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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렌트’의 천재작곡가 라슨이 부활한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0.09.30 17:08

수정 2010.09.30 17:08

뮤지컬 '렌트'. 우리말로 번역하면 집세. 월세 아파트의 임대료도 못낼 정도로 가난한 뉴욕의 젊은 예술가들의 사랑과 방황, 갈등, 화해를 그렸다. 1996년작. 99석짜리 오프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시작했지만 화려한 세트의 대형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제치고 파란을 일으켰던 작품이다. 푸치니 오페라 '라보엠'을 현대 빈민가로 옮겨와 '20세기 뉴욕판 라보엠'으로도 불린다. 대중을 매료시켰던 건 탄탄한 스토리와 당시로선 획기적이었던 음악이었다. 좁은 무대 위에 맨해튼 뒷골목을 상징하는 철골 세트와 의자 몇 개가 소품의 전부였음에도 관객은 무명의 예술가가 창조해낸 실험적인 무대에 열광했다.

낮에는 맨해튼 소호 레스토랑에서 서빙을 하고, 밤에는 단칸방 구석 테이블에서 작곡을 했던 이 무명 예술가는 조너선 라슨. '렌트'를 더욱 극적으로 몰고간 건 이 라슨의 거짓말 같은 죽음이다. 7년간 혼신을 쏟았던 '렌트' 개막 전날 그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떴다. 그의 나이 서른다섯. 이 라슨을 떠올리게 하는 뮤지컬 작품 두 편이 나란히 무대에 올라 눈길을 끈다. 라슨과 '렌트'의 초연 작업을 같이 했던 앤서니 랩의 모노뮤지컬 '위드아웃유'와 강필석·신성록 주연의 '틱틱붐!'이다. '렌트'의 뒷이야기를 다른 느낌으로 만날 수 있을 듯.

■앤서니 랩의 자전적 이야기 '위드아웃유'

'렌트' 초연 이후 각종 무대를 휘젓고 있는 앤서니 랩은 국내에서 친숙한 브래드 리틀보다 현지에선 섭외 순위가 한 수 위인 브로드웨이 스타 배우다. 지금은 화려한 명성을 자랑하고 있지만 1996년 '렌트' 오디션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그 역시 조너선 라슨이 겪은 무명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낮에는 뉴욕 맨해튼 뒷골목 스타벅스 웨이터로 생계를 유지했고 밤에는 노래와 연기 연습에 매달렸다. 유년시절엔 암으로 투병 중인 어머니를 지켜보며 컸고 가정형편은 방세를 내지 못할 정도로 궁핍했다. 급기야 20대 초반엔 자신이 양성애자라는 사실을 밝힌 뒤 양성애자 보호운동까지 나선다.

오는 6일부터 31일까지 서울 삼성동 KT&G 상상아트홀에서 공연될 '위드아웃유'는 앤서니 랩의 자전적인 이야기. '렌트' 의 첫 배우 오디션부터 캐스팅, 리허설, 첫 공연 그리고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라슨의 죽음과 그 후 대성공을 거두기까지의 전 과정을 앤서니 랩이 혼자 무대에 올린다. '렌트'가 다뤘던 젊음, 사랑, 우정, 동성애, 에이즈, 죽음 등의 소재를 지금의 감각으로 풀어냈다는 평을 현지에서 받았다. 앤서니 랩은 라슨이 만든 중독성 강한 '렌트'의 뮤지컬 넘버 9개도 이번 무대에서 함께 들려준다. 국내 유명 기타리스트, 베이시스트, 드러머 등 연주자들이 함께 무대에 올라 반주를 돕는다. 2005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신작.

■라슨의 삶을 닮은 젊은이의 자화상 '틱틱붐'

'위드아웃유'가 라슨의 삶을 빼닮은 앤서니 랩의 이야기라면 '틱틱붐'은 라슨의 자전적 삶을 담고 있다. 1990년 막 서른이 된 라슨은 자신이 직접 주인공으로 출연, 록 모놀로그 형식으로 이 작품을 한 차례 선보인 적이 있다. 하지만 그의 죽음으로 이 작품은 사장됐다가 그의 친구들에 의해 2001년 새롭게 빛을 본다. 존, 마이클, 수전 세명의 인물을 등장시켜 스토리를 더 보강했다.

자신이 만든 뮤지컬을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리고 싶은 꿈을 가진 가난한 예술가 존은 곧 조너선 라슨이다. 현실은 계속 어렵고 고통스럽다. 여자친구 수전은 존과 함께 뉴욕을 떠나 소박한 가정을 꾸리길 바라지만 존과 늘 갈등상황에 놓인다. 존과 같은 꿈을 키웠던 친구 마이클은 예술가의 길을 포기하고 현실과 타협해 마케팅 전문가로 큰 성공을 거둔다. 마이클의 새로 산 자동차와 새 아파트를 구경하고 난 존은 더욱 비참함을 느낀다. 작품은 긴장과 두려움 속에 꿈을 키워가는 예술가의 삶, 그리고 우리시대 젊은이의 자화상을 그려낸다. 내용상으로 보면 '렌트'의 후속작이다. 9월 30일∼11월 7일 충무아트홀 중극장에서 강필석, 신성록, 윤공주가 주역으로 출연하고 있다.


뮤지컬 평론가 조용신씨는 "전통에 도전하는 실험성 높은 형식, 실제 자신의 삶과 동시대 사랑 이야기를 내용으로 담는 것이 라슨 스타일"이라며 "독창적인 음악과 진솔한 스토리가 전 세계 라슨 마니아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jins@fnnews.com최진숙기자

■사진설명=비운의 천재작곡가 조너선 라슨의 이야기가 곳곳에 숨어 있는 두 작품이 나란히 무대에 오른다.
뮤지컬 '렌트' 초연 멤버 앤서니 랩의 모노뮤지컬 '위드아웃유(왼쪽)'와 조너선 라슨의 숨겨진 유작 '틱틱붐'이 올가을 관객과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