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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3일 서울 삼청동 fnart스페이스에서 제23회 소조각회전이 열렸다. 드림&아바타 주제전에 'Life-욕망'을 출품한 소조각회 회장 권치규. |
80년대 후반, 당시 미술계는 추상 중심이었다. 회화뿐만 아니라 조각도 마찬가지. 특히 미술대학의 메카 홍익대에서는 추상붐이 거셌다. 추상일변도의 서구 설치미술이 유행을 타면서 '구상 조각'은 마이너리티로 소외시켰다. 현대 조각회, 시영조각회, 후기조각회 등이 있었지만 '구상'조각은 공모전이나 전시회에서도 '못 볼' 작업으로 취급했다.
1987년, 홍대 조소과 출신 오상일 오상욱 류인 조상필 민성래 류경원 등 6명이 만났다. "구상조각회를 만들어볼까". 신촌 연세대 독수리다방에서 농담처럼 시작한 이 말은 서울 인사동에서 창립모임을 갖고 현실화됐다. "이름을 뭐라고 할까?". "소 어때". 민성래(성신여대 교수)가 말했다. 물론 자신이 소띠이기도 하지만 홍익대 상징이기도 했다. 또 조소장르의 기본 구성요소인 '소조+조각'의 합성어로 '소처럼 우직하게 작업에 매진하는 작가'라는 의미로 탄생됐다.
한풀이로 시작된 소조각회는 87년 6월 한국 예총회관에서 류경원 류인 민성래 오상욱 오상일 조상필 등 6명이 '얼굴'전을 개최, '알아보기도 힘든' 추상조각에 반기를 들고 대중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소조각회는 굵직한 스타작가도 배출, 인기를 끌었다. 창립멤버 고(故) 류인, 90년대 회원인 고(故) 구본주는 탁월한 손맛으로 구상조각의 진가를 알렸고 '조각의 신화'로 남았다. 해마다 전시회를 개최했다. 추상미술 민중미술이 이어지는 시대상황 속에서 인체를 탐구하며 구상조각회로 뿌리를 세운 소조각회는 미술계를 움직이는 힘으로 커지기 시작했다.
회원 이원욱(35)은 '실력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고, 소수지만 멋있는 집단'이라고 말했다. 황혜신은 "삶의 진실성을 드러내는 곳"이라고 했고 지난해 회원이 된 박성철(32)은 "학부 때부터 들어오고 싶었던 곳"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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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구상조각의 명맥을 잇고 있는 소조각회 회원들은 이번 전시에서 또 다른 자아로서의 분신, 2세를 중심으로 한 가족 등 자신의 아바타를 선보이며 조각가로서 나는 과연 어떤 존재인지 보여주고 있다. |
홍익대 조소과 출신 모임 '소조각회'는 '구상작업이 뛰어난 실력'의 심벌이다. 회원이 되는 순간, '실력파'로 인정받는다. 소수정예, 추천과 만장일치로 뽑는 신입회원. 학교 동문이라도 회원가입은 쉽지 않다. 20년 넘게 이어오고 있는 소조각회는 협회차원을 넘어 8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 문화사와 정치사적 흐름과 맞물리면서 구상조각의 명맥을 유지하며 한국 현대조각사를 이끌어가고 있다.
지난 3일 서울 삼청동 fnart스페이스에서 제23회 소조각회 정기전을 연 소조각회 권치규 회장을 만났다. 권 회장은 제15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조각부문 대상(96년)을 수상했고, 배재대학 설립자 허길례선생 흉상, 단양 호국참전 유공자 기념탑, 청백리 고불 맹사성 동상(아산시청) 등을 제작했다.
―소조각회는 소만 조각하는 모임인 줄 알았다. 소조각회 역사가 깊다. 소조각회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소조각회 1회 전시도록에 보면 "예술이란 삶의 기록입니다"라는 선배들의 글로 시작한다. 이것이 기본 모토다.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형상성을 다루고 있다. 형상성이란 시공간적으로 개개인의 함축적인 의미가 있다고 본다. 사회적 관계를 인체를 통한 형상으로 비춰보는 것이다. 80년대 말에서 90년대에 거쳐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그리고 민중예술사이에서, 시대적 대결구도 속에서도 소조각회는 본질적인 것, 인간 존재에 대한 지속적 탐구를 담아내고 있다. 시대가 흐르면서 젊은 작가들은 삶이라기보다는 일상과 밀접한 작품들을 주 경향으로 삼고 있다. 일상적 서사를 끌어내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다른 조각회와 차이가 있다면 공부를 한다는 점이다. 매년 학술세미나를 열고, 매년 주제전을 연다. 해마다 다른 주제전을 통해 회원 개개인의 독창적인 조형어법으로 깊이 있게 풀어내 주목을 받고 있다.
―소조각회에서 인체가 갖는 중요성은 무엇인가.
▲형상성 작업을 하면서 구태의연성도 있는 듯하지만 인체에 대한 작업은 성실을 빼놓을 수 없다. 인체작업을 한다는 것은 기본기가 튼튼하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근대미술이 한국에 들어온 것은 1900년대 초반 김복진과 김종영 등 1세대 작가에 의해서였다. 일본 유학을 하고 부르델의 영향을 받은 일본의 작가들한테 배운 선구자들이 구상조각, 인체조각을 시작했다. 조각사적으로 볼때 인체가 늘 기본적인 수업으로서 교육화됐던 것이 작품화되면서 인체조각은 새로움을 추구하는 미술에서 배제되어왔다. 이후 서구의 문물이 들어오면서 구상이나 사실적인 것 등 인체문제가 왜 미술에 필요한 걸까를 논의하기도 전에 구조적으로 밀려났었다. 80년대 말 소조각회가 탄생하면서 모호하던 우리나라 조각을 보여주는 일종의 역사적인 검증절차가 됐다고 본다. 결국 인간이 인간을 말하는데 있어서 인체만큼 좋은 것은 없지 않은가.
―아직도 신입회원을 추천과 만장일치제로 뽑나.
▲나는 95년 회원이 됐다. 그때도 추천을 받아 서류를 냈고 만장일치제로 회원으로 뽑혔다. 물론 지금도 이 방법을 고수한다. 포트폴리오를 보고 구상작업의 능력과 잠재력을 우선으로 본다. 현재 회원은 24명이다. 1년에 1, 2명 정도 뽑는다. 소수정예로 유지되는 회원은 15년간 활동하고 이후 명예회원으로 탈퇴를 한다. 회장은 1년 임기다. 일정 연령 혹은 활동 연한이 넘으면 정회원에서 한걸음 물러나 후배들을 자문한다. 순수한 창립취지를 지키고, 소수를 위한 계파 혹은 사조직화되는 것을 방지하자는 취지다.
―매년 주제전을 한다. 이번 전시는 무슨 내용인가.
▲소조각회는 항상 그 시대의 현대적인 것을 보여준다고 보면 된다. 전시주제 또한 회원, 평론가와 함께 많은 토론을 통해 나온다. 조각회에서 매년 주제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해온 사례는 없기 때문에 자부심이 있다. 올해 주제전은 '드림&아바타'다. 누구나 이상과 꿈을 좇는다. 하지만 어떤 것이 꿈이고 진정 본연의 요체인지 확신하긴 힘들다. 이번 전시는 "조각가로서 나는 과연 어떤 존재이며, 내게 과연 조각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한마디로 또 다른 나의 발견, 작가적 정체성의 재확인을 의미한다. 아직도 조각가의 삶은 팍팍하다.이는 작품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작가들은 곤두선 삶의 비늘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전시장 한복판에 매달린 등에 가시가 돋은 복어, 초록의 길게 뻗친 손가락에 인간의 신체가 물구나무서서 박혀 있고, 물속에 담긴 흰색의 커다란 얼굴의 잘린 머리 위엔 풍선 8개가 가족처럼 쌓여 있다. 커다란 대관람차 바퀴가 양날개처럼 달린 얼굴 없는 신체, 오토바이에 몸을 싣고 어딘가로 내달리는 사람의 얼굴엔 돼지얼굴 금박 가면이 씌워 있고, 팔과 다리를 쭉 뻗어 입을 크게 벌린 속도감 있는 인간은 떼지어 다니는 멸치 같다.
전시장에 온 창립멤버 정현 홍익대교수는 "후배들의 작품을 통해서 시대적 변화 양상까지 받아들인 소조각회의 새로운 면모와 발전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과연 내 인생의 자화상은 무엇일까. 어렵고 힘들어도 또 꿈을 꾸고 소처럼 우직하게 작업에 매진하고 있는 조각가들의 모습을 확인할수 있는 기회다.
'드림&아바타'전은 김윤섭 미술평론가가 기획하고 권치규 김옥구 박성철 박장근 설총식 안경문 양형규 오세문 이원경 이원석 이원욱 전덕제 정재연 조윤환 최현승 황혜신 등 회원 16명이 참여했다. 전시는 16일까지.(02)725-7114
/hyun@fnnews.com박현주 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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