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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담합 자진신고 ‘0’ 왜?

윤정남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0.02.11 05:05

수정 2010.02.10 22:32

담합한 사실을 자진신고하면 과징금을 단 한 푼도 내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적발된 '소주담합'에선 그 어느 업체도 자진신고를 하지 않았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둘 중 하나다. 이들 업체가 완벽한 담합을 했거나 정황상 담합일 뿐 담합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업계는 단 한 곳도 자진신고를 하지 않은 소주업계를 매우 이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담합으로 적발된 대부분 업체들은 자진신고를 통해 과징금을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10일 소주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4일 진로를 비롯해 무학, 대선주조, 보해양조, 금복주 등 11개 소주업체가 담합을 했다며 총 272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그런데 11개 소주업체 가운데 단 한 곳도 담합 사실을 자진신고하지 않았다. '자진신고자 감면제도' 이른바 '리니언시(Leniency)'를 아무도 활용하지 않은 셈이다.

일반적으로 가격담합을 주도해 가격 인상을 이끌어 낸 뒤 이 같은 사실이 발각될 것 같으면 미리 자진신고해 버리는 것이 관례(?)다. 먼저 신고한 업체는 100%를, 2순위 신고업체는 50%를 감면해 주기 때문이다. 일부 업체는 경쟁사를 쓰러뜨리기 위해 일부러 이 제도를 활용하는 등 부작용도 나왔다.

실제로 최근 액화석유가스(LPG) 업계의 담합적발 사례에서 시장점유율 1위 업체 SK가스는 과징금 50%를 면제받아 1000억원에 가까운 돈을 아꼈다. SK에너지는 부과된 과징금(1602억원)을 단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지난해 적발된 음료수 담합에서도 담합 사실을 자진 신고한 코카콜라와 동아오츠카는 과징금을 감면받았다. 2007년 합성수지 등 석유제품 가격 담합에서도 당시 업계 1, 2위인 호남석유화학과 삼성토탈은 자진신고해 과징금을 각각 100%, 30%씩 감면받았다.

이 같은 추세에도 불구하고 소주업체들은 아무도 자진신고를 하지 않았다. 더 나아가 이들은 "국세청의 행정지도에 따른 가격조정이었다. 국세청이 행정지도를 하고 있는 만큼 담합을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고 항변한다.

이를 놓고 '적발 이후에까지 이어지는 완벽한 담합'이라는 해석과 함께 '국세청의 행정지도에 따른 가격조정으로 담합이 아닐 수 있다'는 해석으로 엇갈리고 있다.

그러나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사이) 관계인 소주업체 중 단 한 곳도 자진신고를 하지 않은 점으로 비춰 볼 때 담합이 아닐 수도 있다는 해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그간 소주업체들은 비슷한 시기에 가격을 인상해 왔다.하지만 공정위에 담합으로 적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소주가격 결정권이 사실상 국세청에 있기 때문이다.
소주업체들은 인상 요인이 발생해 가격을 올릴 경우 국세청에 의견을 구해야 한다. 이때 국세청의 동의가 없으면 가격 인상을 할 수 없다.


'소주담합'이 행정소송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가운데 앞으로 전개될 법적공방에서 자진신고 여부가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yoon@fnnews.com 윤정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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