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칼럼] 中企 발목잡는 원자재가 상승/차상근 산업2부장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0.05.06 19:04

수정 2010.05.06 19:04

모두는 아니겠지만 많은 중소기업에는 경기가 풀려도 말썽이다.

원자재 가격이 뛰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경기 호황의 끝무렵이던 2008년에 발생했던 원자재 파동을 떠올리고 있다.

철광석, 알루미늄 등 30개 주요 수입원자재 가격 흐름을 집계하는 한국수입업협회(KOIMA)의 코이마지수는 금융위기가 본격화된 지난 2008년 9월 이전 수준으로 이미 치솟았다. 천연고무·펄프·알루미늄·철광석 등의 가격은 주요 원자재 가격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던 2008년 여름 수준을 넘어섰거나 근접하고 있다.

원유 도입 단가는 배럴당 85달러를 넘어 1년 만에 무려 70% 이상 뛰었다.

글로벌 경제위기의 생사기로에서 겨우 숨 좀 돌린 중소기업들이 수주물량을 쌓아가며 일 좀 해보려는데 원자재가 발목을 잡는 형국이다. 지난 4월 중소기업중앙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가장 큰 애로사항은 자금도, 인력난도, 매출채권 회수 문제도 아닌 원자재 가격 상승이었다.

중소기업들은 이처럼 급증하는 원자재가격 부담을 납품 단가에 반영하기 위해 골머리를 싸매고 있다.

골판지 업계의 경우 납품 단가를 올려주지 않는다며 최근 골판지 상자 공급을 전면 중단하는 것은 물론 공정거래위원회에 하도급 대금 조정을 신청했다. 통조림이나 음료캔 등을 만드는 제관업계는 납품 중단이 아닌 '납품 불가능' 상태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단조·도금·전선·자동차부품 등 주요 중기 업종 단체와 기업들은 납품단가 인상이 곧 현실화되지 않는다면 서로 연대해 집단행동을 펴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납품단가를 둘러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갈등이 불과 2년여 만에 다시 고조되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도 어김없이 당하는 쪽은 중소기업들이란 볼멘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원자재 파동은 2000년대 들어서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바탕에는 수급 불균형의 문제가 깔려 있다.

골드만삭스는 지난해 여름 이 같은 상황을 이미 예측했다.

당시 골드만삭스의 보고서는 "상품시장은 전반적인 세계 경기와 함께 반등하고 있다. 지난해와 같이 심각한 공급 부족이 수요량을 따라가지 못해 가파른 가격 상승을 유발한다면 원자재 파동은 재현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반복적이면서도 주기가 짧아지는 원자재 인플레이션 상황의 배경은 투자 부족에 따른 공급 위축이란 것이 골드만삭스의 주장이다.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신흥개발도상국들의 경제 규모와 소비가 21세기 들어 급팽창하고 이에 따른 엄청난 자원 및 상품 수요가 생기고 있는 데 비해 원자재 공급 증가 추이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일각에서는 국제 투기성 자금의 준동과 중국 등 일부 국가의 입도선매식 자원 확보 경쟁 등이 일조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현재의 공급 능력을 초과하는 총수요가 근본적으로 원자재가격을 뒤흔들고 있다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이 같은 상황은 글로벌 경기회복 추세에 따라 더욱 심화될 것이다.

이 때문에 골드만삭스의 충고를 차치하더라도 지난 금융위기와 세계 경제침체 때가 반복되는 원자재 난에 대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정부는 뒤늦게 지난달 말 국내 주요 대기업들에 중소기업 납품가격 현실화를 요청했고 원재료를 공급하는 소재분야 대기업들에는 공급가의 인상 자제를 당부하며 부산을 떨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대기업들의 고통분담 및 납품단가 조정을 압박했다.

정부의 뒷북치기가 먹혀들지는 미지수다. 2008년 파동 때는 경기침체로 자연스레 원자재가격도 하락하고 대·중소기업 간 갈등도 해소됐다. 반면 이번 사태는 글로벌 경기회복 추세를 볼 때 언제까지 지속될 지도 가늠하기 힘들 지경이다.
영원한 을인 중소기업이 거대 갑에게 양보를 얻어낸다는 것이 정부란 중재자가 있어도 쉽지 않다는 것을 을은 누구보다 잘 안다. 오죽하면 2년 전에는 조업 중단과 납품 거부까지 했을까.

정부는 이제라도 2008년 원자재 파동 때 만든 '납품단가 조정협의 의무제' 등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제도가 실효성을 갖도록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중소 하도급 업체들이 어려워지면 우리 경제의 성장동력은 보다 위축되고 경제구조의 기형화는 더욱 심화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