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금융일반

[‘선진국 30년’ 일본에 듣는다] (下) 현지 진출 국내銀 지점장들의 조언

안대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0.02.04 17:34

수정 2010.02.04 17:34

지난 20년간 인수합병(M&A)만 수십여 차례 해본 일본의 은행권은 향후 은행권 재편을 앞둔 한국 은행권엔 '살아 있는 교과서'다. 지난해부터 한국 은행권의 이슈가 된 '기업 구조조정' '관치 금융 논란' '수익성 확보' 등은 이미 일본이 수십년 간 겪어온 난제들이다. 이에 본지는 일본 은행 지점장 인터뷰를 통해 2010년 한국 은행권이 풀어야 할 난제에 대해 의견을 들어봤다.

【도쿄(일본)=안대규기자】 일본에 진출한 국내 은행 지점장들은 한국의 금융산업을 더 키워야 한다며, 국내 은행도 국제수준에 걸맞은 규모를 갖출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아직 아시아에서 크게 두각을 내지 못하고 있는 한국 은행권도 글로벌 플레이어가 되려면 '덩치'도 키워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 밖에 일본 금융청의 권위처럼 기업구조조정과 은행 지배구조 과정에서 공적인 역할을 하는 한국 금융당국에 대해서도 은행권이 최대한 협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M&A, 일본사례 참고해야

재일동포이자 국내 최초 현지인 출신 지점장인 윤건인 하나은행 도쿄지점장은 지난 1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국제 기준으로 본다면 한국은 좀 더 금융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며 "국제 경쟁력이 큰 규모 있는 은행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는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는' 국제금융시장에서 '볼커룰(미국 정부의 은행 규제안)'이 한국마저 적용된다면 '정글의 법칙'에 의해 국제시장에서 금융 후진국격인 한국의 입지만 더 좁아진다는 우려때문이다.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는 전략이 현명하다는 것이다.

윤태화 산업은행 도쿄지점장도 이날 인터뷰에서 "일본 은행권은 버블 붕괴 이후 생존을 위해 수많은 M&A를 거치면서 발전해 왔다"고 소개했다. 실제 일본 은행권에 따르면 자산규모 192조9000억엔(약 2447조원)에 달하는 일본내 1위 금융그룹 도쿄미쓰비시UFJ그룹도 지난 1990년대 한국의 외환은행 격인 도쿄은행(외환전문)과 우리은행 격인 미쓰비시은행(대기업전문)의 합병으로 탄생됐다. M&A는 경쟁사를 자극시켰고 1990년대 말인 지난 1999년 일본 은행권엔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후지, 다이치간교, 일본흥업 은행 등 3개 은행이 일본 최초 지주사방식 통합을 결의해 미즈호은행을 탄생시켰고 같은 해 일본 관서지역 맹주로 군림하던 사쿠라은행과 스미토모은행도 합병을 결의했다. 일본 은행권 관계자는 "한국으로 치면 라이벌인 삼성과 LG가 살아남기 위해 M&A를 단행한 격"이라고 비유를 들었다. 순식간에 2위로 추락한 도쿄미쓰비시은행도 다시 M&A에 나서 지난 2004년 당시 4위 규모인 UFJ은행을 전격 인수키로 하고 7000억엔의 유상증자에 참여한 것이다. UFJ은행은 아사히은행과 도카이은행 등이 M&A후유증으로 내부 분란이 수습되지 않아 결국 다시 피인수됐다. 결국 14∼15개에 달하던 일본 은행권이 3개의 메가뱅크로 재편됐고 기타 증권, 투신사도 모두 은행계 지주회사에 편입됐다. 유일하게 비은행계로 남은 노무라증권의 경우 규모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지난 2008년 가을 파산한 리먼 브러더스를 인수했다.

■'관치'보다 합리적 개입 많아

'관치금융 논란'이 많은 한국과 달리 일본 금융청은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권위를 가졌다. 한 해에 영업정지만 60∼80여곳 은행 지점에 '철퇴'를 가할 정도로 엄격하기로 유명한 일본 금융청은 한번 내린 조치나 절차에 금융권이 한국처럼 이의제기를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일본 금융당국은 검사시 예고없이 책상, PC 등을 뒤지고 은행 지점내 모든 서류를 압수해 검사하기도 한다"며 "은행 임원도 함부로 일본 금융청 관료를 만날 수 없다"고 전했다. 또 기업구조조정할 때는 별도로 기업재생지원기구를 통해 채권단이 합의를 하는데 이 과정에서도 정부가 확실히 개입한다.
또 금융당국 직원에게 노후를 보장해줘 금융기관과 유착가능성도 없앴다. 이 밖에 M&A를 통해 성장한 일본 은행권은 한 조직내 내부 견제가 활발해 '황제 경영'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백국종 우리은행 도쿄지점장은 "유럽에 비해 금융역사가 짧고, 금융 규모가 작은 아시아 금융권에서는 아직 금융의 공적기능이 제대로 발휘되도록 하기 위해선 금융당국의 적절한 지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powerzanic@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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