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전설의 신사실파 백영수화백 “그림은 내게 자유의 세계”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0.07.08 08:52

수정 2010.07.08 03:03

▲ 2000년대부터 시작된 점과 선으로 그려진 하얀작품앞에서 백영수화백이 포즈를 취했다. 백화백은 카메라를 움직이자 양손을 뒤로하고 벽에 딱 붙었다.

낮고 성성하게 엮어진 하얀 철문이 열려 있었다. 마당안엔 다섯개의 가지가 꽃처럼 피어난 집채만한 소나무가 발길을 잡았다. 경탄과 함께 돌아본 하얗게 칠해진 집은 낮고 소박하면서도 이국적인 분위기로 가득하다.



하얀 타일과 흰 페인트로 꾸민 집안에 들어서자 “신발을 신고 들어오라”며 은발의 화백이 손님을 맞이했다. 벗던 신발을 다시 신고 올라선 거실은 단정하면서도 자유로웠다. 바닥에 놓인 TV, 높은 천장, 키낮은 하얀책상과 아이가 앉을만한 작은 의자가 눈길을 끌었다.

“의자가 클 필요는 없죠. 화백님이 직접 만들었어요. 화가라면 자기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을 만들수 있어야 한다고 하는 분이세요. 쟁반도 보세요. 너무 잘 만들지 않았어요”. 은발의 짧은 커트머리에 갈매기 눈썹을 가진 부인은 노화백의 솜씨를 은근 자랑했다.

김환기 유영국 장욱진 이중섭 이규상등 국내 신사실파 그룹에 참여한 화가중 유일하게 현재까지 살아있는 화가, 서양화가 백영수(88)화백이다. ‘새로운 사실화’를 그린다는 의미로 붙여진 신사실파 모임의 멤버로 막내였던 백화백은 ‘한국 근현대 미술의 전설’이다. 지난달 파리에서 건너와 국내에서 12년만에 서울 공평동 공평아트센터에서 개인전을 연 백 화백을 경기도 의정부에 있는 자택겸 작업실에서 만났다.

백 화백의 집은 정제된 순도의 미가 담긴 작품처럼 절제되고 평화로웠다. ‘부부가 가장 좋아한다’는 좁고 하얀방은 그의 그림속으로 들어간 듯 했다. 삼각형의 높은 천장아래엔 아치형의 손바닥만한 창들이 조그맣게 뚫려있고 키낮은 하얀 탁자와 작은 하얀의자가 소꿉놀이하듯 놓여졌다.바닥엔 햇살이 만들어낸 창들의 조그만 그림자가 눈부시게 빛났다.

흰벽에 빛으로 선을 그은 듯 작게난 창가에 앉은 부인은 “작은 창이라도 보이는 건 다 보이죠.” 라며 푸르른 녹음과 무지개빛 햇빛이 가득한 마당에 눈길을 돌렸다.

무심한 표정으로 바깥을 보던 백 화백이 느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38년전 심은 소나무예요. 저렇게 크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양반다리로 허리를 세우고 앉은 그는 “그림그릴때 이런 자세로 그린다”고 했다. 그는 “77년 프랑스로 떠났었다”며 “30년이라는 기간을 프랑스 파리에서 살면서도 지금의 의정부집을 남겨두었다”고 했다. 그가 일어서 어디선가 찾아온 흑백사진엔 풀섶이 가득한 언덕위의 집이 담겨있다. 옛집의 모양은 지금 그대로였다. 나지막하고 오래된 집. 은발의 부부에게 과거와 미래가 교차하는 아름다운 타임머신이다. 일년에 한번씩 파리에서 나와 옛집의 편안함을 누리고 있는 백화백은 번잡한 세상이란 옷이 맞지 않는 부류의 사람같았다. 형태를 극단적으로 단순화시킨 그림처럼 그는 조용조용 느릿느릿 걸어다니며 조그만 창유리로 보는 바깥 풍경만으로도 충분히 세상의 아름다움을 음미하고 있는 것 같았다.

▲ 백영수화백 부부가 가장 좋아한다는 하얀방은 고행성사를 해야할 것 같은 작은 기도방 같았다. 높다란 천장아래 조그맣게 난 창문과 햇살로 빛나는 바닥의 창문그림자는 단아하고 절제된 백화백의 그림속 같다.

― 은근히 곱씹을 맛을 주는 작품 색감이 독특하네요.

▲빛깔은 화려한 색보다는 중간색이 많지요. 화구에서 짜낼때 그 색 그대로 쓰지 않아요. 자연스런 색은 원색이 아니고 중간색이라고 나는 생각해요. 우리말로 색깔을 죽였다고 하지요. 색깔을 구은색, 삭힌색, 그런색이 좋아요.

―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있는 작품속 얼굴을 보니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표정이 다정하게 보이지요. 혼자보다는 두 사람을 그렸어요. 더 다정하게 보이지 않아요?. 6·25 동란 중 낙동강 하류 지역에 피난을 갔는데 한 초가에서 6∼7살 정도 되는 아이를 봤어요. 지쳐 있는지, 기대있는지, 아니면 누구를 기다리는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그 장면이 너무 인상적인 거에요. 그 뒤로 인물을 그리면 정자세가 아니라 자꾸 갸우뚱하게 그려지게 되요. (평안하면서도 어딘지 애잔함이 묻어나는 작품속 얼굴은 약간 갸웃한 고개로 바깥풍경을 쳐다보는 화백의 ‘아바타’였다.)

방안엔 화백의 그동안 전시했던 팜플릿, 책자들이 낮은 자세로 정리되어 있다. 그 가운데 2008년 열린 ‘신사실파 60주년 기념’전 도록에 이중섭의 소가 보였다.

―이중섭의 황소가 최근 35억6천만원에 팔렸는데 들으셨나요.

▲아, 들었어요. 옛날에 이중섭하고 거의 매일 다방에서 얼굴을 맞대고 살았어요. 가난하고 외로운 처지가 엇비슷해 말이 별로 없어도 서로가 가깝게 느끼곤 했지요. 이야기하기가 거북하지만 예전에 은박지 그림을 보고 놀란적이 있어요. 중섭과 다방에서 만나서 놀때 시간때우기가 지루해 다피운 담뱃갑속의 은박지를 싹싹 펴서 연필로 간단한 컷을 그리곤 했는데 사실 숫자가 많지 않았어요. 그런데 언젠가 보니 은박지 그림이 많고 더욱이 그곳에 작가 사인이 있어서 놀란적이 있어요. 은박지 그림은 심심풀이였지 무슨 작품을 만들기 위해 그린것이 아니었거든요. 소 그림도 후에 보니 너무 정리가 되어있고 선이 굵어 모양이 신비스럽지가 않아요. 그 당시에는 그렇게 안그렸는데….

― 가족이야기가 담긴 인물 형태에서 현재의 그림은 점과 선으로 이뤄진 추상으로 변했습니다. 좋아하는 화가는 누구인가요.

-조르주 브라크와 호앙 미로를 좋아했어요. 미로는 천재예요.브라크도 천재고요. 레제, 피카소도 브라크의 영향을 받았고 방법은 다르지만 살바도르 달리는 미로의 영향을 받았죠. 미로는 참 좋은 작가입니다.

▲ 백영수화백의 트레이트 마크가 된 고개를 갸우뚱한 얼굴이 담긴 작품을 배경으로 무심한듯 포즈를 취했다. 중간색의 삭힌 색감때문일까. 백화백과 작품은 번잡하고 수다스런 현실과 격리된채 조용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졸수를 앞두고 있는데 평상시에도 작업을 하시나요.

▲그럼요. 작업하지요. 이렇게(양반다리) 앉아 몇시간씩 그리곤 합니다. 하지만 여간 괴로운게 아니에요. 어떤때는 머리가 맑고 어떤때는 답답하고. 내 나이쯤 되면 공기의 압력을 느낍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생활하지만 물속에 잠겨서 있는 것 같지요. 80살까지도 못느꼈는데, 최근 4∼5년동안 느끼고 있어요. 그걸 설명해도 의학적으로 검사가 안나오고 아주 건강한 상태라고 합니다. 아직 젊어서 모르겠지만 내 나이쯤에 가서 내 말을 이해할 거에요.그래도 습관이 되서 그림을 그리는데는 큰 문제가 없어요.

―평생 그림만 그려온 화백님에게 그림이란 무엇인가요.

▲그림은 내 인생의 또 다른 자유의 세계입니다. 다른것은 여러가지 제한이 있고 어렵잖아요. 사는게 쉽지가 않지요. 하지만 그림속의 캔버스 네귀퉁이안은 내게 자유스럽지요. 내 맘대로 칠하고 그리고 생각을 하고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내가 숨쉬는 것처럼. 다른 직업도 마찬가지지만 거기에 도취되어서 즐겁게 하는 것은 참 좋은 거지요.

해방후 격동의 시대와 6.26전쟁을 겪었다. 외국에서 활동과 눈물젖은 빵. 대형교통사고, 위암수술, 죽을고비도 넘겼다. 그럼에도 붓을 놓지 않았다.

“인생은 과정이고 화가의 작업도 과정일 뿐”이라며 그는 ‘성낭갑속의 메시지’라는 자신의 회상록 책에 왼손으로 Paek를 또박또박 써서 건넸다. 아이같은 글씨. 백화백은 이파리를 내리는 식물같은 순함으로 빛났다.

/hyun@fnnews.com박현주 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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