004∼2009

■3년만에 개인전 ‘황재형 다시보기’

황재형이 3년 만에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5일 개인전을 연다.

처음엔 유화물감 살돈이 없어 사용하기 시작한 탄가루와 흙은 이제 그를 차별화하는 특징이다. 검은 색은 석탄가루, 흙벽과 흙은 진짜 흙으로 그렸다.물리적 사실성에 다가서려는 리얼리즘적 자세다. 태백이라는 장소적 특수성과 황재형의 특별한 인생 이력이 화제였던 예전 전시와 달리 이번 전시는 다시 ‘화가 황재형’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다.

이번 전시 제목도 ‘쥘흙과 뉠땅’이다. 1984년 첫 개인전이후 그가 천착하고 있는 주제다. “쥘흙은 있어도 누울 땅은 없는”사람들의 이야기다. 현실을 딛고 일어서 유토피아를 이루고자 하는 작가의 바람이 투영되어 있다.

90년대부터 그리고 그린, 작품부터 최근작까지 그의 변화를 엿 볼수 있다. 선탄부의 모습 등 탄광촌 사람들의 일상을 사실적으로 그린 인물화는 점점 빠지고 근작에선 서정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풍경화가 더 눈에 띈다.

“요즘 제가 사랑하는 주제는 골목 풍경이나 텃밭 같은 겁니다. 보기엔 남루하고 누추하지만 소박한 행복이 느껴지는 그런 것들이죠. 과거엔 무엇을 그려야겠다는 의무감 같은 게 있었다면 요즘은 길가의 돌멩이, 광부들이 쓰다 버린 나무 슬리퍼까지 하나하나 사사로이 보이지 않고 기쁘게 그립니다. 억지스러움이 많이 없어진 셈이죠..”

90년대 이전 작품들에서 현실과 대결하는 격렬한 투쟁을 벌였다면 담담한 관조자의 자세로 복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작품중 선탄부의 얼굴을 배경으로 루어(낚시할 때 쓰는 가짜 미끼)를 배치한 ‘메탈 지그와 선탄부’는 다른 작품과 다른 분위기다. 하이퍼리얼리즘을 구사할수 있는 데생력과 묘사력이 뛰어난 이 작품은 그의 민낯을 보는 것처럼 신선하다.
전시는 28일까지 열린다.(02)720-1020.

/hyun@fnnews.com/박현주 미술칼럼니스트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