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특별기고

[특별기고] 조심,조심,산불 조심/이상길 산림청 차장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0.04.05 16:51

수정 2010.04.05 16:51

청명은 화창한 봄 날씨가 시작되는 날이고 한식은 조상의 산소를 살피고 찬 음식을 먹는 날이다. 보통 같은 날이거나 하루 차이여서 이를 빗대어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라는 속담이 생겼다. 4월 5일 식목일은 1946년 나무심기를 권장하기 위해 제정된 '국가기념일'이며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우리민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날이다.

청명과 한식, 식목일의 공통점은 나무심기에 가장 좋은 시기며 본격적인 봄 일을 시작하는 때라는 것이다. 그래서 조상들은 아이를 낳으면 시집·장가갈 때 농짝을 만들어 줄 재목감으로 '내 나무'를 심었다. 이왕이면 청명·한식날을 골라 심고 '한식날 심은 내 나무, 금강수(金剛水) 물을 주어 육판서로 뻗은 가지 각 읍 수령(守令) 꽃이 피고 삼정승 열매 맺어…'로 이어지는 '내 나무 노래'를 부르며 정성껏 길렀다.

이처럼 청명·한식과 식목일이 있는 4월은 '희망의 달'이다. 너도 나도 희망의 나무를 심고 농업인들은 풍성한 결실을 기대하며 한해의 농사일을 시작한다. 또 이 세 날은 '조상을 섬기는 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청명과 한식에는 경건한 마음으로 조상의 산소를 돌보거나 비석을 세우기도 한다. 특히 한식에는 춘추전국시대 충신 개자추(介子推)의 고사에 따라 불을 쓰지 않고 찬 음식을 먹는 풍속이 생겼다. 식목일 또한 성종 임금께서 조상께 제사를 올리고 친히 경작을 한 날이기도 하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청명·한식, 식목일을 전후해 1년 중에 산불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달갑지 않는 또 하나의 공통점이 생겼다. 미래를 위해 희망의 나무를 심으면서 돌아서서는 희망을 불 태우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02년 전국에서 식목일 하루에만 기록적인 63건의 산불이 동시에 발생한 것을 비롯해 우리나라 최대의 산불로 기록된 동해안 산불의 경우 2000년 4월 7일 고성에서 발생해 강릉, 삼척, 동해, 경북 울진까지 번지면서 피해적이 서울시 면적의 40%에 해당하는 2만4000㏊에 달했다. 또 2005년 4월 4일에는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낙산사를 전소시키면서 국민의 가슴까지 불태웠던 양양 산불이 발생했다.

다행히 올해는 3월까지 산불 피해가 적었다. 73건에 피해면적이 18㏊로 평년의 30%에 불과했다. 그러나 어김없이 돌아온 4월, 매년 이맘 때면 연례행사 치르듯 산불을 겪는다. 더욱이 우리나라 산불은 사람들의 사소한 부주의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여간 안타까운 일이 아니다.

최근 10년간의 산불통계를 보면 연평균 523건으로, 한해에 서울 여의도 면적의 4배가 넘는 3700여㏊의 산림이 피해를 보고 있다. 그중 4월의 평균 발생 건수가 162건으로 제일 많고 지난해 4월의 경우는 206건이나 발생했다. 요인별로는 논·밭두렁 소각으로 인한 산불이 140여건으로 전체 산불의 27%를 차지하고 있고 입산자 실화가 221건으로 42%를 차지해 이 두 요인이 전체 산불의 약 70%를 점하고 있다. 또 산불을 내고 불을 끄려다 사망한 사람은 83명에 이르고 불을 낸 사람은 대개 70세 이상의 지역 주민이 대부분이다.

햇살이 따사로워지면 연세가 든 어르신들은 들로 나가 습관적으로 혹은 자녀들의 농사일을 거든다는 생각으로 논·밭두렁을 태운다. 산불 통계가 보여 주듯이 이런 관행으로 인해 많은 산불이 발생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특히 성묘 가서 불을 피우다가 조상의 산소를 태우는 것은 물론 푸른 숲을 태우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누구나 무심코 행동하는 이런 일들이 큰 산불의 도화선이 되고 가정과 사회 나아가 국가적으로 엄청난 재난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올봄에는 아까시꽃이 피고 느림보 대추나무 잎이 돋아날 때까지 산불 걱정에서 벗어나 금수강산의 아름다운 변화를 맘껏 즐길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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