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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匠人’을 찾아서] 중요무형문화재 35호 김철주 조각장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0.08.12 18:30

수정 2010.08.12 18:30

▲ 김철주는 1933년 서울에서 태어나 1970년 선친인 김정섭 옹이 중요무형문화재 35호로 지정되면서 금속조각에 본격적으로 입문, 1989년 12월 선친의 뒤를 이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다. 현재 중요무형문화재 작품전 등 매년 작품을 출품하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문화유산 보존·관리에 힘쓴 공로로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조각이란 분야는 고도의 정신 집중이 필요하기 때문에 일을 시작하면 거의 사람을 만나지 않고 몰두한다. 한번 잡념이 들면 1주일이고 한달이고 잡념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일에 손을 대지 않는다."

'혼을 두드려 예술을 빚는다'는 좌우명으로 '조이질' 조각장의 명맥을 잇고 있는 중요무형문화재 35호 김철주. 조이질은 작은 정으로 금이나 은을 쪼아 세공하는 조각과는 달리 금속 표면을 파내 여러 가지 문양을 만드는 기법을 뜻한다.


조각은 그 자체로서 문양을 만드는 것이고 또 새겨진 음각의 공간에 다른 금속을 메워 넣는 상감기법의 기초작업이 되기도 한다.

■혼을 두드려 예술을 빚는다

다양한 조각기법, 다양한 문양을 기물에 거침없이 새기는 그의 작품은 정교하면서 단단하다는 평을 받는다. 1970년대 선친 김정섭 옹과 함께 제작한 사리함, 쌍용액자는 육각기법으로 힘이 넘치며 1975년 은상감쟁반은 의욕에 찬 젊은 시절의 활달함과 모색을 읽게 되고 1993년부터 1996년까지 3년 동안 제작한 오동상감당초문화는 원숙기의 상감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평생 주로 제작한 형태는 조각과 오동, 금, 은 입상감이 들어 있는 화병, 향로, 함, 호리병, 쟁반, 잔대, 액자 등의 작품은 전통적 형태에 전통문양을 재창조해왔다.

선친이 작고한 이듬해인 1989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35호 보유자로 정식 지정된 그는 일찍이 선친이 경영하던 삼광상회에서 일을 도와가면서 금속조각을 배우기 시작했다. 해방 이후에는 서울 와룡동에다 공방을 차리고 각종 기물과 패물 등을 제작하며 조각 일을 시작했다. 1947년 서울 효자동 근처에 백하금속조각연구소란 간판을 내걸고 기술을 연마한 그는 1963년에는 보석상을 경영, 1967년부터는 가내수공업으로 서울 장위동과 종암동 등에서 금은세공과 아울러 조각을 계승했다.

전수교육 활동으로서 자신의 공방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는 것 외에도 지금의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의 전신인 서라벌예술대학 공예과에서 조각기법 실기 기술을 강의했으며 이후 국민대학교 공예과 및 홍익대학교 공예과 등지에서도 금속조각 기법을 강의했다.

김철주 조각장이 장인정신에 입각해 본격적으로 작품을 만든 시기는 1970년대 초반이다. 김 조각장은 당시 기술 입문의 과정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다고 회고한다.

"가장 힘들었을 때는 아버님의 꾸중을 들어가며 가르침을 배울 때였고, 가장 행복했을 때도 역시 아버님의 꾸중을 들어가며 가르침을 배울 때였어."

부친을 잃은 슬픔이 오히려 자극제가 되어 더 좋은 작품을 위한 노력과 열정이 한층 증폭되는 시기였다. 이와 더불어 성직자와 같은 온화한 정신자세로 임하는 작업태도를 통해 작품의 완성도는 그 수준을 더해갔다.

그는 이런 이유에서인지 작업대 옆에 늘 선친의 족자를 걸어놓고 힘들 때마다 쳐다본다고 한다. 선친을 생각할 때마다 용기가 생겨 이제는 마음을 다스리는 표석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70을 넘어서 첫 전시회를 열다

그는 좀처럼 그의 혼이 담긴 작품을 보여 주지 않는다. 많은 공예인이 본인 이름의 전시관이나 박물관을 만들고 전시회를 하지만 그는 그렇지 않다. 오로지 후학양성과 작품활동만 한다. 그래서인지 2007년 백발이 성성한 70대 중반이 돼서야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건 조각전을 가졌다.

당시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부쩍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었다는 그는 "아버지 살아계실 때 30년 동안 전시회를 해 드린다, 해 드린다 해놓고 미처 못 열어드린 것이 마음이 아프다"고 회고했다.

그래서 3년 전 처음으로 열렸던 그 조각전은 '대를 잇는 조각장 부자전'이란 닉네임이 붙기도 했다.

"작품전이 늦었던 이유는 작품이 잘 안 나오기 때문이야. 하나를 만드는 데 6개월도 걸리고 1년도 걸리는 데 40년을 했다면 40개밖에 더 했겠어. 잡음이 있으면 일이 안 돼. 머릿속에 잡념을 씻어내고 다시 시작해야 하니까. 웬만한 상감 조각 하나 만드는 데 6개월에서 1년이 걸리지. 모든 과정을 손으로 새겨 넣거나 깎아내는 작업은 마치 고승이 암자에서 홀로 도를 닦는 인고의 과정이나 다름없지."

그는 전시를 자주 해도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작품은 힘들여서 나오는 데 판로가 없어 자꾸 쌓아두기만 하면 처분이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물건이 많이 나가야지. 그렇지 않으면 곤란하지. 뭘 먹고 살아. 그래도 옛날에는 왕이 곡식도 내려보내고 하사하는 게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게 없어. 그렇다고 돈이 많으면 되는데 그렇지도 않으니 힘들지."

현재 조각장은 인식부족과 판로부진 등으로 정부가 적극 보호·육성하지 않으면 명맥이 끊길 위기에 처해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우리의 전통 금속공예가 외국 조형품에 밀려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사라져가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 장인의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전통의 맥을 지켜나가는 정신이지."

"대학교 금속공예학과에서 조이질을 가르치고 있지만 한 학기 과목에 그쳐 중요성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어."

그는 조각장 등 전통을 이으려는 후학에 대해서도 충고를 잊지 않았다.

"심성이 제일 중요하지. 사람 됨됨이 말이야. 사람이 어둡게 살면 안 되지. 그래서 배우겠다고 오면 그 사람 심성을 본 다음에 나중에 이력서 가져오라 해서 전수생으로 뽑고 있지."

"제자들에게 바라고 싶은 건 없어. 내 얼굴에 먹칠만 하지 않고 나보다 낫다는 소리를 들어야지. 다른 건 없어."

/mskang@fnnews.com강문순기자

■금·은 등 금속에 무늬나 글씨를 새기는 匠人

중요무형문화재 35호 조각장은 금속에 조각을 하는 기능이나 기능을 가진 사람으로 조이장이라고도 한다.

금속조각은 금속제 그릇이나 물건의 표면에 무늬를 새겨 장식하는 것을 말한다. 출토된 유물에 의하면 금속조각은 청동기시대에 처음 발견되었고 삼국시대에는 여러 가지 조각기법이 사용됐고 고려시대에 발전됐다. 그 후 조선시대에는 금속공예 분야가 세분화돼 조각장이 따로 설정되어 있었다.

금속조각 기법으로는 평각·투각·고각·육각·상감입사 등이 있다. 평각이란 일명 음각이라고도 하는데 평면에 여러 가지 문양을 쪼아서 나타낸다. 투각은 바탕면의 문양에 따라 필요 없는 부분을 정으로 쪼거나 오려서 빼낸다. 고각은 바탕면에 무늬를 도드라지게 튀어나오도록 한다. 육각은 가장 어려운 기법으로 기물의 외면과 내면에 정으로 두들기거나 오그려서 무늬를 나타낸다. 상감입사는 바탕에 홈을 파고 그 자리에 금·은·오동선 등을 넣은 후 빠지지 않게 다진다. 재료는 금·은·철·석·연·아연 등으로 다양하나 주로 은을 사용한다.

조각장은 전통공예기술로 개화의 추진 과정에서 기술과 전통이 크게 위축되고 그 맥이 끊길 위험에 처해 문화재 보전 차원에서 전통을 계승하고 보호하기 위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대전회통'에 따르면 근세 조선왕조 경공장 가운데 공조에 매였던 장인의 수는 55종에 255명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금속공예 관계가 12종 80명으로 약 30%를 차지, 그 비중이 컸다.

특히 개화기 이후에는 서울 종로 광교천변에 은방도가가 군집해 있어서 금은세공의 중심이 되었다. 은방도가는 대공방과 세공방으로 나뉘어 있었으며 전자는 주전자, 담배합, 신선로 등 큰 것을, 후자는 비녀, 가락지, 괴불, 방울, 노리개 등 자잘한 것들을 만들었다. 대공방과 세공방에서 만들어졌던 은제품에 무늬나 글씨를 조각하는 것이 조각장 또는 조이장이들의 일이었다.

구한말 은방도가의 솜씨를 이어받은 사람이 김철주의 선친인 고 김정섭이다.

그는 보성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이른바 이왕직 미술품제작소에서 조각을 익혔으며 기(技)의 연마를 위해 다른 한편으로 이행원과 김규진에게 서화를 사사했고 직업학교 교사로 또는 고문으로 후진 양성에도 열의를 다한 당대의 일인자였다. 1970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됐고 현재는 그의 아들인 김철주가 1989년 지정돼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의 대를 이은 이들은 1986년 조각장에 입문하여 1996년 조교가 된 남경숙(인하공업대학 교수, 1990년 전통상감기법을 적용하여 제5회 대한민국 공예대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과 이수자 장희방, 이진숙, 설혜강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