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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魚’ 현대건설 뒤에 숨은 ‘승자의 저주’ 그물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0.10.10 22:01

수정 2010.10.10 22:01

#1. 현대건설 인수에 성공한 현대그룹은 인수 이후 되레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 선박에 투자할 돈을 건설사 인수에 쏟아부으면서 2012년 주력계열사인 현대상선이 실적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이에 따라 현대상선은 세계 2위 지위를 잃고 뒷걸음질하고 있다. 또한 비싼 인수가격에 따른 과도한 차입금이 현금유동성 문제로 이어지면서 현대그룹 전체가 휘청거리며 워크아웃에 내몰릴 처지에 놓였다. 여기에 현대그룹은 현대건설 인수의 전략적투자자(SI)인 독일 M+W그룹에 현대건설의 계열사인 현대엔지니어링을 일괄매각(블록세일), 국부와 기술유출 논란에도 휘말리고 있다.

#2. 현대건설을 인수한 현대자동차그룹은 2012년 글로벌 자동차 순위 '톱6'로 전년보다 한단계 추락했다.

전기차 등 신차 개발이나 품질 관리에 사용할 비용을 현대건설 인수에 4조원 이상이나 쏟아부은 데 따른 결과다. 현대차 노조와 외국인투자가는 주력사업인 자동차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현대건설을 되팔아야 한다며 재매각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현대차는 현대건설 재매각을 검토키로 했다.

이는 현대건설 인수가 불러 올 최악의 가상 시나리오다. 현대그룹이나 현대차그룹이 겪을 수 있는 '승자의 저주'이기도 하다.

현대건설 인수합병(M&A) 전쟁에 새로운 변수로 '승자의 저주'가 부각되고 있다.

이는 대우건설을 잘못 인수해 회사가 큰 어려움에 처한 '금호그룹 사태'의 학습효과에 따른 것이다. 빅딜에 성공해도 위기에 휘말리면 현금유동성 문제로 휘청거릴 수 있다는 승자의 저주가 재현될지도 모른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현대건설 인수를 놓고 어떤 기업이 대어를 낚을지 못지않게 자칫 어떤 기업이 '승자의 저주'라는 그물에 걸릴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출혈경쟁, '돌발 인수價'로 이어질라

올해 M&A 시장 최대어로 꼽히던 현대건설 인수전이 지난 1일 인수의향서 접수 마감과 함께 본격적으로 막이 올랐다.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의 인수전이 공식화되면서 양 그룹은 치열한 M&A전쟁을 펼치고 있다.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이 현대건설에 목을 매는 데는 이유가 있다. 현대건설은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유지를 받들고 '현대 정통성'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그룹은 범현대그룹의 맥을 잇는다는 명분과 현대상선 경영권 방어를 위해 그룹의 명운을 걸고 현대건설 인수에 목을 매고 있다.

현대차그룹 역시 미래성장을 위한 새로운 사업 포트폴리오를 마련키 위해 현대건설 인수에 공을 들이고 있다.

현대건설 채권단이 보유한 지분은 34.88%다. 여기에 경영권에 대한 인수 프리미엄까지 더하면 현대건설 매각가격은 3조5000억∼4조원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현대건설을 인수하지 못하면 경영권이 위태로워지는 현대그룹은 배수진을 치고 공격적으로 나올 것으로 예상돼 '돌발 인수가격'이 나올 가능성이 높은 상태. 일부에서 '승자의 저주'를 우려하는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 정통성'이라는 자존심이 걸린 이번 인수전에서 서로 이기려고 무리하게 입찰에 나설 경우 인수가격이 합리적 범위를 벗어나는 수준까지 오를 수도 있다"며 "이상 고가로 낙찰될 경우 현대건설은 물론 해당 인수기업에도 독이 되는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승자의 저주' 덫 우려

현대건설을 경영권 방어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보고 인수 의지를 불태운 두 그룹의 진짜 싸움은 지금부터라는 게 업계의 반응이다. '승자의 저주'의 덫을 피하고 기존 사업과 시너지를 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출혈경쟁으로 인수가격이 4조원을 넘어설 경우 현대그룹에 비해 자금력이 풍부한 현대차그룹에도 부담이 될 것이란 게 업계의 중론이다.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할 경우 그룹 내 다른 사업들과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현대차에는 자동차사업의 글로벌 경쟁력 유지라는 더 큰 명제가 있다. 현재 현대차는 도요타의 빈자리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세계시장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신차 개발과 품질관리에 사용할 투자여력을 현대건설 인수에 쏟아붓는다면 미래가 반드시 '장밋빛'이 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현대그룹도 상황은 마찬가지.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인수에 성공하면 경영권 방어는 물론 재계 21위에서 곧바로 14위로 수직 상승하는 효과를 얻게 된다. 그러나 현대그룹이 현대건설을 감당하지 못하고 인수금융 비용 조달에 허덕인다면 '승자의 저주'라는 덫에 걸릴 수도 있다.

특히 현대그룹이 '승자의 저주'를 겪을지 모른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이는 현대그룹이 자금력에서 상대적으로 현대차그룹에 비해 취약하기 때문. 현대그룹의 경우 현재 자체자금이 1조5000억원대로 전해졌으며 컨소시엄을 구성, 나머지를 충당할 계획. 컨소시엄을 통해 현대건설을 인수하더라도 향후 유동성 문제를 장담할 수 없다.
이자도 현대그룹이 넘어야 할 산이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이자부담만 수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현대그룹이 인수 후 후폭풍을 잘 견딜 수 있는지 주목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yoon@fnnews.com윤정남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