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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택 “팡팡튀는 내 작품 가끔보면 너무 좋다더라”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0.02.18 08:26

수정 2010.02.18 09:42

▲ 형형색색의 수많은 연필이 발사된 로켓트처럼 캔버스를 튀쳐나오려 하는 ‘연필’ 작품은 홍경택의 브랜드가 됐다. 작품보다 경매가격 이야기는 사양한다고 했다. 그는 “더 노력하고 끊임없이 변화할 것”이라며 “살아 움직이는 작가로 인식됐으면 한다”고 말했다./사진=박현주

아파트와 연립주택·빌라가 빽빽이 들어서고 골목길이 좁은 곳에 있는 4층 교회건물 3층. 금방이라도 깨질 듯 쩍쩍 갈라진 유리창, 한눈에 모든 게 보이는 허름한 작업실은 스타작가로 들썩이는 그의 명성과 달랐다.

총천연색 수많은 연필이 불꽃놀이 하듯 팡팡 터질 것 같은 작품 '연필 I'(259×581㎝)이 탄생한 곳. 그림처럼 갈라진 유리창이 터져나갈 것 같고 전봇대 전깃줄이 이리저리 널린 '천호동 작업실'은 재개발을 앞두고 있다고 했다.

40년 넘게 서울 천호동에서만 살아온 동네에선 '출세한 장갑집 아들'로 유명하다.

'색채의 난장판'. 분출할 듯 솟구치는 색을 잡아끌고 다스려서일까. 지난주 작업실에서 만난 그는 내공이 강한 도사 같았다. 숱 많은 꽃미남 네이버 프로필 사진과 달리 짧은 머리를 한 그는 빈틈없는 그림처럼 단단해 보였다. 몇 달 전 답답해서 머리를 삭발했었다고 했다.

서양화가 홍경택. 사이키델릭 조명무대를 연상하는 그의 작품 '훵케스트라'처럼 그는 미술시장에서 빛나는 스타작가다. 홍콩 크리스티 국내 최고가 낙찰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기록은 아직 깨지지 않았다. 2007년 5월 추정가 10배에 달하는 648만홍콩달러(7억8000만원)에 팔린 작품 때문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깜짝 스타가 되어버린 작가는 "경매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자"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도 피해갈 순 없다. 당시 해외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로 낙찰됐을 때 기분은 어땠나.

▲진짜 만감이 교차했다. 그런데 한편 서운하기도 했다. 왜 진작 한국에서 이것을 알아보지 못했을까. 왜, 그래서 외국사람한테 팔렸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알아본 '연필그림'은 사연이 있다. 대학졸업 후 첫 공모에 출품했던(대안공간 사루비아 다방) 이 작품은 심사에서 떨어졌다. 이후 2000년 인사미술공간 첫 개인전에 선보인 초대형(120호 6점을 3열 2단으로 이어붙인) 연필그림은 때가 이른 탓일까 선풍적 인기는 누리지 못했다. 작업실이 비좁아 조각조각 붙여 만든 연필<2>그림은 차곡차곡 포개져 가지고 있다고 했다.)

―경매 후 '홍경택 작품=돈'이라는 등식이 성립됐다.

▲그 당시엔 시장 자체가 비정상적이었던 것 같다. 극성스러운 딜러들이 있었다. 카이스갤러리와 함께 관리했지만 판매한 그림이 몇 달도 안 돼 높아진 가격에 시장에 다시 나왔다. 장사꾼들 하고 놀아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정신 바짝 차려야지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시장이 죽었다고 하지만 지금이 정상적인 것 같다. 작품에 몰두할 수 있어 좋다.

―작품값을 공개할 수 있나.

▲작품 크기에 관계없이 질 높은 작품이나 대표작들은 가격이 높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리즈 크기와 질에 따라 다르다. 화랑에서는 왜 가격이 들쭉날쭉이냐고 하고 컬렉터들도 싫어한다. 타협하지 않겠다. 너무 힘들게 한 작품과 간단하게 한 작품값이 같을 순 없지 않은가.

―그림 그리는 여자들은 누구인가.

▲내 그림을 그리는 조수들이다. 분업화되어 있다. 혼자 한다면 비효율적이다. 1년에 100호를 혼자 그린다면 4∼5점밖에 그리지 못한다. 조수들 하고 한다면 30개 정도 나온다. 나는 스토리텔러다. 상상 속에서 이야기 구조가 맞게 내러티브를 구성한다.

―형형색색 우글거리는 연필들, 땡땡이들, 그리다가 미쳐버릴 것 같다. 작품보면서 무슨 생각하나.

▲나도 제정신으로 그렸나 싶다. 공포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자신을 들볶는다고나 할까. 소용돌이 속 쾌감을 느낀다. 처음엔 꽉 채울 생각은 없었다. 몇 년 동안 진행하면서 강한 것을 추구하다 보니 결과물로 나왔다. ("그래픽 같은 그림. 그는 중학생 때부터 패턴도안에 일가견이 있었다. 주변 집기를 강박적 기하구조 속에 재배열하는 패턴화의 열정, 총천연색의 대폭발 초현실적 형상주의와 팝아트의 재기발랄이 한데 묶였다." (미술평론가 반이정)

―컬렉터 반응은 어떤가. 에피소드는 들어봤나.

▲모 대기업 회장님이 너무 강해서 걸어놓을 수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 그럼, 그림 앞에 커튼을 치세요라고 해 한바탕 웃은적이 있다. 어떤 그림은 두고두고 편안하게 녹아드는 그림이 있지만 가끔 봐서 너무 좋은 그림이 있다. 바로 내 그림이라고 한다. 일반 컬렉터들은 책가도, 연필그림을 좋아한다. 너무 쉽고 단순한 그림인데 해석하려 한다. 가볍게 즐겨라.

―경쟁자가 있나.

▲혹자는 김동유와 비교한다. 경매기록 때문이다. 묘한 질투심을 느끼는 작가가 있다. 데미안 허스트와 정수진씨다. 데미안 허스트는 종교·세속적인 것과 결합해 파워풀한 것을 추구하는 내 작업과 비슷한 것 같다. 그의 작품을 보면 수가 읽힌다. 가령 나비, 해골작품도 그렇고 내 작업이랑 비슷한데 놀라운걸!하는 생각이 든다. 정수진씨는 회화적인 상상력이 뛰어나고 물감을 잘 다루는 작가다. 신문기사에서 작품을 보고 연락해 서로 팬이 됐다.그의 작품이 좋다.

―2008년 훵케스트라를 선보인 후 작품 변화가 있나.

▲새로운 작업으로 넘어가는 단계에 있다. 항상 그렇지만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보다 하나에 꽂히면 밀고 나간다. 요즘은 모노드라마처럼 손을 주제로 스토리를 만들고 있다. 제목은 카인과 아벨이다. (손 작품 예고편은 2008년 연옥 전시도록 끝장에 장식하고 있다.)

―가벼움의 시대, 잭팟처럼 터졌다.

▲10년 넘게 무명생활을 했다. 그림으로 먹고 산다고는 생각도 못했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찾아온다. 경매 작가로 얽매이고 싶지 않다. 예술성과 상업성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 진정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 그림 그리는 일이나 인생을 사는 일, 모두 같다.
변해야 살고 또 버텨야 산다. 성공의 속도가 느리다고 포기하지 말라.

―올해 전시계획은.

▲오는 4월 독일 '보훔미술관' 그룹전에 참가하고 9∼10월께 한진그룹 사옥의 리모델링한 전시장에서 전시를 한다.
앞으로 개인전을 한다면 뉴욕 모마미술관에서 전시하고 싶다.

/hyun@fnnews.com 박현주 미술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