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뇌'에서 컴퓨터 챔피언과의 체스 게임에서 이긴 사뮈엘 핀처는 애인과 함께 섹스를 한다. 하필 이때, 게임을 이긴 데 대한 보상으로 장 마르탱은 핀처의 뇌에 원격조정 장치를 사용해 쾌락중추에 전기 자극을 가한다. 핀처의 뇌는 지나치게 흥분하고 그는 결국 죽어버리고 만다.
뇌속 쾌락의 중추를 직접적으로 자극하는 방법을 알아낸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이 소설처럼 목표를 달성할 때마다 뇌의 한 부위를 자극하면 동기부여는 물론 희열을 느끼게 되는 상황은 상상 속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이미 부분적으로 이런 분야에서 활발한 연구 및 치료가 진행되고 있다.
■성취감도 쾌감도 모두 동일한 뇌작용
행위중독은 뇌 속에 있는 '쾌락중추'와 관련이 있다. 인간이 즐거운 일을 하면 뇌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증가하고, 곧바로 쾌감을 담당하는 '측핵'을 자극하게 된다. 도파민의 양은 한정돼 있기 때문에 농도가 떨어지면 뇌가 직접 양을 늘리라고 신호를 보낸다. 충동을 조절할 수 없는 사람은 이 신호가 끊기지 않고 계속된다. 충동조절 기능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신경과학센터 정수영 박사는 "측핵은 인간의 뇌에서 쾌락을 담당한다. 측핵을 뇌의 다른 부위와 연결하는 것은 '중뇌변연피질계도파민성경로'"라고 설명했다.
그는 "연인과 사랑을 하면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증가해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며 "담배를 피우며 얻는 니코틴의 자극도 도파민 분비를 통해 느끼는 쾌감"이라고 말했다. 심지어는 프로게이머들이 게임을 할 경우도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쾌락은 동기부여다.
측핵 및 도파민 분비를 이용할 경우 다양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주목을 받고 있다. 정 박사는 "운동선수는 승리할 때의 뿌듯함을 느끼기 위해 고된 훈련을 견디게 된다. 이때 얻는 쾌감은 긍정적인 힘의 원동력이 된다"며 "이 때문에 쾌락중추는 곧 동기부여중추"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떨림, 경직, 운동 느려짐 등이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신경계 만성진행성퇴행성질환인 파킨슨병의 경우 뇌내 도파민 농도를 높이는 엘도파 등의 약물을 이용할 경우 신체적 움직임뿐만 아니라 기분과 동기부여도 향상된다.
중앙대학교병원 정신과 이영식 교수는 "일부 우울증 환자의 치료에서도 도파민 자극을 하는 약물을 사용해 삶의 동기부여를 다시 얻게 하는 효과를 얻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기전을 이용한 다른 연구도 있다. 현재 중국에서는 알코올중독증 환자 중 정신과 치료로 효과를 보지 못하는 환자들의 경우 측핵 부위를 일부 제거하는 시도를 도입 중이다.
또한 미국 스탠퍼드대학 연구팀 및 미육군연구소의 경우 측핵을 자극하는 기법을 통해 인간에게 동기부여 및 강렬한 성취욕구를 부여해 작업효율을 늘리는 연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 박사는 "인간의 쾌락중추를 직접 자극하는 물질이나 기법을 직접적으로 이용할 경우 운동계 등 다른 부위에도 영향을 주므로 위험할 수 있다"면서도 "이러한 분야를 활발히 연구할 경우 다양한 행동이나 효율조절의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1950년대에 쥐의 쾌락중추를 전기 스위치와 연결한 실험에서 쥐는 끝없는 쾌감을 얻기 위해 음식, 물 등의 섭취도 거부하고 스위치만 누르다가 지쳐 쓰러졌다는 결과를 얻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를 안전하게 조절할 수 있다면 반대로 여러 중독증을 끊는 치료로 활용될 수 있다는 의견이 최근 대두되고 있다.
이 교수는 "몸이 기억할 수 있도록 스스로 쾌락중추를 훈련·조절하는 방법이 있다면 건전한 다른 목표달성을 위해 성중독, 물질중독, 폭력중독 등을 '대체'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장기간 이를 서서히 훈련하는 방법이 개발된다면 많은 건전한 동기부여를 얻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kueigo@fnnews.com김태호기자
■사진설명=측핵은 쾌락중추라고도 불리며 기쁨과 보상, 동기부여 모두에 관여한다. 이를 앞으로 조절할 경우 건전한 동기부여 및 악습적인 중독증상 등을 조절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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