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증권일반

[CEO 파워인터뷰] 잘만테크 이영필 대표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0.09.05 18:46

수정 2010.09.05 18:46

잘만테크 이영필 대표는 60대 투잡스족이다.

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라는 다소 엉뚱한 직함을 또 하나 갖고 있다.

어떤 이는 “이순을 넘어 종심을 바라보는 나이에 두 가지 직업을 병행하는 게 힘들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 대표에게는 두 일이 즐겁기만 하다. 특허 변리사와 기업 경영이라는 서로 다른 삶은 인생의 활력이자 두 분야에서 쌓아온 경험과 네트워크는 잘만테크의 성장 기반이 되고 있는 것.

이 대표는 “특허 변리사란 직업에서 얻은 노하우로 하나의 기술이 미래 성장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정확히 판단할 수 있었다”며 “회사 대표로서의 경험은 어떠한 사안에 대한 결단력을 높여줬다”고 말했다.



■‘기술’속에 ‘사업’이 있다

이는 잘만테크 창업과정에서도 드러난다.

잘만테크를 처음 설립한 것은 지난 1999년 1월. 당시 이 대표가 대표 변리사로 있던 특허법률사무소 엔지니어의 “컴퓨터 소음을 줄여주는 쿨러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잘만테크 창업의 근간이 됐다.

이 대표는 “당시 엔지니어(잘만테크 초대 연구소장)의 아이디어에 바로 이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직원들과 뜻을 모아 아이디어를 상품화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작은 아이디어가 상품으로 또 회사 창립으로 이어진 셈.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엔지니어의 아이디어와 이 대표의 직관이 빚어낸 ‘컴퓨터용 쿨러’는 입소문을 타며 점차 국내외 판매가 본격화된다. 이 대표는 “마케팅이란 용어조차 생소했던 당시 용산에서 쿨러를 구입한 유학생이 해외 사이트에 사용후기를 올리면서 기술력을 알아본 프랑스, 독일 등의 고객들이 계약 문의를 먼저 해왔다”고 전했다. 세계적인 정보기술(IT) 업체 휴렛팩커드(HP)도 잘만테크의 고객이었다.



■2008년 갑자기 찾아온 위기

그러나 고공행진을 이어가던 잘만테크는 2008년 갑자기 하향곡선을 걷는다. 한 때 시장을 떠들썩하게 했던 키코(KIKO) 가입과 잘못된 예측이 빚어낸 3차원(3D) 모니터 대량 생산이 원인이었다. 우후죽순 늘어난 경쟁사와 3D 모니터 판매 부진은 1위 독주체제를 흔들었고 창립 후 첫 적자라는 쓴잔을 마시게 했다.

이 대표는 “세계 컴퓨터 산업의 위축과 경쟁사들의 등장은 실적 하락으로 이어졌다”면서 “2007년 한 박람회에서 3D모니터를 본 뒤 이 분야 잘만테크의 차세대 먹을거리로 키워야겠다고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이어 “하지만 3D시대 도래를 지나치게 낙관한 나머지 콘텐츠 부족이라는 점을 간과해 실적 하락이라는 결과를 맞게 됐다”면서 “주요 성장 동력이었던 쿨러 부문이 레드오션으로 전락하고 신사업으로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던 3D모니터 부분이 제자리 걸음을 이어가 어려움을 겪었다”고 덧붙였다.

■비 온뒤 땅이 굳는다

위기 후에 기회가 찾아온다고 했을까. 잘만테크는 올해 4·4분기를 기점으로 또 한번의 성장을 기약하고 있다.


이 대표가 오는 2011년에 대해 남다른 기대감을 가지고 있는 이유도 잘만테크가 △3D 편광필터 부문 공급선 확보 △와이파이(Wi-Fi) 구축 사업 △중국 자회사 FHS(Flower Heat Sink) 방식 쿨러 생산에 따른 실적 증가 △발광다이오드(LED) 쿨링 및 LED 조명제품, 자동차용 쿨러 개발 등으로 턴어라운드할 수 있어서다.

이 대표는 “잘만테크 실적 턴어라운드는 오는 4·4분기부터 가능할 전망”이라며 “이후 중국 자회사의 흑자 경영과 와이파이 구축사업의 가시화, LED 및 자동차용 쿨링 등 개발로 잘만테크는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이 대표는 마지막으로 “일본 최고의 경영자로 꼽히는 파나소닉(구 마쓰시타 전기) 경영자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불황 극복 마음가짐 10조에는 어려운 시기야 말로 개선의 기회가 있다는 뜻의 ‘불황도 괜찮다’는 글귀가 있다”면서 “지금의 힘든 시기가 잘만테크가 위기를 딛고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always@fnnews.com안현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